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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첫사랑 상대는 ‘아름다운 부르주아’

기자명 법보신문

세련되고 개방적인 광동아가씨
절친한 동지조차 ‘배신자’ 질타

성숙은 출가하기 전 고향인 평안도 철산에서 이미 결혼을 했고 지금 조선에는 처와 자식이 둘이나 있는 상황이었다. 성숙은 열 여덟 살 때 첫 번째 결혼을 했다. 장남인 성숙이 독립운동에 나설 뜻을 비추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집안의 대를 잇겠다는 마음에서 강제로 인근 마을의 처자와 맞선을 보고 서둘러 식을 올리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집안 어른들의 뜻을 따라 부부의 인연을 맺은 이가 정 씨 부인이고 정 씨 부인과의 사이에 자식이 둘이나 있었으니, 사연이야 어찌 되었건 출가 승려의 신분을 떠나서라도 유부남이 아가씨와 열애에 빠진 꼴이 되었다.

성숙의 사랑은 1927년 늦여름 중산대학에서 시작됐다. 상대는 여섯 살 아래인 두군혜였다. 두군혜는 중산대학에서도 ‘아름다운 광동아가씨’로 소문이 자자했던 소위 부르주아 집안의 아가씨였다. 일본 유학을 계획하고 있던 두군혜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워 어느 정도 일본말을 할 줄 알았던 성숙에게 궁금한 점을 자주 물어왔다. 일본어 공부를 위해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두군혜는 호남형의 외모에 학식이 풍부했던 성숙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고, 성숙도 세련되고 개방적인 광동아가씨에게서 조금씩 여인의 향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쌓아가면서도 쉽사리 마음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군혜가 먼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72열사 광장이 있는 공원으로 나들이 갈 것을 제안했다. 나름대로의 프로포즈였다. 광동에서 활동 중인 조선 청년들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성숙은 두군혜의 제안에 잠시 망설였지만 곧 흔쾌한 얼굴로 동의했다. 72열사 광장은 1911년 손문의 신해혁명 사건 때 전사한 이들을 기념하는 광장이었기 때문에 의미를 붙이자면 그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단 둘이 나들이를 간 72열사 광장 공원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넓게 꾸며져 있었고, 광동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나들이를 하거나 젊은 연인들의 연애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공원에 도착해 산길을 오르면서 두군혜가 먼저 손을 내밀어 성숙의 손을 잡았고, 성숙 역시 마다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군혜의 손을 잡았다. 멀리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개방적인 여성이었던 두군혜는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했다. “규광 씨 당신을 사랑해요.” 성숙은 당시 김충창과 김규광이라는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혁명 동지들은 충창으로, 학교에서는 규광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군혜도 충창이 아니라 규광으로 부르고 있었다. 두군혜의 고백을 들은 성숙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둘의 사랑은 이때부터 더욱 깊어지기 시작했고, 거의 매일같이 72열사 광장이 있는 공원으로 가서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향후 독립운동세력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세력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며 투쟁의 방향을 결정하고 인도해야 할 성숙이 사랑의 열병에 빠지자 주변에서는 배신자라는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성숙의 첫 사랑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성숙은 절친한 동지인 오성륜과 김산까지 자신을 배반자로 생각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스승으로 섬기며 따랐던 김산이 참지 못하고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성숙은 숨김없이 심정을 밝혔다. “이전에 승려의 신분으로 공부하고 수행했던 내가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꼴이 나도 마땅치는 않네. 하지만 그 아가씨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이젠 도저히 돌이킬 수가 없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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