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통청 ⑥
삼보통청 ⑥
  • 법보신문
  • 승인 2007.09.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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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공양올림은 의식을 통해
사바세계가 불국토임을 아는 수행

그러므로 사바세계 사천하 중 남섬부주의 동양 대한민국 00에 위치한 이 절에서 지금 지극한 정성으로 불공 하며 발원하는 재자 00등은 이 인연 공덕으로 소원을 이루고자 금월 금일에 삼가 법의 자리를 마련하고 조촐한 공양 구로써 제망 중중하여 다함이 없는 삼보님께 공양을 올리옵니다. 경건하온 작법지어 신묘한 가피를 바라옵는 저희들은 싱그러운 향을 살라 청하오며 옥 같은 공양구로 재를 준비 하였으니 공양은 비록 적사오나 정성은 애절 하옵니다. 부디 자비의 거울을 돌리시어 굽어 살펴 주옵소서. 삼가 일심으로 세 번을 청하옵니다.

어느 법회 단체에 초청을 받았을 때 부처님께 직접 향을 사다 올리거나 쌀, 과일등과 같은 공양을 바친 적이 있는 불자님은 손을 들어 보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은 이백여명의 불자들 가운데 손을 든 숫자가 채 이 십명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손을 들지 않은 불자들도 대개 신행경력이 몇 년 이상이었음에도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특히 나이가 젊거나 남성 불자들일 수록 공양을 바친 경험이 없다고 하였다.

요즈음 불교계에 수행 바람이 불면서 불교가 하나의 명상의 종교로 변질 되어 가는 감이 없지 않다. 위빠싸나, 사마타, 호흡명상 차 명상 걷기 명상 등 많은 수행법이 소개되고 불자들에 국한 되었던 불교 수행법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보급 되면서 매우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귀의와 공양 그리고 바라밀과 같은 실천 원리가 사라지고 있어 종교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불교에 있어서 명상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은 명상만을 가지고는 완성하기 어렵다. 초기 경전에서도 부처님은 ‘사마타와 위파싸나만을 가지고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보시와 인욕 등의 바라밀을 실천하면서 지혜수행을 해 나가야한다’라고 가르치셨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의 여러 정황을 보아도 삼보를 향한 견고한 신심과 더불어 보시와 공양을 행한 불자들이 수행의 과위를 얻는 수가 많았다.

기원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헌납한 수닷타 장자의 경우도 보시의 공덕과 삼보에 대한 아낌없는 정성으로 수다원이라는 성스러운 수행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 수행론서에서도 비록 부처님이 입멸에 드셔서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형상에 대하여 마치 살아계신 듯이 예배하고 공양오릴 것을 가르치고 있다. 대승의 가르침에서는 부처님은 입멸을 하여 그 모습은 사라졌어도 법의 성품으로서의 부처님과 삼보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삼보는 항상 평등한 법의 성품으로 중생계를 떠나지 않고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감응한다. ‘사바’는 참고 견디어 낸다는 뜻으로 사바세계는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며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세계를 가리킨다. ‘사천하’는 동서남북의 세상으로 동쪽의 승신주, 서쪽의 울담주, 남쪽의 염부주, 북쪽의 구로주인데 이 중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남쪽의 염부주이다. 그런데 중생계인 이 사바세계와 불계인 부처세계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세상이 곧 중생계이며 불계로 중생이 부처가 된다 해도 국토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미혹과 번뇌의 있고 없음에 의해 중생계 이대로가 불국토가 되느냐 사바국토가 되느냐가 된다. 부처님이 볼 때는 사바세계 이대로가 부처의 국토지만 중생이 볼 때에는 사바세계는 괴로움이 가득한 땅이다. 우리가 부처님께 공양올림은 이와 같은 의식을 통해 괴로움의 사바국토가 곧 괴로움 없는 부처의 국토임을 깨달으려는 수행의 한 방편이다. 공양의 중요성을 알고 삼보님 앞에 복을 쌓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유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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