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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진리의 한사람이면 된다

기자명 법보신문

유대의 한 신비주의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신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신에게 물었다.

“멸망시키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만약 이 도시에 영혼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200명 있다면, 그래도 이 도시와 함께 멸망시키시겠습니까?”

신은 당황스러웠다. 그런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200명이 도시를 살린 거야.”

“만약 그 뛰어난 영혼의 소유자가 200이 아니라 20명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20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멸망시키시겠습니까?”

“20명이 정말로 그런 깨달음을 얻은 자들이라면 이 도시는 구원을 받아야지.”

신비주의자가 다시 말했다. “하나 더 묻겠습니다. 만약 20명이 아니라 단 한사람이라도 그런 자가 있다면, 그래서 그가 일년 중의 반을 소돔에서 살고, 나머지는 고모라에서 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 그 한 사람을 데려와 보라.”

그 신비주의자가 나섰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지난 가을이었다. 겨울을 앞두고 걱정이 하나 생겼다. 봄부터 가을까지 수십 종류의 화초를 밖에서 키웠고, 그중 몇 개씩 돌려가며 절 내부를 치장할 때는 좋았는데, 날이 추워지자 관리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곤란했다. 신도나 방문객들이 화초를 보며 즐거워하던 터라 겨울이라고 무시하기 어렵기도 했다. 고민 끝에 도량 구석에 4평 남짓한 온실을 만들고 화분을 들였다. 달리 난방을 하지 않았지만, 햇살이 잘 드는 곳이라 그런지 온실은 여린 생명들을 잘 보호해줬고, 한겨울에도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계절이 바뀌고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요즘, 고스란히 살아남은 화초들은 다시 꽃을 피우고 새순을 올리고 있다. 특히나 항아리에서 죽은 듯이 잠자던 연꽃이 새 잎을 틔우더니 지금은 몇 송이 꽃망울까지 머금었다. 이 경이로움이 틈만 나면 날 뜰로  불러낸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연꽃이 진흙은 아니다. 더러운 진흙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 하나의 초월을 보여준다. 어떤 것은 딱딱한 돌 틈에서도 꽃을 피운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천한 것은 낮고 딱딱하고 더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이 바탕이 없으면 영혼의 고결함이 생겨나지 않는다. 진흙은 연꽃 없이도 존재하지만, 진흙 없는 연꽃은 없다.

이 세상의 구원은 진리의 단 한사람으로도 가능하다. 세상이 그의 필요를 모르고, 그를 죽일지라도, 진리의 사람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삶, 그 뿌리는 세상이라는 진흙에 내려야하지 않겠는가.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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