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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최한기의 「기열생풍」

기자명 법보신문

차는 뜨거워야 함을 알려준 선조의 지혜

굵은 장대비가 이슬비로 바뀌었다. 온 세상이 안개에 싸여 신선이 사는 별천지인 양 현현(玄玄)하다. 엊그제 길어 온 샘물은 건수가 들어간 듯 청량한 본래 맛이 아니다. 비가 온 탓인가 차는 차대로 물은 물대로 흩어져 중화(中和)의 미덕을 기대하기 어렵다. 구질한 장마철, 따뜻하고 감칠 맛 나는 차가 그립다.

얼마 전 최한기(浿東 崔漢綺1803~1877)의 『추측록(推測錄)』「기열생풍(氣熱生風)」을 읽었다. 뜨거운 차를 따르면 잔의 표면에 용트림하며 이는 차이내가 바로 기운이 움직여 바람을 일게 하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물리(物理)를 관찰하는 발상이 하도 기발하여 고개가 절로 끄떡여졌다. 세상 사람이 차를 가까이하는 정감과 풍류쯤이야 옛 시에도 많거니와 바람이 일어나는 이치를 이렇게 관찰하다니. 차라는 대상을 보는 식견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운화(運化)의 理와 추측(推測)의 理, 이 두 가지가 일치를 이루어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성취할 수 있다고 본 그다운 생각이다. 이 글은 그가 34세 되던 1836년 완성했던 『기측체의(氣測體義)』에 들어 있다. 「신기통」과 「추측록」 두 편을 묶어 한 책을 이루었으며 이 「기열생풍(氣熱生風)」장은 「추측록」2권에 있다.

기운이 움직이면 바람이 인다. 기운이 움직이는 것은 땅에 열기를 뿜기 때문이다. 끓는 물이 찌꺼기를 가라앉히면 위 아래로 뒤섞인다. 뜨거운 바람을 따라 움직이다가 물이 식으면 열이 식어서 바람도 일지 않는다. 찌꺼기가 없어져 아래로 가라앉음이라. 그러므로 바람은 열기에서 생긴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차를 다려서 잔에 부어 열기가 일어나는 자취를 가만히 살펴보면 종횡으로 무늬가 생긴다. 마치 바다 표면에 생기는 무늬를 보는 것과 같다. 차가 식으면 그 흔적도 점점 없어진다.

(氣動而風生 氣之所以動者 以其地噓熱氣也 白湯沈塵芥則 上下周流 隨熱風而動 及其水冷則 熱息而風靜 塵滓弛然下浸 故 可推風生於熱也…烹茶注梡而詳察熱氣發出之痕 成文縱橫 如海文所見 及乎茶冷 其文漸消....)

현대인의 생활에서 음다(飮茶)의 대중화가 가져온 유용성은 대단하다. 하지만 차의 대중화는 차의 근원적 접근을 통해 얻어지는 정신적인 측면을 간과하였다. 원리에 대한 궁리(窮理)의 대상으로 차를 바라보는 진지성은 우리가 배워야할 중요한 관점이며, 차에 대한 다변적 접근 태도를 잘 보여주었다. 또한 차는 원래 뜨겁게 마신다는 것을 입증할 자료 이기도하다. 근래까지도 우리 차는 뜨겁게 마셔야한다는 점을 강조하신 초의스님의 후인(後人)인 응송스님의 주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혜강 최한기는 19세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혜강(惠岡), 패동(浿東), 기화당(氣和堂)은 그의 호(號)이며 운로(芸老)라는 자(字)를 쓰기도 하였다. 기학(氣學)을 통해 동서양의 학문을 통합하여 일통(一統)사상을 주장했던 선각자이요, 서구의 새로운 사상을 과감히 수용하려했다. 다산 정약용이 방대한 저서를 통해 경전을 재해석하여 시대적 개혁논리를 이끌려했으며, 혜강은 인간은 사유기관과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충할 수 있다는 신기(神氣)와 변통(變通)을 주장하였다. 한편 그는 풍부한 가산(家産)을 바탕으로 독서와 저술, 새로운 자료 수집에 적극적이었다. 그가 남긴 저서는 다산을 능가하여 최남선도 칭찬했던 1000여권 다작(多作)의 성과는 겨우 『명남루총서(明南樓叢書)』 100여권만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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