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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영덕 운서산 장육사

기자명 법보신문

건칠관음 자비 실천하며 농민들과 상생

<사진설명>2002년 8월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운서산 장육사가 5년간의 정비불사를 거쳐 여법한 도량으로 거듭났다. 크지는 않지만 도량의 전각들이 단아하고 가지런하다.

올 5월 26일, 영덕군 창수면 갈천1리의 끝자락에 위치한 운서산 장육사(주지 효상)에는 4500여명의 대중이 운집했다. 70여㎡에도 미치지 못하는 흥원루가 가장 큰 전각일 정도로 사격이 작은 장육사에 정관계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은 물론 수많은 불자들이 모인 까닭은 건칠관세음보살님(보물 993호)이 600년 만에 나들이하는 모습을 친견하기 위해서였다. 영덕군 전체의 인구가 5만여를 헤아리니 작은 농촌마을의 장육사에 모인 대중 수는 엄청난 규모임에 틀림없다. 기실 건칠관세음보살님을 전통 방식에 따라 이운한 이날 법회는 관세음보살님을 조성한 옛 조상님들의 지극한 불심과 정성을 재현한 것을 의미한다.

1395년 태조 4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부의 관리들과 마을 주민들이 나라의 안녕과 정토세상을 염원하는 갸륵한 정성과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모아 조성한 것이 건칠관세음보살님이기 때문이다. 건칠불은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가루를 발라 묻힌 다음 속을 빼 조성한 불상으로, 건칠관세음보살님은 1407년 다시 개금했다는 기록들이 불상 복장에 있던 원문과 개금묵서명(改金墨書銘)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건칠관세음보살님은 이운 법회를 거쳐 11평 주심포 양식으로 신축한 관음전에 편안히 나투셨다. 이운 법회를 계기로 장육사는 건칠관세음보살님을 국보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02년 8월 수해로 큰 피해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화합을 기원하는 건칠관세음보살님의 이운 법회는 만 5년간 이어진 정비 불사와 정진을 회향하는 법석이었다. 5년 전 장육사는 태풍 ‘루사’가 불어 닥쳐 크게 일그러졌다. 고려 공민왕 4년 이 도량을 창건한 나옹 혜근(1320~1376) 대선사의 뜻을 기리는 맨 위쪽의 홍련암(조사전)을 오르는 길은 수마가 할퀴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산신각은 완파됐으며, 차분한 목조 양식이 아름다운 흥원루 역시 토사로 인해 한쪽이 크게 기울었다. 도량 전체가 토사로 뒤범벅이 된 장육사의 2002년 8월 모습은 마치 폐사와도 같이 흉흉했다. 영덕군 영해면 시가지에서도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농촌 마을에 위치해 있는 데다, 눈과 비가 오면 어김없이 도로가 유실되고 막혀 도량을 찾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

주지 효상 스님이 총무 소임을 맡아 장육사로 부임한 시기도 바로 이 때. 건칠관세음보살님의 600년만의 나들이 이운법회가 있기까지 장육사는 5개년 종합 정비 불사를 거쳐 불자들과 탐방객들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건칠관세음보살님의 자비가 상주하는 도량으로 탈바꿈했다. 국비와 도비, 군비 등을 더해 18억원을 지원받아 관음전을 신축했으며 △나옹 대선사의 조사전인 홍련암 정비 △산신각, 종각 단청 및 정비 △흥원루 해체 복원 △도로 포장 및 확장 △3기의 교각 설치 △계곡 사방 등 산문을 다시 열다시피 할 정도의 대작 불사를 쉼 없이 추진해 왔다. 갈수기엔 물이 말라 인근 계곡에서 20통 가량의 물을 길어다 식수를 해결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영덕군으로부터 5000만원을 지원받아 지하수 관정을 개발, 말끔히 사라졌다. 계곡수를 이용한 방화시설을 설치, 건칠관세음보살님을 비롯한 장육사의 성보를 보호하는 소방수도 확보했다. 종합 불사의 마지막 해인 올해에는 주지 채인 화운각 이전 불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해도 도량 유지가 어려워 산문을 닫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던 장육사는 종합 불사 끝에 도량 전체의 하드웨어를 정비, 정돈해 수행하고 정진하고 선지식의 법석을 펼 수 있는 도량으로서의 기능을 완비하게 된 것이다.

