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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창일당 기관지 ‘혁명’의 주필로 활동

기자명 법보신문

임시정부 내분 상황에 비통
독립운동세력의 통합 강조

성숙은 어느날 상해를 떠나 소련으로 가는 길에 유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북경에 들른 원세훈과 신숙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원세훈과 신숙은 상해임시정부와 이승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상해임시정부는 개조파와 창조파로 나뉘어 싸움이 한창이었고, 그 여파는 이미 북경까지 미치고 있었다. 사실 상해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 발족한 이후부터 내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승만이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조선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아래 맡겨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는 참가자들의 지역감정과 이념적 방향의 차이 그리고 독립투쟁의 방법을 놓고도 노선의 차이가 심했던 상황에서 그 일이 발단이 되어 내부 분열을 낳게 되었다.

그러다가 1923년 1월 안창호를 임시의장으로 해서 열린 국민대표회의가 분열로 가는 결정적 자리가 되었다. 이 자리에서 창조파는 이승만을 탄핵하고 안창호의 대표권을 불신임할 것을 주장하면서 임정의 해체를 주장했고, 반대로 여운형과 윤자영 등이 주축인 개조파는 임정은 유지하면서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중간파까지 세 부류가 있었다. 결국 이 자리에서 이승만은 탄핵되었고 안창호의 대표권은 승인되었다. 하지만 창조파가 자기들끼리 임정을 대치하는 국민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임정이 이 기구의 해산을 명령했고, 창조파는 더 이상 상해에 있지 못하게 되자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성숙이 북경에서 만난 원세훈과 신숙은 바로 이 창조파를 이끄는 대표적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임정은 이승만, 안창호, 박용만 등 세 세력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안창호의 흥사단과 이승만의 동지회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태에서 기호파가 이승만을 지지하고 나서자, 이번에는 미국과 만주·간도에 있는 국민회가 안창호를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안창호를 지지하는 평안도파와 함경도 출신이 중심인 창조파는 기호파에게 밀렸고 이때부터 임시정부와 해외독립운동에서의 주도권이 기호파로 넘어갔다. 성숙은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독립운동의 길에서 서로의 지역과 출신성분, 이념,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의 독립은 요원해 보이기만 했다. 더구나 북경에서 조선의 상황을 보니 더욱 암담하기만 했다. 3·1독립선언에 서명했던 33인 가운데 만해 스님만 훌륭하게 할 일을 해내고 있을 뿐, 다른 이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성숙은 안팎의 상황을 살피다가 당분간 공부를 하면서 사상적 무장을 통해 세력을 확산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자기 공부만 하면서 바라보고 있다가는 뜻을 펴보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던 유학파들 가운데 뜻이 맞는 장건상, 양명, 김용찬, 장지락, 이낙구 등 8명과 함께 창일당을 조직하고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성숙과 동지들은 조선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을 하나로 통일한다는 포부에서 창일당(創一黨)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기관지 『혁명』을 발간했다. 성숙이 주필을 맡은 『혁명』은 1924년부터 발간해 1926년까지 40여 호를 내는 동안 전세계 조선 유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성숙은 이 기관지의 주필을 맡아 글을 쓰면서 주옥같은 논문을 통해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강조했다. 또한 한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쇄소가 없었기 때문에 전 지면을 스스로 판을 쓰고 석판으로 인쇄하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였고, 이에 동지들은 성숙의 열정과 논리에 감동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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