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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원소의 질량은 균등한가

기자명 법보신문

외형적 차이로 사물 판단하는 게 중생
하나 가운데 일체 있음이 진리의 세계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외형으로만 본다면 각기 다 다른 질량을 갖고 있지만, 존재할 수 있는 원소적 원리로 본다면 대소경중의 질량이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외형으로만 사물을 보기 때문에 대소경중의 차이에서 그 내면의 원소적 질량까지도 작다고 무시하거나 크다고 경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세계를 삼킨다(一微塵中含十方)’는 일승적 사상으로 본다면 모든 사물의 질량에는 대소경중의 차이가 없다.

그러기에 ‘풀씨에도 수미산이 들어 있다(芥子納須彌)’는 진리의 표현이 있지만, 외형적 사물 인식에만 사로잡힌 우리들 범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모순적인 언어가 없다. 작음의 극소치로 상징화한 풀씨의 크기에 극대치로 상징화한 수미산이 어떻게 수용된다는 말인가. 흔히 논리적 연결이 어려운 말을 말은 말이되 말이 안 된다 하여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 하는데 이런 표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물을 크게 살피는 것을 거시(巨視)라 하고 작게 살피는 것을 미시(微視)라 하여, 각기 달리 영역을 정하여 살피는 것이 일상적 학문이거나 사회적 경제 활동인데, 불가에서는 이를 하나의 공간으로 아우르는 포용을 진리적 세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원효대사가 「대승육정차회(大乘六情懺悔)」에서 노래한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一卽一切 一體卽一)”이라 한 것이나, 의상대사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에서 노래한 “하나 가운데 일체 있고 일체 가운데 하나 있다(一中一切多中一)”는 바로 거시적 살핌이나 미시적 살핌에 거리가 없음을 선험적으로 제시한 것 들이다.

조선조 초기에 유불 사상을 아우른 매월당 김시습은 거시 미시의 시각을 진작 겸유하였던 진정한 중도자였다. 그는 ‘대언(大言)’이라는 시와 ‘소언(小言)’이란 시를 나란히 남겨 놓고 있다. ‘대언’에서는 “푸른 바다 낚시 드리워 큰 거북이 낚고/ 손 안에 잡아보는 하늘 땅 해와 달/ 구름 밖 나는 고니새 손가락으로 부리고/ 산동 땅 세상 덮은 호걸도 손바닥에 있다/ 삼천대천의 부처세계 다 쓸고/ 만리의 성난 파도도 삼켜 다한다/ 돌아와 인간세상 작다 웃으니/ 넓은 천하도 다만 하나의 터럭일 뿐.” 이라 하여, 무한대의 공간도 하나의 터럭 끝이라 하니, 불가에서 대소의 진리를 하나로 묶는 용어인 “터럭 끝에 무한 국토가 숨는다(毛端藏刹海)”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개이기에 그는 세간의 일에 얽매일 수가 없었다.

‘소언’에서는 “터럭으로 새끼 꼬아 하루살이 잡아매고/ 모기 어깨 맞히니 얇은 깃 떨어진다/ 작은 먼지 가늘게 잘라 물상을 만들고/ 미세한 가시에다 원숭이 모양 정교히 새기다/ 거울 표면의 분가루는 동글동글한 점이고/ 공중의 가벼운 안개는 하늘거리며 떨어진다/ 가을 하늘 한 마리의 파리가/ 날개 치며 허공으로 나는 것 본다.” 하였다. 가을 터럭의 섬세함을 새끼줄로 만든다든가, 모기의 어깨를 때린다는 것은 인간의 현실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물 하나하나를 개체로 분석해 보면 엄연히 독립된 존재이고 이 존재가 인정된다면 이러한 미분의 나눔도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다시 돋보이는 선가공안 하나가 연상된다. 서강의 마조 도일(馬祖道一)선사가 방거사(龐居士)의 “온갖 법과 짝하지 않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하는 질문에 “네가 서강의 물을 한 입에 마시면(一口吸盡西江水) 너에게 말해 주마”하니 거사는 바로 깨달았다 한다. 서강의 물이 다함이 물과 육지가 없는 천하태평을 상징하든, 마조선사의 의도야 어떠하든 한 모금과 강물의 극소 극대의 합일에 질량적 차이를 두지 않는 화법에 놀랄 수밖에 없다. 선사나 깨달은 거사의 언행에 놀라기 이전에, 진리를 추구하는 배움의 자세에 새삼 길을 지시하는 나침반 같아 가슴이 시원하다. 다가오는 여름의 무더위도 이런 선사들의 공안으로 식혀 보자.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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