장육사가 여법한 도량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역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자체 및 관계 기관과의 협조가 원활한 데다 농촌 마을과의 유대 관계 역시 깊었기에 가능했다. 종합 불사를 추진하면서도 장육사는 포교 불모지와도 같은 영해와 창수면의 농촌 마을에 법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처음 장육사에 왔을 때 15인승 봉고차를 구입했습니다. 아랫마을에는 20여 세대의 농민들이 살고 계신데 대부분이 50~70대 어르신들이라 초하루 법회에 동참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초하루 법회 날이면 법회에 동참하려는 불자 농민들을 위해 봉고차를 타고 8개 마을을 2시간 동안 순례합니다.”

5년동안 쉼없이 도량 정비

<사진설명>올 5월 26일 봉행된 장육사 건칠관세음보살님 이운 법회.

유가와 무속, 기독교세가 워낙 강하다 보니 이 지역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상적인 법회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자들에게는 ‘법회’와 ‘포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잡히지 않은 것. 효상 스님은 “이 지역의 불자들은 포항 등 주변 지역의 불자들과는 달리 법회를 그냥 만나서 노는 계모임 정도로 알고 있었다”며 “먼저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서야 전법도, 법회도 가능했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장육사는 다가가는 포교 프로그램을 위해 우선 건칠관세음보살님을 받드는 건칠관음회와 청년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효상 스님과 뜻을 함께 하고 정진하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들로, 부처님오신날 봉축 도우미는 물론 건칠관세음보살님 이운법회 등 도량의 주요 행사를 주관하는 포교사 역할을 도맡고 있다. 건칠관음회에는 12명의 불자 농민들이 동참하고 있으며 청년회에도 20명 안팎의 청년 불자들이 동참, 호법신장으로서의 소임에 진력하고 있다. 대다수가 나이든 농촌 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이들 불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뒷받침을 바탕으로 초하루 정기 법회와 함께 지장재일 조상 천도법회, 안거 기도, 해마다 한 차례 음력 9월 7일 봉행하는 7일 산신기도 등 적지 않은 정진 프로그램들을 가동하고 있다.

농촌 마을과의 하나 됨이 없이 농촌 포교는 성공할 수 없다. 장육사가 꺼내든 카드는 연초 정월 대보름마다 영덕의 동해에서 봉행하는 달맞이 법회와 부처님오신날 및 어버이 날을 맞아 실천하는 효행 포교, 불자 농부들과 함께하는 제등행렬 등이다. 2003년 정월부터 봉행해 온 달맞이 법회에는 해마다 그 동참자 수가 크게 늘어 군과 협의해 지역을 대표하는 보시 문화 축제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장육사는 가정의 달 5월이면 23개 리를 순례한다. 건칠관음회와 청년회, 장육사가 보시한 쌀과 맥주, 음료수 등을 트럭에 가득 싣고 각 마을을 돌면서 어르신들에게 공양을 올린다. 도량의 재정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연초가 되면 포항의 노인복지시설인 정애원과 경산종합사회복지관 등에 쌀을 보시하는 일 역시 거르지 않는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12만명이었던 영덕은 군의 전체 인구가 5만여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농촌 마을에 위치해 있는데다 인구마저 급감하는 등 열악한 포교 환경에도 장육사는 군과 함께 협력해 투명하고도 체계적인 종합 불사를 원만히 추진해 튼튼한 신뢰의 축을 구축했다. 농촌 마을의 농민들에게도 항상 편안한 도량, 먼저 다가가는 도량으로 각인되고 있다.

