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소유 원력이라도 세웠는가

기자명 법보신문

간디·소로·법정스님이
존경 받는 건 무소유 힘
자성 없는 현 불교계
비리만 터트릴 셈인가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요.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 뿐이오.”
『간디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이 글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산 속 오두막에 머무르며 몸소 ‘무소유 청량음’을 세간에 전해 주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한 대목입니다. 여러분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으신 후 어떤 상념에 젖어 보셨습니까! 최근에 저는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소로는 『월든』이라는 책을 세간에 선보입니다. 이에 따르면 28세(1845년) 무렵 소로는 월든 숲에 들어가 손수 집을 지은 뒤 오전에는 땅을 일구고, 오후에는 낚시를, 저녁에는 독서와 명상을 즐겼다고 합니다. 자본주의에 맞서 ‘자급경제’를 들고 무한경쟁과 생산증대 논리에 항거한 것입니다.

작은 오두막에는 딱딱한 침대와 책상이 전부였고 다만 손님을 위한 세 개의 의자가 더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낚시와 책만 들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월든 숲 근처의 자연을 관찰하며 수량과 호수 생태, 그리고 어류와 조류의 번식, 삼림과 농부들의 모습까지 기록했지요. 그가 내린 결론은 1년에 6주 정도만 경제활동을 하면 기본 생계비는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4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메사추세츠주의 콩고드 마을과 황야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버드를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목수, 측량사, 교수로 일하던 그가 그것도 뒤로한 채 숲으로 돌아가자 그 연유를 묻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삶의 본질을 직시하기 위해, 삶이 주는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 내가 잘 살았구나 하고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삶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사람이 아닌 길을 걷지 않고 싶었고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그런 그는 이 말을 남깁니다. “나는 삶을 깊게 살아보고 싶었고, 삶의 정수를 끝까지 마시고 싶었고,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버리기 위해 강인하고도 엄격하게 살고 싶었다.”

무소유의 궁극 의미는 삼독 중 ‘탐심’을 없애는 것입니다. 단박에 그 탐심을 싹둑 잘라버리기는 어렵지만 소로의 삶을 들여다 보면 실마리는 나옵니다. 정직한 노동으로 삶을 살아보겠다는 뜻은 ‘원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인하고 엄격하게 살고자’ 하는 그의 투철한 의지는 ‘지계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역량 내에서 자기가 뜻한 바의 일을 했고, 과욕과 과시를 내세우지 않으며 한 평생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았습니다. 체념도, 도피도 아닌 숭고한 삶이었습니다.

간디의 삶, 법정 스님의 삶, 그리고 소로의 삶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최근 불교계에 일고 있는 각종 비리와 횡령사고가 봇물 터지듯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것도 승가에서 발생하니 아연실색할 뿐입니다. 이를 바로잡겠다는 중앙종회 역시 파벌과 정치역학 구도에 따라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무소유 원력이라도 세웠는지…

정말, 이젠 우리 재가불자들만이라도 무소유의 삶을 발원하고 실천하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채한기 부장
penshoot@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