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⑫ 매듭장 심 영 미

기자명 법보신문

下心을 잇고 이어
나비가 되고 꽃이 되니
나는 행복한 사람

19세 때 유천만 장인 만나
매듭 공예 전수 받아
한·중·일 3개국 교류전
주도하며 세계화 견인

中, 화려- 日, 사실적
韓, 정갈-섬세 매력
생활 장신구 변화 따라
현대 매듭도 발전 거듭

<사진설명>40여년 매듭일에만 전념해 온 심영미 장인이 비톳에 실을 걸어 꼬고 있다. 사진=채한기 기자.

실과 실이 만나 마디가 생기고, 그 마디는 다시 또 다른 마디와 만나 나비가 된다. 그 나비 매듭은 다시 풀어져 실로 돌아가지만 다시 매듭과 매듭의 인연을 맺으며 한 송이 매화로도 피어난다. 이처럼 매듭은 인연 속에 윤회를 거듭하듯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님을 우리에게 조용히 전해준다.

매듭장 심영미(62세). 그는 지난 40여년 세월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한 올 한 올 엮듯 매듭에만 정진해 왔다.

“매듭은 결혼하기 전부터 배웠어요.”

작고 한 매듭장 유천만 씨 옆에 그가 살았던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광화문 일대, 당시 시구문안일대는 1940,50년 대만 해도 실, 끈, 매듭의 산실이었다. 이곳에서 매듭지어진 허리띠나 노리개술, 염낭끈 등은 방물장사가 이 곳 저 곳을 누비며 팔았고, 동상전, 즉 지금의 종각 부근에서는 전을 벌여 지역 전체가 매듭으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다.

유천만 장인 역시 시구문에서 살고 있었다. 19살의 심영미는 ‘돈벌이’차 옆집에 들러 매듭일을 도왔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였지만 어느새 매듭 재미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의 손끝 솜씨를 눈여겨 본 유천만 장인은 자신의 기술을 하나씩 전수하기 시작했고 심영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의적인 매듭까지 내보였다. 유천만 장인은 심영미를 며느리로 삼았다.

심영미 씨의 매듭 역사는 유천만 대(代 )보다 한 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저의 왕고모님께서는 궁에서 매듭일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님도 그 고모님으로부터 배우신 겁니다.”

유천만 장인의 아들, 그러니까 심영미 씨의 부군 유무웅 씨도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하는 매듭 공예가다.

“아버님은 당시 궁에 계셨다는 왕고모님이 주문하시는 대로 수도 놓고, 주머니 끈도 짜셨다고 해요. 그 때만 해도 아버님은 특별한 기구를 갖고 계시지 않아서 문고리에 실을 걸고 매듭을 하셨지요. 진흙으로 장구실패를 만드는가 하면 납덩어리를 넣은 무게추를 만들어 쓰기도 하셨는데 용구가 부족해도 그 때 만든 매듭은 일품이었습니다. 명필이 붓을 탓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참말이지요. 그에 비하면 저는 이렇듯 많은 용구도 있는데.......”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오륜마크와 호돌이를 직접 작업해 세계인에게 우리의 아름다움을 알리 알렸다. 또한 1997년 일본 나가사끼에서 개최된 한·중 장인 초청시연회 매듭부분에 초대돼 물레에 실을 풀어 연사하고 다회를 치는 매듭의 전 과정을 선보였다. 한중일 국제매듭 교류전의 시발점인 1988년 롯데 백화점에서 한국매듭연합회 국제 매듭전을 가졌고 이어서 열린 1991년에는 대만 박물관에서, 94년에는 일본 경도 박물관에서, 97, 98년에는 다시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국제전에 참여 한 이후 한중일 3국 매듭 전시회를 주도해 오며 한국 매듭의 세계화를 견인하고 있다.

매듭이 갖고 있는 진정한 매력은 무엇일까? 실의 색감에서 나오는 오색창연함일까?

“매듭은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수나, 칠보, 금은공예와 어우러짐으로써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고 할까요. 연극 측면에서 보면 주연이 아닌 조연이지요.”

<사진설명>낙지발 대삼작. 낙지발 술이 기품있게 뻗은 대삼작 노리개는 크기 뿐 아니라 색감도 화려하다.

궁중에서는 5월 단오절에 백옥과 비치로 된 외줄노리개를 달고, 8월 추석에는 삼작노리개를 달았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주로 은삼작을 달았는데 혼례 때 사용하고 나면 평생 간직할 요량으로 장롱 깊숙이 간직하곤 했다. 바로 그 노리개의 품위와 멋스러움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매듭이니 매듭이란 그가 말하는 것처럼 주연 아닌 조연이지만 사실은 주연 못지않은 조연인 셈이다. 매듭은 여인네의 전유물은 아니다. 선비들이 한 여름에 쓰는 부채 끝에 다는 선추에도 매듭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으며 죽은 사람의 길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의 이름을 쓴 깃발인 인로왕번에도 매듭은 지어져 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우리 매듭은 색다른 미감을 갖고 있다. 중국 매듭은 일단 현란하다. 복잡한 기하학 속에 다양한 문양과 색을 조합한 중국매듭은 화려하다. 일본 매듭은 사실적이다. 컴퓨터로 디자인 한 후 작업한 매듭은 꽃이나, 곤충의 입체감을 살려 언뜻 보아도 ‘진짜’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우리 매듭은 중국처럼 화려하지도, 일본처럼 작위적이지 않다. 정갈하고 섬세하다. 나비지만 모양새만 나비일 뿐 실제 나비로 보이지는 않는다. 해학적인 나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색실을 사용했지만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다. 섬세한 문양과 술의 아름다움이 빚어 낸 우리 매듭의 멋은 아무래도 손끝에 묻어 나오는 정성이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매듭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집중’이다.