어버이날 효행 트럭 운행

도심과 같이 폭발적인 성장은 없지만 농촌의 민심을 보듬고 농민들과 상생하며 살아가려는 장육사 대중들의 마음은 옛 조상님들이 건칠관세음보살님에 담았던 지극한 자비와 정성일 것이다. 054)732-6289
 
영덕=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농촌 어르신들 모두가 나의 스승”
 운서산 장육사 주지 효 상 스님

운서산 장육사 주지 효상〈사진〉 스님의 2~3평 남짓의 방사 한편에는 우리나라 녹차는 물론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의 불교 국가 등 여러 나라의 차들이 가지런하다. 언제든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차물과 다관이 잘 준비돼 있다. 그 연유를 물으니, “‘누구에게나 차 한 잔 드세요’하고 권하면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답한다.

스님이 차 공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장육사를 찾는 불자나 일반인들에게 친절한 도량, 먼저 마음을 여는 도량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서다. 불자라고 해도 ‘법회가 무엇을 하는 시간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는 포교 취약 지역이기에, 효상 스님은 차를 공양하는 시간을 마음으로 포교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장육사는 영덕군에서도 외지인 창수면 갈천1리 마을에 위치해 있습니다. 농촌의 마을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기 때문에 포교 여건이 열악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스님은 2002년 9월 운서산 장육사 총무로 부임한 뒤, 2005년 4월부터 주임 소임을 맡고 있는 현재까지 5년 동안 줄기차게 도량 정비 불사에 진력해 왔다. 2002년 8월 불어 닥친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를 하나 둘 복구하는 불사로, 종합 5개년 계획에 의해 진행해 왔으며 올해가 마무리를 하는 해이다.

스님은 이제 하드웨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포교 프로그램들을 구상 중이다. 위덕대 불교응용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스님은 특히 자살과 죽음 등 생사학에 관심이 많다. 동국대 선학과에서 학, 석사를 마친 스님의 석사 논문 역시 ‘사성제설에 의한 생사론적 고찰’로, 생사학에 관한한 그 어느 종교보다 이론적 배경이 튼튼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포교 프로그램을 개발, 본사 차원에서 교육을 시행할 계획이다. 천주교 청년회와의 종교 화합 체육대회와 마을 회관 법회 등도 1년 전부터 구상해 온 장육사의 소프트웨어.

효상 스님은 “매월 한 차례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 회관 법회를 봉행하고 생일을 맞은 어르신들을 위로하고 축하한다면 포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운서산 송이차 개발 재정자립 완성
장육사의 청사진

워낙 낙후된 농촌 마을에 위치해 있다 보니, 운서산 장육사의 미래를 향한 청사진에는 ‘도량의 원만한 운영을 위한 재정 자립’이 밑그림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장육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앞산과 뒷산이 대규모 송이 산지라는 것이다.
 
“농촌 마을의 대다수 사찰들은 불자들의 보시에 의지해서는 운영할 수가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운서산은 송이로 이름난 산으로, 지역의 유기농 전문가들과 운서산의 송이를 차로 만들고 이 차를 브랜드화 하는 작업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10월)부터 전국의 다인들이 직접 장육사를 방문, 운서산 송이차 제조법에 대해 공부하고 전수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할 계획입니다.”

장육사는 영덕군과 협의, 송이차를 이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개발해 나가는 사업을 추진한다.

불사를 통해 도량의 하드웨어를 정비해 온 장육사는 재정 자립과 함께 향후 수행, 정진도량으로서의 사격도 확충한다. 현재 ‘부동산 소유권 이전 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거 어느 문중 소유로 돼 있는 1600여평에 달하는 밭의 소유권을 복원하는 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 밭은 도량 앞에 있어 장육사를 창건한 나옹 대선사의 기념관과 시비 및 템플스테이를 위한 정진관 조성 부지로 제격이다. 

영덕=남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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