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경 스님]삶의 기적, 단순함에 눈뜨라

기자명 법보신문

삶을 맞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적이 없는 것처럼 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적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채우는 기쁨이 비우는 즐거움을 넘지 못함도 알고 보면 단순한 법칙에 근거한다. 오르려면 우선 가라앉아야하듯이, 이 작은 기적이 삶을 변화시킨다.

한 성자가 있었다. 그가 어딘가를 다녀오기 위해 제자를 데리고 가다 강을 만나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성자의 명성을 알고 있던 한 사내가 불쑥 나타나 시비를 걸었다. “성자로 불리는 이여, 당신은 맨발로 강을 건널 수 있습니까?” 성자가 말했다. “난 할 줄 모르오.” 사내가 신통으로 물위를 자랑스레 걸어보이고는 말했다. “이런 기적도 행하지 못하면서 성자라고 할 수 있소?”

“사내여, 물위를 걷는 데 얼마나 수련을 했는가?” “20년 고행의 결실이지요.”

성자는 말없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넜고, 사내는 물위를 걸어 더 빨리 도착해 있었다. 그가 성자에게 다가가 더욱 뽐내며 말했다. “보다시피 당신은 나에게 졌습니다. 이제 내가 당신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나에게 귀의해올 것입니다.”
 
성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공에게 뱃삯을 물어 5루피를 건넸다. 그리고 사내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대가 이룬 능력은 대단한 것이네. 자넨 지금 내가 뱃삯으로 5루피를 내는 것을 봤을 거야. 20년 수련으로 물 위를 걷지만, 나는 단 5루피로 강을 건넜지. 생각해보게! 그 고행이, 네가 믿는 삶의 기적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사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20년 고행이 5루피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장마에 접어들자 공터의 오죽(烏竹)과 나무들은 물론이고, 조그만 화분에 담긴 야생화들도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백여 개의 화분에 담긴 갖가지 화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제는 이름도 제법 알게 되었다. 요즘은 수분의 증발을 막기 위해 화분에 깔아놓은 이끼에 자주 눈이 간다. 식물 중에는 변덕스럽고 까탈을 부리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확실히 부담이 많이 간다. 그러나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도 있으니 대표적인 게 ‘이끼’다. 이끼는 뿌리랄 것도 없이 밑바닥에 가느다란 그물망을 만들어 안착한다. 위를 향해 오르려고도 하지 않고 밑바닥에서 조용히 세상을 지배하며 극단적 단순함으로 3억5천만년을 살아왔다. 이 인내의 작은 힘이 모여서 거대한 ‘충만’인 자연생태계가 이뤄진다. 그렇다고 단순함이 일차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삶의 단순함에 눈뜨라. 꽃을 옮기니 나비까지 따라오듯이(移花兼蝶至), 행복 위에 기적이 덤으로 올 테니까!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