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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인도 녹야원 주지 만 공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 초전법륜지에
한국 불교의 ‘혼’심다

매일을 낯선 타인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지. 바다와 같은 평정심으로 혹은 달라이라마와 같은 자비심으로 단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타인과의 끊임없는 만남은 그야말로 고역일 터이다. 더구나 지금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을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권리가 더욱 존중되는 시절이 아닌가.

인도 사르나트 녹야원 주지 만공 스님. 스님은 이런 세상의 흐름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스님의 일상은 많은 이들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녹야원이 부처님의 첫 설법성지인 사르나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을 찾으면 공짜 숙식에 스님과의 가벼운 차담까지 보장돼 있으니, 인도 순례를 떠난 이들에게 이런 조건은 떨쳐 버리기 힘든 유혹이다. 덕분에 스님은 적게도 2~3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까지 매일 모르는 타인들과 마주해야 한다. 올해로 벌써 7년째. 1년에 대략 2만 명 정도를 만나고 있으니 그동안 14만 명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셈이다.

만나는 이들은 성지순례를 위해 인도에 들른 신심 깊은 불자에서 수행여행을 온 젊은 학생, 휴식처를 찾는 일반인, 그리고 수년 동안을 뿌리를 잃어버린 듯 세계 각지를 떠도는 유랑인 같은 배낭족들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다행이라면 대부분이 말과 뜻이 통하는 한국인이라는 점이라고나 할까.

“지난 2000년에 녹야원에 오게 됐습니다. 원래는 팔리어 공부를 위해 인도에 왔어요. 수업 과정을 다시 녹음 반복해 공부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녹야원에 사람들이 하나, 둘 점점 밀려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개인적인 시간 내기는 갈수록 힘이 들고, 결국 1년 반 만에 학업을 접고 말았지요.”

7년째 녹야원 지킴이

사르나트에는 한국인들이 편히 이용할 만한 게스트 하우스나 식당이 거의 없었다. 또 정화된 물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르나트를 방문한 많은 이들이 배탈과 장염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오염된 강가강의 물을 성수로 생각해 그냥 마시는 인도의 정서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를 지켜보던 스님의 자비심이 움찔거렸다. 혼자 살고 있는 녹야원을 개방해 여행객들에게 숙소와 한국음식을 제공했다. 물이 부족해 현지에서는 마시기 어렵다는 차도 대접했다. 처음에는 운 좋은 몇 사람만이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절에서 편히 쉬면서 한국음식을 먹을 있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자,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녹야원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두 명의 인도인을 고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저 혼자였어요. 주지이면서 부전이고 또한 공양주였지요. 절에 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차담을 나누고 식사를 제공하고 잠자리를 봐주다 보면 하루 해가 금방 서산에 걸려요. 그러니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부처님의 초전법륜지를 찾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린다는 생각에 가슴은 보람으로 항상 뿌듯했지요.”

매년 2만명 순례객 접대

그러나 한결 같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매일의 만남이 스님에게는 일상이지만 오는 이들에게는 모두 즐거운 첫 만남이었다. 더구나 타국에서 한국 스님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쁜 일이였을까. 스님의 친절은 언제나 당연했다.

허나 모두가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스님의 친절을 당연시 하고, 민폐에 절도까지. 불미스런 일도 적지 않았다. 오랜 세월 타국을 방랑하는 배낭족의 경우에는 마약을 하는 이들도 허다했다.

그래도 매일 새벽 예불을 모실 때면 “오늘은 또 어떤 부처님을 만나려나” 기쁜 마음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허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 표정에 불편한 마음이 덧칠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또 매일이 반성과 참회의 나날이다.
“심성들이 참 많이 변했어요. 전에는 절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마음이 없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스님의 개인적인 시간을 뺏고 있다는 미안함 없이 계속된 차담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가끔은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하지요.”

사실 스님은 녹야원을 떠나기 위해 몇 차례 봇짐을 꾸린 적도 있다. 주변을 정리하고, 네팔로 가기 위해 짐을 꾸린 후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때마다 공교롭게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그대로 주저앉기 일쑤였다. 아마도 녹야원을 떠나지 말라는 부처님의 수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장·골수 등 장기 기증

그러나 스님의 가슴에는 언제나 알알이 고민들이 많다. 녹야원 운영에 들어가는 만만치 않은 재원 마련 때문이다. 방문객들의 부식비와 찻값, 그리고 무엇보다 생수를 확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방문객들의 편의와 사찰 운영을 위해 현지인 두 사람을 고용하고 있으니, 이들의 인건비 마련도 어깨를 짓누르기는 마찬가지.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매년 1~2차례 한국을 방문, 도반들을 찾아다니며 탁발 아닌 탁발을 하고 있다.

“여행객들은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어요. 타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가끔 고국에 돌아가면 후원금을 보내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기대도 않습니다. 덕분에 능력 없는 저로 인해 애꿎은 도반들이 고생이지요.”

스님은 젊은 여행자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파종하겠다는 마음으로 사르나트를 지키고 있지만 고국으로 향하는 자비심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스님은 지난 7년 전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청년에게 한쪽 신장을 기증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한 생명을 위해 귀국 길에 올라 엉덩이뼈 골수를 기증했다. 이를 위해 스님은 한 달 간에 걸쳐 종합검진을 받고 피를 뽑고 수술을 하는 고통스러움을 감내해야 했다.

“저와 유전자가 맞는 환자가 있다는 연락이 와 고통을 함께 나눈 것뿐입니다. 10년 전 장기기증을 서약했는데, 하나 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참다운 보시는 항상 고통과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가르침처럼 스스로 불편을 겪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과 고통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장기 기증 이후 몸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스님은 신장을 하나 떼어내니 오히려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탁발 아닌 탁발로 도반들을 괴롭힌 죄 값을 이렇게나마 갚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도 보탰다. 스님은 자신의 골수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길에 오를 생각이다.

스님은 매일 아침 6시 부처님의 초전법륜지에서 참선에 든다. 자신이 녹야원에서 수많은 이들과 만나 불법을 전하는 것도 어쩌면 숙세를 걸쳐 이어 온 인연 때문이리라. 매일을 사람들에 둘러싸여 부대끼지만 때론 녹야원의 인연을 계기로 출가했다는 젊은이들의 소식이 들려 올 때면 비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한다.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성지순례를 오는 경우가 많은데 성지만 보고 후다닥 가버릴 때가 많습니다. 참 안타깝지요. 여행사 관계자나 인도 가이드는 불교에 대한 정확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힌두교를 중심으로 왜곡된 설명을 하곤 합니다. 때문에 저에게 연락을 줬더라면 좀 더 마음에 와 닿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지요. 또 큰 스님이 오실 때는 사찰이나 단체에서 미리 연락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르나트에 외국인 사찰이 많은데 이들 사찰 주지 스님들을 초청해, 한국의 큰 스님과 차담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한국불교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리라 하는 생각합니다.”

“매일 다른 부처님 만나는 삶”

사르나트에는 현재 10가구 이상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활동 하고 있다. 그러나 녹야원의 존재로 인해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동자승처럼 천진한 얼굴로 도량의 문을 활짝 열고 차별 없이 방문객을 맞는 만공 스님 때문이다. 스님은 오늘도 사찰 주변에 열심히 무와 배추를 심고 있다. 스님이 가꾸는 무와 배추는 고향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여행객들의 피로를 푸는 감로의 밑반찬이 될 터이다.
 91-542-329-8529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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