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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냄없는 그 마음이 바로 행복의 지름길”

기자명 법보신문
  • 인욕
  • 입력 2007.09.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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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급 장애 딛고 20여 년간 봉사
조계종긴급재난봉사대 김 용 철 팀장

“참회합니다. 이생에 지은 모든 죄를 부처님께 참회합니다. 저로 인해 슬퍼하고 괴로웠던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참회합니다.”

1996년 9월 강화 선원사 대웅전에는 나지막한 참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열흘째, 김용철(52·청담) 거사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끝도 없이 절을 이어가고 있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굵은 땀방울은 온 몸을 타고 좌복 위로 뚝뚝 떨어졌다. 물먹은 솜뭉치마냥 무거워진 몸,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겨워 보였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고통을 잊기 위해서인 듯 입에서는 연신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지극한 염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17세, 고관절 수술 후 장애 생겨

몸이 성한 사람에게도 3000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지체장애 3급의 불편한 몸으로 3000배를 일곱 번 한다는 것은 인내력의 극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김 거사는 육신과 정신의 장애와 맞서가며 일 배, 일 배 정성을 다해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오히려 체력적 한계로 일주일 만에 회향하기로 한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함이 죄스러운 듯 일 배, 일 배에 더욱 정성을 다한다.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도전과도 같은 고행. 그러나 그것은 기나긴 고통의 시절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준 부처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은 모든 이들에 대한 참회의 거룩한 몸짓이었다.

1973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운동을 하다 오른쪽 다리를 다칠 때만 해도 평생의 장애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처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고통은 차츰 온 몸을 휘감았고, 혼자의 힘만으론 거동조차 힘겨울 만큼 통증은 극심했다. 뒤늦게 찾아간 병원, 고관절 수술이 필요하며 1년 이상의 치료가 요구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게다가 후유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제 사춘기를 막 벗어난 17세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충격이었죠. 워낙 큰 수술이라 학교를 그만둬야 했고, 수술 후 1년간은 전신을 깁스한 채 살아야 했어요.”

아직 희망은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2년여 동안 완쾌를 위해 치료에 매진했다. 비록 짧은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행여 다칠세라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의 정성에 부응하듯 움직일 때마다 전해오던 고통은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오른쪽 다리는 결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전처럼 자유롭게 뛸 수도, 걸을 수도 없을 거란 불안감은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희망이 떠나간 빈자리, 그곳에는 분노와 원망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결국 스스로가 만든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일체의 모든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장애는 일순간 저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갔어요. 어떠한 위로나 격려도 당시에는 그저 동정으로만 느껴졌죠. 모두가 저를 조롱하는 것만 같아 세상을 멀리하며 꽁꽁 숨어만 지냈어요.”

10년의 세월, 친구와 이웃들은 모두 떠나갔다. 남은 것은 가족뿐, 끝을 알 수 없는 힘겨운 시간은 계속됐지만 그를 향한 가족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거친 행동과 폭언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마치 자신들이 죄인인양 묵묵히 인내하며 그의 울타리가 돼주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이 모든 책임이 당신의 탓이라도 되는 듯 그를 위한 기도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궁금해지더군요. 도대체 무엇이 10년의 세월에도 가족의 마음을 한 결 같이 변하지 않게 만드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매일 같이 기도하는 대상이 어떠한 분인지도. 그 호기심이 저를 집 근처 부천의 한 절로 향하게 만들었어요.”

가히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다른 사람의 배려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처음 절을 찾은 날부터 그 생각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특별대우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신행이든, 수행이든, 울력이든 배려는 있되 예외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청년 불자 가운데 한명일 뿐이었다. 조그만 실수에도 스님들은 불같은 호통으로 잘못을 지적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더군요. 건강한 이를 상대하듯 거침없는 스님들의 행동에서 처음으로 ‘장애는 불편일 뿐’이라는 공허한 외침이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를 둘러싼 장벽을 그만 깨버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갖게 된 순간이었어요.”

변화가 찾아왔다. 극심한 감정의 기복으로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분노하던 그가 스스로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을 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시간의 더께가 쌓여갈수록 마음의 평온도 함께 깊어졌다.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95년 조계종복지재단 자원봉사단이 발족하기 전까지 그는 한국노인복지협회에서 가정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조계종복지재단 자원봉사센터 직할자원봉사단원이자 조계종긴급재단구호봉사대 무료한방진료팀장으로 소외된 이웃을 찾아 자비행을 펼치고 있다. 그렇게 맺어진 불연은 석왕사 청년회, 유마회, 거사림회를 거쳐 지금은 북한산 심곡암 등지로 이어지고 있다.

희망이 떠난 자리 분노만 가득

불가사의한 가피도 많았다. 1990년 초, 수술한 부위가 탈골돼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의 일이다. 급히 재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수술날짜를 잡지 못해 애만 태우고 있었다. 당장 거동이 불편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요양을 하며 병원의 연락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청년회에서 산행을 가기로 했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한 발 내딛기도 힘겨운 상황이라 처음에는 거절을 했으나 청년회의 완곡한 부탁에 더 이상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산행,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 몸 구석구석 극심한 고통이 파고들었다. 관세음보살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고통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은 듯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한발 한발 조심스레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산행에 동참한 후 꼭 3일되던 날이었어요. 병원에서 곧바로 수술 받을 준비를 하라는 연락이 온 거예요. 회복속도도 무척 빨라, 예상보다 3개월 일찍 퇴원했고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난날 참회하며 봉사에 진력

그러나 불연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또 다른 고민이 커져갔다. 그것은 지난날 자신이 지은 죄업과 그로 인해 고통 받은 이들에 대한 죄스러움이었다. 뼈를 깎는 참회가 필요함을 직감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강화 선원사에서의 3년 생활이었다. 3년 동안 그는 사찰의 허드렛일을 자청하며 자신이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또 참회했다. 2만 1000배는 3년간의 선원사 생활의 회향을 앞두고 언제나 하심하고 인내하며 살겠음을 부처님께 다짐한 숭고한 의식이었던 것이다.

“타인을 용서할 자격이 없는데 미워할 자격이라고 있겠습니까. 아직 공부가 덜돼 불쑥불쑥 화기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분노와 증오, 미움이 찾아오는 순간 내 마음이 바로 지옥입니다.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지는 못할지언정 내 마음이라도 청정하게 만들어야지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중생을 보살피는 관세음보살님. 이제 그는 더 이상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관세음보살님의 1001번째 손과 1001번째 눈이 되어 관세음보살님을 도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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