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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부부로의 만남

기자명 법보신문

부부애를 別로 규정함은 ‘존경’ 전제한 것
광덕·엄장 설화는 ‘정신적 사랑’ 본보기

사람살이란 만남으로 시작된다. 한 생명의 태어남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만남의 순간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만남이 없으면 생명의 존재가 형성되지 않는다. 존재의 원리를 인연이라 설명하는 불교적 정의에 머리 숙여짐은 이러한 원초적 지침부터가 틈새 없이 완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의 존재적 결정이 부부라는 남녀의 결합을 전제하지 않고는 형성될 수 없으니, 인간 윤리의 원초를 부부로 보는 유교적 윤리 규정은 현실적 삶의 근간을 명확히 한 것이어서 역시 시공을 초월하도록 영원한 진리이다.

이러한 만남의 끌림이 되는 힘의 인력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인간적 지각의 예지일 것이고, 이 지각의 예지가 너와 나의 만남의 관계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니, 이 다른 사랑의 방법이 바로 윤리적 덕목일 듯하다. 아비와 자식의 사랑을 어느 윤리 관계보다도 가깝다는 친(親)으로 보는 것이나, 사회구성의 가장 큰 단위인 국가와 국민의 사랑을 의(義)로 보거나, 친구의 평등적 수평선의 사랑을 믿음(信)으로, 형제나 사회의 상하 관계의 사랑을 질서(序)로 보는 것들이 모두가 인류의 사랑을 올바로 실현하려는 배려에서 규정된 것들이다.

그러기에 인류 형성의 기본인 남녀의 만남이 부부로 변신되는 찰나의 사랑에 대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구별(別)로 규정한 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남녀의 만남은 음양의 결합이다. 이 음양은 우주 원기의 근원인 태극에서 양분된 것인데, 이 음양이 결합되어서는 다시 우주의 원리인 태극으로 되돌리는 작용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여기에서 부모 자식의 만남이 이루어져 인간 질서의 윤리적 분화가 이루어진다.

인륜적 질서의 원초가 부부라 규정한 선각자들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듯 소중한 부부의 만남을 단순한 만남과 헤어짐의 일상적 행동처럼 가벼이 여기는 현실에 간혹 놀라는 경우가 있다. 통계적으로도 이혼율이 몇%라는 시사적 기사가 있음은 지적 수준이 높아 행복 사회로 이행되려는 국가적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일이어서 안타깝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안방을 독점한 TV의 연속극은 일률적으로 부부간의 비정상적 사랑이 주제가 되고 있으니 더더욱 놀랄 일이다.

부부의 사랑을 구별(別)로 규정한 윤리 덕목은 바로 이러한 위험을 예방한 지혜인 것이다. ‘서로 존경하기를 손님처럼 하라.’ 함이 부부의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헤어짐이란 지나친 가까움의 반작용이다. 부부도 남인데 항상 한몸처럼 가까울 수가 없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남남의 결합이 부부이니, 이 남남이 나와 나의 사랑이 되려면 정신적 사랑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신적 사랑을 한 분이 있어 소개해 보려 한다. 신라 문무왕 때에 광덕(廣德)이라는 스님이 있다. 분황사 서쪽에서 아내를 두고 짚신을 삼아 생업을 했다. 친구인 엄장(嚴莊)이란 스님은 남악에 살아 서로 약속하되 먼저 서방으로 가는 자는 알려 주자 했는데, 광덕이 먼저 가며 공중에서 잘 있으라 알렸다. 엄장이 찾아와 장례를 잘 치르고 그 아내에게 이제 남편이 가셨으니, 함께 살자하고는 저녁에 남녀로서의 결합을 요구했다. 광덕의 아내는 ‘스님과는 10여년을 동거하였지만, 같은 침상도 쓴 적이 없으니 남녀의 결합이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다. 엄장이 부끄러워 회개하고 원효대사에게 나아가 정진하여 역시 서방정토로 갔다. 광덕이 평소에 불렀다는 노래가 유명한 “원왕생가(願往生歌)”이다.

정신적 사랑이 육체적 사랑을 압도하는 좋은 본보기이니, 이런 정신을 계승함이 후손의 자랑이리라.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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