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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청정승가 모델로 일본의 계율 부흥 꿈꾼다

기자명 법보신문

일본 계율학자
마츠오 겐지(松尾剛次) 교수

일본을 대표하는 계율학자 마츠오 겐지 야마가타(山形)대학 교수가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청정계율이 살아있는 한국불교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서 왔다는 그는 짧은 방문 기간 동안 동국대 김호성 교수와 동행하며 해인사 율원, 불국사 석굴암, 분황사, 황룡사지, 조계사, 선학원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들을 둘러보았다. 또 해인사 율원장 무관 스님, 민족사 윤창화 사장, 정우서적 이성운 사장, 부천대 김광식 교수 등을 만나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다.

“한국의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군대 역시 가지 않습니까?”

“성행위를 하는 것만이 파계가 아니라 군대를 가는 것 또한 파계행위가 아닙니까?”

“군대를 가는 동안에는 속퇴를 하여 사분율의 규정에서 잠시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여름 물기운이 스며든 해인사의 산방. 해인사 율원장 무관(無觀) 스님을 만난 일본 계율학자 마츠오 교수는 그동안 한국불교에 대해 품고 있던 의문들을 연달아 토해냈다. 한국의 조계종단을 ‘일본불교의 모델’로 생각하고 찾아온 일본 계율학자의 질문은 날카롭고도 매서웠다.

일본과 계율. 일본불교를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물론 전공자들에게도 둘의 상관관계는 그다지 깊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찌감치 계율을 포기하고 비구승가의 전통이 붕괴된 일본에서 계율을 전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츠오 겐지 교수는 상당히 역설적인 인물일 지도 모른다. 가마쿠라 시대를 전공하던 역사학도가 계율의 현대적 모델을 직접 찾기 위해 한국에 다다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경로였다.

역사 전공하다 계율학자로 전환
 
마츠오 겐지 교수가 불교를 만나게 된 계기는 도쿄대에서 역사를 전공하면서부터 비롯된다. 그는 대학에서 일본 사상사의 빅뱅기로 일컬어지는 가마쿠라 시대를 주목했다.

“저와 함께 중세 가마쿠라 시대를 공부하던 제 친구들은 종교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종교와 별개로 일반사를 공부하는 경향이 강했죠. 맑시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1970년대 도쿄대의 연구경향이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가마쿠라 시대는 불교의 시대였고, 가마쿠라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불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죠.”

일본 역사에서 가마쿠라 시대는 ‘일본식 조사불교’가 탄생한 시기였다. 이 시대에 호넨이나 신란, 니치렌 등 각 종파의 종조로 추앙받는 위대한 고승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들의 사상은 넝쿨처럼 번져가 일본 전역을 불교로 뒤덮었다.

에이손-닌쇼 통해 계율부흥 전개
 
가마쿠라 시대를 공부하면서 마츠오 교수가 가장 주목한 인물은 바로 에이손(叡尊)과 닌쇼(忍性)라는 율승들이었다.

가마쿠라 시대 관승체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던 둔세승(遁世僧)들은 물론 국가에 소속된 승려들조차 계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염불이나 주력 등 한가지 수행법에 몰두해 오로지 일념으로 수행하는 것을 중시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등장한 에이손과 닌쇼 스님은 ‘계율의 부흥’을 주창했다. ‘석가모니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중생구제를 실천하자’는 이들의 사상은 석가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일본불교의 한 전통으로 남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존재로 여겨지던 한센병 환자들의 고름을 직접 씻어주며, 그들을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칭했던 에이손과 닌쇼의 삶을 공부하면서 마츠오 교수가 느낀 감동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저와 일본불교의 만남은 에이손·닌쇼 등의 한센변 환자에 대한 구제활동을 학부의 졸업논문에서 다룬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만, 당시 한센병 환자가 처해있던 상황을 이해하면 할수록 에이손과 닌쇼라는 인물에 대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센병 환자의 구제에 힘썼던 에이손·닌쇼 등의 활동을 통해 실현된 자비의 중요성, 그들이 처했던 곤란함, 그들의 사상이 갖고 있는 혁신적 의미가 실감났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정신은 시간을 초월해서 인생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에이손과 닌쇼의 삶에 대한 이해는 한 명의 역사학자를 불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다. 동시에 그는 일본불교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계율이 바로 정(定)·혜(慧)의 근본이 되는 불교의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계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근본이다. 계가 없으면 정도 없고 혜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계를 무시한 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를 계율전공자, 나아가 계율부흥을 꿈꾸는 운동가로 변모시켰다. 일본중세의 선과 율』(2003), 『에이손·닌쇼』(편저, 2004), 『닌쇼』(2004), 『계율의 책』(편저, 2006) 등의 저술을 연달아 편찬하면서 마츠오 교수는 “일본 불교계에서, 적어도 율종에서만이라도 사분율에 의거한 비구승단이 성립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를 사람들은 ‘마츠오 겐지의 계율부흥운동’이라고 부른다.

그가 한국불교, 특히 1960년대 정화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불교계가 장례식장으로 변모한 데 비해 한국불교는 청정계율의 보존을 통해 살아있는 수행공간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저 높은 곳을 향해 홀로 걸어가는 사람을 ‘운동가’라 지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개인의 운동이 먼 미래의 정신과 맞닿아 있을 때 우리는 그를 선각자 내지 운동가라고 지칭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 계율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츠오 교수의 운동은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지향적 ‘정진(精進)바라밀’임에 분명하다.

사분율 의거한 비구승단 설립이 꿈
 
무관 스님과의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마츠오 교수는 수백명의 남녀가 해인사 선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와 함께 해인사를 찾은 동국대 김호성 교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왜 저렇게 모여있는 거죠?”

“여름 휴가를 내서 수행을 하기 위해 산사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한국에서는 저렇게 여름에 4박 5일 정도 절을 찾아 직접 수행을 행하는 신도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청정승가가 저런 불자들을 탄생시켰군요. 일본에서는 결코 찾아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놀랍습니다. 정말이지 놀랍고 부럽습니다.”

해인사 산문을 나오면서 마츠오 교수는 김호성 교수에게 자신의 감회를 전했다.

“저는 이곳에서 한국불교의 저력과 일본불교의 미래상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외롭고 쉽지 않은 여정이겠지만 그 길을 계속 걸어갈 만한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한국과 일본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통분모가 여기에 있군요.”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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