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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 열고 닫는 기준은 자비심”

기자명 법보신문
  • 지계
  • 입력 2007.07.16 10:05
  • 댓글 0

‘지범개차(持犯開遮)’, 파계의 명분인가

“수오계십계등 선지지범개차(受五戒十戒等 善知持犯開遮, 오계와 십계 등을 받아 지니고 범함과 열고 닫음을 잘 알아야 한다.)”

고려시대 보조 스님이 초발심 불자들을 위해 쓴 『계초심학인문』에 담겨져 있는 이 글은 어느 것이나 한 쪽에 치우쳐서는 올바른 수행이 될 수 없다는 불교의 중도사상을 대변하고 있다. 즉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에 있어서도 율장에 언급된 문자 그대로에 치우쳐 근본 뜻을 잃는다면 바른 수행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물에 빠진 여인을 발견한 한 수행자가 ‘여인의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율장의 조목만을 고집할 수 없듯 계율 적용에 있어 융통성을 갖고 어떤 것이 최선인가를 먼저 생각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로 부처님 당시 제정된 계율이 시대상황과 다를 경우 그 근본 취지를 살려 현실에 맞게 새롭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지범개차, 지계 방법 설명한 것”

그러나 아무리 선한 법도 잘못 악용하면 악법이 되듯, 중도적 관점에서 수행자 스스로 위의를 지키고 보살행을 행할 것을 강조한 이른바 ‘지범개차(持犯開遮)’를 무원칙적으로 적용하면서 자신의 허물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수행자들이 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가령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할 수행자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운운하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정당화시키거나, 불사(佛事)를 한다며 재산을 축적하거나 포교를 위한 대인관계를 위해 술과 육식을 즐기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개차(開遮)’라는 명분으로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 파계사 영산율원 율주 철우 스님은 “‘지범개차’라는 말은 계를 어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계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설명한 것”이라며 “결코 파계를 용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스님에 따르면 ‘지범개차’에서 ‘지(持)’는 자신이 받은 계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이며, ‘범(犯)’은 자신도 모르게 계를 범했을 경우 반드시 참회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개(開)’는 한 생명이 위태로움에 처해 있을 때 거짓말을 해서라도 살리려는 것처럼 자비심을 바탕으로 보살행을 행하기 위한 방편이며, ‘차(遮)’는 어떤 방편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차라리 닫아 버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지범개차’는 철저히 계율을 지키겠다는 ‘지계의 방법’을 설명한 것이지 계를 어겨도 된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스님은 강조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 제정된 계율을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적용하기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계는 열고, 어떤 계는 닫아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불교의 율이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상황을 예측해 일시에 율장으로 제정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제정한 것이기 때문에 수행자 스스로 ‘개차’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대변화 따른 계율 보완도 필요”

이와 관련 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은 “자의적인 판단으로 ‘지범개차’를 함부로 적용한다면 무서운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며 “‘지범개차’는 내 자신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려는 자비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동국대 김호성 교수는 “보조 스님이 말씀하신 ‘지범개차’를 악용해 자신의 허물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그렇지만 시대상황과 동떨어져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계율을 무조건 강요하는 것도 오히려 승가 집단을 운영하고 깨달음의 방편이 되어야 할 계율을 사문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시대변화에 따라 윤리 관점이 변화하는 것처럼 계율도 현대 상황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우선 율사 스님들을 중심으로 계율에 대한 근본정신을 살리면서 현대에 맞도록 보완시켜나가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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