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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조선불교학인대회 개최 의의

기자명 법보신문

근대 교육체계 마련 위한 조선불교계의 몸부림

경전 강의 외에도
경제학·세계사 등
다양한 과목 신설

학인대회 개최 후
조선불교학인연맹
결성 및 활동

총독부의 불신임
1933년 기점으로
활동 현격히 침체

<사진설명>조선불교학인대회를 주도하였던 청담 스님.

일제시대 불교계 인재 양성은 근대 사회의 시대적인 분위기에 맞는 포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시급한 과제였다. 그런 까닭에 불교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인재 양성을 위하여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여 강원·보통학교·중앙학림·지방학림과 같은 교육기관을 운영하여 왔다.

교계의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세력은 서구의 학문을 수용하여 신식학교를 세우고, 새로운 교과과정을 편성하여 변화된 세상에 불법을 포교할 수 있는 포교사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반면에 전통 수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승려들은 강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강원은 승려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기관으로 주로 한문으로 된 불경을 가르쳤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승려들은 학인이라고 불리었다.

신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이라고 지칭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 불교계 지식인들 가운데는 교육 현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까닭은 교계에 학자다운 학자가 배출되지 못하고, 종교에 승려다운 승려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성은 학인들 사이에서 강원 교육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전국적인 규모의 학인대회가 필요하다는 형태로 나타났다.

1928년 조선불교학인대회가 개최된 배경은 이러하다. 1910년대 후반부터 30본사 주지 회의에서 전국 본사에 흩어져 있는 강원을 지방학림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교계의 의견을 모아서 각 본산에서 시행하던 강원 중심의 교육사업을 통합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세워서 인재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다.

또 한가지는 신학문을 공부한 학생들에 비해서 구학(舊學)을 배운 학인들이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풍조를 반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 교계 일각에서는 신교육제도 시행 이후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못한데 대한 자성에서 상대적으로 구학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승려들도 있었다.

조선불교학인대회는 불교를 배우는 과정에 있는 젊은 승려들이 교계의 발전에 관한 의견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목적에서 개최되었다. 학인대회는 1928년 3월 14일부터 17일까지 각황사에서 열렸지만 발기 모임은 1927년 10월경부터 진행되었다. 학인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은 주지가 아닌 15세 이상의 승려로 제한되었다. 당시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예정된 승려는 모두 52명이었으나 실제로 참가한 승려는 46명이었다고 한다. 대회가 개최되자 임원 선출이 있었는데 회장은 개운사의 박용하(법호 : 운허), 부회장은 범어사의 차상명, 서기로는 백양사의 주동원, 사찰(査察)에는 건봉사의 김병규 등이 선임되었다. 이 대회의 개최 목적은 이들이 채택한 강령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 우리는 불타의 구제자의 중심자로 큰 임무와 굳건한 행실을 가지자.
둘째 우리는 시대에 적응한 교화방법을 만들자.
셋째 우리는 불교 조선의 건립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통일적으로 준비하자.
넷째 우리는 불타의 자리이타의 불지(佛旨)를 몸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불교 교육제도의 확립을 기하자.

이 강령은 불법을 실천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교육제도와 교과과정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교리연구에 대하여 선학·율학·교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야한다는 주장과 참선·간경·염불 등에도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어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지만 결론은 먼저 교학을 배우고 참선 수행을 해야한다고 내려졌다.

학인들은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충실히 다지는 수행을 통하여 불교 발전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계정혜란 계율을 충실히 지키는 것과 선정(禪定)을 닦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 그리고 지혜로운 눈을 얻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혜안을 뜻한다.
결국 학인들은 전통적인 수행에 충실하되 실행 방법에 있어서는 신학문을 수용하여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학인대회에서 결의된 교육제도의 구성은 초등과 3년, 중등과 3년, 고등과 4년으로 정하여졌다. 종래 강원의 교육 연한은 사미과 1년, 사집과 2년, 사교과 4년 대교과 3년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중등과에 불경 이외에 조선불교사·조선역사·조선지리·동물학·식물학·광물학·생리학·수학·일본어 등의 과목이 추가되었다. 고등과는 세계종교사·인도철학·철학개론·세계지리역사·지문(地文·자연지리학)·경제학 등의 과목이 신설되었다. 학인들이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세계 철학 사조와 지리, 경제학을 모르고서는 포교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학인들은 이러한 취지를 실행할 수 있는 상설기관으로 ‘조선불교학인연맹’을 두기로 하고 기관지 『회광(回光)』을 연 2회 발행하기로 하였다. 『회광』발행은 이순호(법호 : 청담)가 담당하였다. 그리고 학인연맹 규약을 제정하기 위하여 규약제정위원으로 이순호와 박용하·조종현 등 5명이 선출되었다.

학인대회의 결과로 조선학인연맹이 성립되고, 신학문을 포괄하는 교과과정이 확립되었지만 그 실행은 쉽지 않았다. 1929년 3월 15일 개운사에서 제2차 학인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1차 대회에서 결의된 교육제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건의안을 조선불교중앙교무원과 종회에 제출하였다. 이 건의안은 교계에서 부분적으로 수용되어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은 매년 2,400원의 보조금을 지원하여 개운사에 ‘고등연구원’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1932년 3월 15일 개운사에서 제3차 대회가 열렸다. 3차 대회에서는 의안심사·강원교육 개선안 실행촉진·학인연맹 확장·연구원 확장 등의 의제가 토의되었다.

같은 날 오후에 제4차 학인연맹 정기총회가 역시 개운사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경과보고·지방위원 상황보고·강원교육제도개선안 실행촉진에 관한 건·연맹원 제한에 관한 건·중앙기관 위치에 관한 건·임원선거·예결산편성에 관한 건 등이 논의되었다.

<사진설명>조선불교학인연맹 기관지 『회광』 창간호에 실린 석전 박한영의 글.

그로부터 1개월 정도 지난 4월 18일 통도사에서 학인총연맹 임시총회가 열리었다. 이 총회에서 중앙기관이 통도사로 이전되었다는 사실과 명칭이 ‘조선불교학인총연맹’으로 바뀐 사실이 눈에 띈다. 명칭이 학인총연맹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지방별로 개별 연맹이 성립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 회의에서 집행부 임원이 선출되었는데 이 임원들은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재선출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 까닭은 임시총회를 개최하면서 관청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당국에서 선임된 임원을 불신임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인연맹은 1933년을 기점으로 활동이 침체되어 더 이상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불교학인대회는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근대화를 지향하던 불교계의 현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제시대 불교계의 개혁이 신학문을 수학하였거나 외국에 유학한 유학승들에 의해서 진행된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문 경전을 수학하던 청년 학인들이 전통적인 교육제도로는 불교계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개혁을 단행하기 위하여 힘을 모았다. 이들은 전국적인 규모의 집회를 개최하여 의사를 결집하고자 하였지만 모여든 승려들의 숫자는 얼마되지 않았고,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교과과정을 개편하였지만 교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교계의 호응도 크지 않았다. 대회를 주도하였던 승려들은 단지 집회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청의 불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임원들을 재선임하는 나약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인대회가 의미를 지니는 것은 불교계가 전근대사회의 틀을 깨고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전통 교육의 중심에 있었던 학인들이 그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비록 그들이 피교육자의 신분이었고 교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구학을 배우던 그들의 주장이 근대적인 개혁을 지향하였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김순석(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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