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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가난 없이는 맑은 하늘도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길상사 전 회주 법 정 스님

아주 견디기 어려운 여름이었습니다. 이러할 때 안거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수행자들은 백중날 법랍을 한살씩 더 먹게 됩니다. 자신이 법랍을 한살 더 보태도 될 만큼 착실히 수행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입니다.

절에서는 해제 날 정식 스님이 되는 계를 받곤 했습니다. 저도 옛날 해제 날 계를 받고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날이 되면 그동안 중노릇을 제대로 했는지 안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겉만 번지르르 할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제대로 수행을 했는지 안했는지, 수행자로서 제 구실을 제대로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입니다.

예부터 처서가 지나면 삼베옷은 말려서 벗어놔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절기가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도 온대에서 아열대로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날로 심각해져가는 지구 온난화 현상은 무엇을 말합니까. 온난화는 지구가 중병이 들어서 내뿜는 신음입니다. 현대 문명은 석유문명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석유 소비로 인한 배출가스가 지구 온난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장마가 끝나면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장마철보다도 더 많은 비가 오고 있습니다. 여름 날씨는 8월 초순의 기운이 절정이기 마련인데 지금은 8월말의 기온이 오히려 초순의 기온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모두 온난화의 결과입니다. 과도한 석유 사용으로 인해 그 찌꺼기인 배기가스가 지구 온난화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온난화 현상은 지구의 신음소리

저도 늙어가고 있습니다. 절에 들어와 살면서 좋은 스승들의 가르침에 대해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때그때 스승들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수행자의 설자리를 제대로 찾았을까 싶을 정도로 옛 스승들의 가르침이 그렇게 고맙습니다. 그중 한 분이 자운 스님이십니다. 해인사에 오래계셨던 분으로 제 비구계의 계사 스님이시기도 합니다. 한번은 제가 보낸 편지에 한자로 쓴 짤막한 답장을 보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소욕지족 소병소뇌(少慾知足 少病少惱). 적은 것으로 넉넉한 줄 알고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 이 여덟 글자 짤막한 편지글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두꺼운 만년필로 또박또박 박아 써서 보내준 편지. 진정한 가르침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 짤막한 편지가 수시로 저 자신을 깨우쳐 줍니다.

만족할 줄 아는 지혜 배워야

미래는 현재의 연속입니다. 내일은 오늘의 연장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결정됩니다. 우리의 태도에 따라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생태 윤리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머니인 지구의 건강을 위해 자식 된 도리를 깨닫고 실천할 때입니다. 윤리는 말보다는 실천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순간순간의 사소한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지구의 한정된 자원으로부터 얻은 물자를 토대로 하여 사는 것은 곧 우리들 삶의 터전인 지구 환경을 볼모로 하는 것입니다. 무한정한 자원이 아닌 한정된 자원인 것입니다. 여기서 생산된 물자를 소중하고 고마운 생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함부로 다루게 되면 그 재앙이 곧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맑은 가난, 청빈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소욕지족, 적은 것으로서 넉넉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해야 합니다. 맑은 가난이란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는 것입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맑은 가난이란 남이 갖은 것을 부러워하거나 시샘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맑은 가난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기 때문에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또 무엇을 갖고자 할 때 먼저 갖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 다 차지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서로 얽혀 있고 서로 의지해 있습니다. 내 이웃이 갖지 못했는데 나만 혼자 많이 가졌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 것이라 하더라도 이웃이 가져야할 것을 가로챈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날마다 지구촌에서 하루에 3만5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유엔 식량기구의 통계수치입니다. 이 세상에서 날마다 3만5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먹지 못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세계 전역에서 10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 우리 돈 950원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엇을 갖고자 할 때 갖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를 배려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회나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좋고 더 많은 것에 대한 욕망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크고, 더 높고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우리는 행복한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가치의 척도는 행복한가, 아닌가에 달려 있습니다. 옛날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 옛날보다 훨씬 더 행복하지 못합니다. 넘치는 것은 모자라느니만 못하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다. 넘치게 되면 고마움을 모릅니다. 넘치게 되면 이웃의 사정을 전혀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모자라는 것만 못합니다. 모자란 삶은 소극적인 생활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생활태도입니다.

지금은 덜 쓰고 덜 벌어야 할 때

이런 생활태도를 갖지 않는 한, 이런 생태 윤리를 갖지 않는 한, 세상은 더욱 나빠집니다. 생활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아쉬움과 궁핍을 모르면 불행합니다. 아쉬움이나 고마움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해집니다. 돈이란 괴물이 인간의 할일을 대신하게 되면 그곳에는 인간이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아쉬움과 궁핍을 통해 귀하고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입만 벌리면 너나없이 경제 타령을 합니다. 한정된 지구 자원으로 경제 성장을 위해 질주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개선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경제 대국인 나라들. 그리고 지금 급격히 성장하는 후발 경제 개발국들. 이런 나라들이 소비하는 석유의 양이 어마어마하고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까지 일으키고 있습니다.

올해 말이면 청와대의 주인이 바뀐다지요.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모두가 경제 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경제가 발전하면 그만큼 우리가 더 살기 어려워집니다. 지구 환경이 그만큼 오염됩니다. 기상 이변이 더 심해집니다. 경제가 발전될수록 지구 환경은 더 악화됩니다.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지상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금세기 안에 지구 기온이 지금보다 섭씨 5도에서 8도까지 더 올라 갈 것이라고 합니다. 히말라야를 비롯한 빙하들이 지금 이 같은 상태로 산다면 앞으로 40년 안에 모두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살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빙하가 녹으면 그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지고 태풍, 홍수 등이 많아져 낮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매몰됩니다. 빙하가 녹아 사라지면 갠지스강이나 메콩강, 양자강 등 큰 강에 물이 부족하게 되고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식량 위기를 초래합니다. 모든 것은 서로 상관관계에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우리 후손까지 살아 있으려면 현재의 생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보다 겸손한 태도로 지구 환경을 생각하면서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하는 맑은 가난의 미덕을 실천해야 합니다. 덜 쓰고 덜 벌어야 합니다. 지금 갖은 것 만으로도 넘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은 결코 물질적인 풍요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어떤 여건 아래서도 우리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면 삶의 질은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사는지, 우리만 살고 말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 때까지 어떻게 하면 보다 잘 살 수 있게 할 것인가가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받아쓰고 있는 것은 우리 조상 때 허물지 않고 가꾸어온 은혜입니다.

삶의 질은 결코 물질적인 풍요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 아래서도 우리가 사람으로서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면 삶의 질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습니다.
남은 더위에 다들 건강하셔서 맑은 가을날 맞이하십시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길상사 전 회주 법정 스님이 8월 27일 하안거 해제일 겸 백중을 맞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에서 대중에게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법정 스님은

1955년 효봉 스님을 은사로 입산 출가, 해인사 전문강원을 졸업하고 지리산 쌍계사,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했다.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역임하고 1994년 순수 시민운동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의해 이끌고 있다. 1997년 12월 길상사를 창건하고 회주로 주석했으나 2003년 12월 회주 자리마저 사양한 채 현재는 길상사의 ‘어른 스님’으로 법을 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소유』 『서 있는 사람들』 『텅빈 충만』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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