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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여인숙의 인간 군상

기자명 법보신문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막심 고리키 지음 / 큰나무

막심 고리키의 이 소설은 다른 러시아 대문호들의 작품에 비하면 단편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착한’ 분량의 장편소설입니다. 그리고 제목이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이 말은 “지금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인간이었을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나도 근사한 바지를 입었을 때는 사람대접 받으며 시내에서 살았지. 그런데 바지가 해지니까 사람들이 나까지 무시하는 거야. 그래서 시내에서 쫓겨나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거지.”

예전에는 잘나가던 전직 대위. 그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변두리 여인숙을 세내어 운영하면서 ‘예전에는 사람이었던 동물’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주머니를 적당한 이유를 대며 털거나 자립하라고 격려하거나 자기에게 불운만을 안겨준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내뱉습니다.
그는 부자를 몹시 경멸합니다.

“똑똑하고 양심적인 사람은 돈 없이도 살 수 있소. 사람은 양심에 귀 기울이기를 포기했을 때만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요. 비양심적일수록 돈은 더 많은 법이지!”

대위의 여인숙에는 지금은 인간이 아니게 된 자들이 하루 종일 술에 취해서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간을 때웁니다. 그리고 어쩌다 신문이 그들 손에 들리면 온갖 기사에 제각각 촌평을 늘여놓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삼습니다.

이들이 다시 인간이 될 수가 있을까요?

결정적인 기회가 왔습니다. 장사꾼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 빈틈을 찾아내 보란 듯이 그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어떤 수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론은 불 보듯 빤한 것.

터무니없는 푼돈에 주인은 여인숙을 통째로 넘겨버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주인공들은 죽음과 구속의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한 사람은 시체가 되어 수레에 실려 여인숙을 떠나고, 그나마 오기라도 남아 있어 세상을 향해 지독히도 독설을 퍼붓던 대위는 경찰의 밧줄에 묶여 여인숙을 떠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요, 이 세상은 그런 나그네를 담는 여인숙이라고 노래합니다만 그건 세상에서 제 몫을 챙겨내지 못한 패배자가 부르는 뒤늦은 세레나데이거나 세속의 유혹을 벗어버린 초의지적 존재의 사자후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지독하게도 불행해져 변두리 여인숙으로 밀려난 뒤에 세상의 중심을 향해 쓸 데 없는 주접과 힘없는 돌팔매질만을 일삼다가 일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나쁜 사람은, 그런 변두리 인생에게까지 찾아와 제 잇속을 챙기는 장사꾼들입니다.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은 ‘이젠 인간이 아니다’라며 자조 섞인 냉소라도 짓지만 그런 장사꾼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세상을 향해 겁 없이 덤벼듭니다. 게다가 더 두려운 것은, 교활하고 냉정하게 잇속을 챙긴 이들이 점차 사회 지도층 인사로 군림해 가는 요즘의 현상들입니다. 부작용이 툭툭 불거져 나오고 있는데도 아무도 인간답게 살자고 외치지 않으니 그게 걱정입니다. 우리는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 걸까요?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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