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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장인]⑪ 염색장 정 관 채

기자명 법보신문

4000년 이어 온 오묘한 쪽빛 마음 담가 우려 내

’78년 ‘쪽’ 만난 미술학도 40대 초 문화재로
 나주서 4대째 가업…천연염색 대중화 선도

쪽 염료 ‘꽃물’이 소생하기 전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쪽빛은 사라지고 만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도
받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은 장인이다.

“푸른색은 쪽(藍)에서 얻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로 인해 이루어졌으나 물보다도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 중국 순자(荀子)의 이 한마디에서 청출어람 (靑出於藍),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이르는 성어가 유래했다.

한승원 작가는 그의 한 작품에서 ‘하늘과 바다가 왜 쪽빛이거나 청람색일 때가 더 많은지 아시오?’라고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붉은색은 흥분하게 하고 노란색은 긴장하게 하고 검정은 절망하게 하고 보라색은 우울하게 합니다. 하지만 푸른색이나 쪽빛은 보약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각박하고 매정하고 신경질적인 것은 쪽빛 결핍증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저 바다 잘 챙겨 짊어지고 가십시오.”

유럽에서는 16,7세기 까지만 해도 ‘푸른색’(쪽빛)계열 사용은 거의 금기시하다시피 했는데 인상파가 출현하며 과감하게 이 색을 썼지만 초기에는 화면의 바탕색 일부 정도였다고 한다. 그 연유가 이 푸른색을 인도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사실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쪽빛’은 인도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쪽’은 마디풀과에 속하는 1년생 식물이다. 원산지는 인도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에서도 다량 재배됐었다. 쪽빛 또는 남빛은 ‘Indigo’(Dark Biue)라 불리는데 라틴어 어원으로는 ‘Indicum’, ‘인도에서 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남색물질은 ‘Indican’이고 청남은 ‘Indigotin’이요 남홍은 ‘Indirubin’이다. 인도, 중국, 페르시아 인들 사이에서의 푸른색 사용역사는 4,000년 전으로 올라간다.

‘쪽빛바다’, ‘쪽빛하늘’이라는 말을 애용할 만큼 ‘쪽빛’은 우리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오는데 시인들 덕이다. 옛 사람들은 ‘고품격 사경’을 할 때 꼭 ‘감지’(紺紙)를 썼는데 그 감색도 쪽빛이다. 보물 1412호로 지정된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권제15)’이 잘 말해주고 있다. 불교에서 소중하게 쓰는 감색이 인도에서 출현한 ‘쪽빛’과 닿는 것을 보면 불법으로 맺어진 인연은 깊고도 깊은 듯하다.

그렇다면 그 쪽빛은 어떻게 세상에 나투는 것일까! 쪽을 물에 담갔다 우려내면 바로 쪽빛이 나오는 것일까? 아니다. 1년생 식물 ‘쪽’은 연두색이다. 자연에서 채취한 쪽이 자신의 빛깔 ‘쪽빛’을 내려면 장인의 손길만으로도 안 된다. 끝내는 다시 자연과 만나 서로 호흡해야만 제 빛깔인 ‘쪽빛’을 낸다. 여기에 쪽빛의 신비로움이 스며있다.

바로 그 오묘한 ‘쪽빛’을 발현하는 사람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정관채(49세) 불자다. 나주 출신의 그는 미술학도였다. 그의 쪽 인연은 예용해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간접적으로 닿으며 시작됐다.

당시 예용해 위원은 한국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6.25 한국전쟁 전후로 사라진 ‘쪽’을 살려야 한다는 원력으로 어렵게 구한 쪽 종자를 어느 땅에서 틔워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예용해 위원의 신념은 당시 목포대 미술학과 강의를 하고 있던 박복규(성신여대)교수에 전해졌는데 정관채 씨는 바로 박복규 교수의 제자로서 미술학도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박복규 교수는 정관채 씨에게 “나주 땅에 쪽을 심어 쪽빛을 창출해 보라”고 권유했다. 아마도 그의 심성이 쪽빛을 빚어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영산강 유역의 나주에서는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염색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특히 쪽 염색을 주로 다뤘다. 땅은 비옥하지만 굽이치는 영산강인지라 범람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강 옆에 살던 사람들은 벼농사 보다 쪽을 심어 생계를 유지해 갔고 이에 쪽 염색이 발달한 것은 당연지사. 더욱이 그의 동네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샛골은 중요무형문화재인 무명베 ‘샛골나이’로 명성이 드높았고 ‘쪽물 들인 샛골나이’는 조선시대 진상 품목 중 하나였을 정도로 유명했다. 정관채 장인의 어머니 최정임씨도 이 일에 주력했는데 어머니의 업을 이음으로써 정관채 가문에서는 4대째에 이르는 것이다.

“옛날에는 염색만 한 게 아니라 직조까지 손수 다 했습니다. 물레 돌리시는 어머니 옆에서 놀다 쪽 이불 덮고 잠이 들고는 베틀 옆에서 일어나 아침을 맞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박 교수의 권유에 처음엔 주춤했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미술학도로서 쪽빛을 손수 낸다는 매력과 어머니의 손길을 고향 땅에서 계속 이어간다는 정감어린 풋풋함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결국 그는 1978년 나주에 쪽을 심어 처음으로 쪽빛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를 도와 쪽 염색을 해 보았던 그로서는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그러나 첫해부터 완벽한 쪽빛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 전통 오방색의 하나로서 동쪽과 하늘, 봄을 뜻하며 창조와 생동을 상징하는 쪽빛(청색)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지만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하기에 쪽빛에 더 매료된다”고 말한다.