<사진설명>가회동 ‘동림매듭박물관’내부 전경.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매듭을 풀듯 조심스럽게 일을 풀어보라 하잖아요. 언뜻 보기에는 쉬운 듯 보이지만 온 정신을 한 곳에만 쏟아 부어야 해요. 갓난 아이 보듬듯, 정말 선사가 수행할 때 이르는 말처럼 사막에서 물을 찾듯 집중하고 또 집중해야 합니다. 그만큼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엉켜버리고 맙니다.”

우리 매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

3점 이상이 한 점 위에서 교차해야 하는 형태이어야 하는 것이 그 첫째요, 앞면과 뒷면이 똑같아야 하는 것이 둘째요, 중심에서 시작해 중심에서 끝나는 것이 셋째다. 물론 좌우 대칭은 필수다.

심영미 장인은 기계로 실을 뽑지 않고 직접 손으로 실을 연사해 술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분야에 관한한 독보적이다. 그는 천연염색에도 조예가 깊은 장인이다. 그는 자수협회 천연염색분과에서 5년 여 동안 염색을 직접 한 바 있으며 지금은 충청도 홍성에 밭을 일궈 쪽이나, 황화, 석류 등을 심어 염색하고 있다.

그는 거리를 지나다가도 누군가가 입고 있는 옷 색깔이 예쁘다 싶으면 집에 돌아와 갖고 있는 실을 온통 겨내 들고는 이리저리 견주어 보는 습관이 있다. 색 배합이 의외로 매듭에서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듭의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한 신경을 쓰는 장인이기에 천연연색을 하지 않은 색은 눈에 거슬렸으니 그가 직접 염색작업을 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일반 상품에까지 천연염색을 쓰기는 어렵지만 작품에 임할 때 만큼은 천연염색을 고집한다. 소목에서 얻은 붉은 빛을 제일 좋아한다는 그는 “이 빛을 보면 지친 마음도 이내 가라앉아 정화되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작품에 임할 때는 천연염색 뿐 아니라 꼭 명주실을 애용한다. 명주실에 천연염색이 더해져야 색과 모양이 덜 바래거나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장인의 외곬스러운 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지금도 전통과 현대 매듭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전통매듭은 원색적이어서 화려해 보인 반면 현대 패션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새로운 매듭 창출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현대 매듭은 패션 분위기에 맞게 원색보다는 2차 색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 노리개는 비칠 듯 말 듯 한 감칠 맛 나는 멋이 있지만 현대 노리개는 보기에 탐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매듭 역시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생활한복이 인기를 끌면서 매듭도 이에 어울리는 간단하면서도 단아한 이미지의 매듭을 끊임없이 창출해 내야만 한다.

“매듭은 모양새도 중요하지만 색감에 대한 미감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본분을 잊은 채 화려함과 사실감만 고집하면 노리개나 한복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매듭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물론 너무 멋진 매듭이 나오면 매듭에 맞는 장신구나 옷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매듭이 갖고 있는 원래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통과 현대라는 두 갈림길에서의 매듭은 둘인 듯 보이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옷과 장신구에 맞는 색과 매듭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매듭이 갖고 있는 진정한 멋을 가슴에 안은 장인이다. 매듭이 주연이 아닌 조연이듯 그도 인생무대에서 하심을 잊지 않으며 조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다.

“매듭하기를 잘 했어요. 제 며느리도 배우고 있지요.”

함박 웃는 웃음 속에 장인만이 머금을 수 있는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한국매듭공예연합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서울 가회동에 자리한 동림매듭박물관 (3673-2778)에서 제자들과 함께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사진=월간 한복 김현중

매듭이란
끈을 소재로 엮고  맺어

매듭이란 끈을 소재로 엮고 맺는 일을 말하며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돼 있다. 매듭은 매가닥을 엮어 모은다는 뜻으로 하나의 끈을 갖고 세 마디 이상의 교차점을 이루며  형태를 맺는다. 매듭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 중 하나가 끈목과 술이다.

끈목이란 매듭을 하기 위해 여러 올의 실로 짠 끈을 말하며 끈목에는 광다회와 원다회가 있다. 광다회란 폭이 넓고 납작하게 평직으로 짠 것을 말하는데 문무관의 공복에 주로 착용했었다. 원다회란 노리개 끈과 각종 유소를 만드는 소재로 쓰기 위해 짜는 것으로 끈목의 둘래가 둥근 것을 말한다.

술이란 띠, 끈목, 매듭의 끝에 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을 가리킨다. 술의 종류로는 딸기 모양의 ‘딸기술’과 함께 ‘봉술’과 ‘방망이술’이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낙지발술’, ‘방울술’. ‘전복술’, ‘금전지술’, ‘잔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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