3월에 파종한 쪽은 7,8월에 거둔다. 가능한 한 이삭형의 꽃이 필 무렵의 새벽녘, 습기를 한껏 머금은 잎과 줄기를 베어 낮에 물에 담가두는데 이 물 역시 개울물이나 강물, 빗물이면 더 좋다. 그리고는 2,3일 후 쪽잎을 건져내면 우려 낸 초록빛의 색소물을 얻는다. 쪽잎을 우려냈지만 쪽물이 아닌 초록빛이다. 이 단계에서 조개껍데기 등의 패류를 1000도의 장작불로 12시간 이상을 구워 얻은 석회를 넣는다. 초록색 물과 석회가 만났을 때 장인은 당그레질(휘저음)을 하는데 그 당그레질에 따라 거품이 인다. 그 거품은 처음엔 연두색이었다가 이내 푸른색으로 변하고는 다시 꽃거품이 일며 감청색으로 변한다.

“이 때 손으로 물을 두 손에 담아 보면 잠깐이나마 청색이 나타납니다. 금방이라도 쪽색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실은 아닙니다.”

꽃거품이 사라지면 감청색 물은 다시 갈색 물로 바뀌어 버린다. 다양한 색이 한 항아리 속에 담겨 있지만 실은 그 어떤 색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눈앞의 색에 현혹되지 않고 며칠 기다려 항아리에 아래 가라앉은 침전물을 정화한 후 쪽대나 콩대를 태워 얻은 잿물에 넣어 10일에서 보름 정도 발효시켜야 한다. 발효가 끝나면 완성된 염료 ‘꽃물’이 소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지막 과정에서 드러낸 염료 역시 연두색에 가깝다. 그 꽃물을 저어주면 보랏빛 거품이 일다가 노랑 색조를 띠고 다시 남색으로도 변한다. 한마디로 ‘신통’하기만 하다. 그러나 쪽빛은 아니다.

장인은 다시 이 염료에 천을 넣어 원하는 색을 빚어야만 한다. 물들여진 천은 자연이 주는 생명의 원천 ‘공기’를 만나야만 푸른색으로 변한다. 물들이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함에 따라 원하는 연푸른색, 짙푸른색, 쪽색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전 과정 중 단 한 단계에서라도 실수하면 다음 단계는 없다. 따라서 장인의 손길이 아니고는 파종에서부터 최종 염료를 얻어 쪽빛을 내는 20여 단계의 과정을 조화롭게 빚어낼 수 없는 것이다.

“비워야 합니다. 무엇인가 얻겠다는 마음 하나로는 끝내 원하는 아름다운 쪽빛을 얻을 수 없습니다. 채도를 높이고자 석회를 많이 넣으면 오히려 채도가 낮은 녹색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더 어두운 탁한 색도 나옵니다. 급한 마음으로 발효 과정에서 물의 온도를 조금만 너 높여도 썩고 맙니다.”

‘쪽빛’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쪽물 들인 모시 옷을 예로 들었다.

“분명 쪽빛입니다. 그러나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 빛에 의해 어떤 이에게는 짙푸른색으로, 어떤 이에게는 남색으로, 어떤 이에게는 흑색으로도 보입니다.”

분명 자신의 색인 ‘쪽빛’을 갖고 있음에도 쪽빛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시인들은 ‘쪽빛 하늘’과 ‘쪽빛 바다’를 시어로 쓰고 ‘보약’이라 했을 것이다.

<사진설명>시골집에서 쪽염색을 하고 있는 정관채 장인의 미소가 싱그럽다.

2001년 40대 초 젊은 나이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그는 나주천연염색문화관과 함께 쪽염색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7월 21일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에 자리한 자신의 염색장에서 무료강좌를 진행했다. 30여명 하려 했지만 몰려든 사람은 100여명. 제주도, 강원도 등지에서 하루 전에 도착한 사람들을 위해 잠자리까지 마련해 줄 정도다. 사비를 털어 100여명이 사용할 천 재료는 물론 간식까지 준비해 가며 열강하고 있는 그의 바람은 무엇일까?

“이 분들만큼은 우리의 쪽염색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화학염료 염색이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누군가 천연염색의 매력을 잊지 않는다면 쪽염색 또한 그 생명을 이어갈 것입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미술공예과 초빙교수로서 강의까지 맡아 쪽염색 대중화를 선도하는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언젠가 쪽물 들인 명품 바지를 만들에 세계시장에 내놓겠다”고 한다. 일본의 천연염색 시장을 감안하면 그의 말이 호언만은 아니다. 쪽염색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상 누군가는 쪽물 들인 한국 명품 청바지도 세상에 선보일 것이다.

조화로운 자연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순수의 쪽빛. 염료 추출 때까지 그 어떤 과정에서도 ‘욕심’이라는 이물질이 들어가는 순간 쪽빛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그는 전 과정이 아무리 조화롭다 하더라도 ‘마음’이 배이지 않으면 또한 사라질 것임을 안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도 받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은 장인이다. (연락처 061-332-5359) 
 
나주=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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