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생멸문에서의 심생멸, 생멸인연, 생멸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들 생멸의 현상들은 근본적으로 훈습의 작용을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훈습이란 옷에 원래 향기가 없지만 향으로 훈습하면 향이 옷에 배어드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몸과 입으로 표현하는 선악의 말이나 행동, 또는 뜻에 일어나는 선악의 생각들이 일어나는 그대로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어떠한 인상이나 세력을 자기의 심체에 머물러두는 작용이다. 『기신론』에서는 훈습에 정법(淨法)으로서의 진여, 일체 염인(染因)으로서의 무명, 업식인 망심(妄心), 육진인 망경계의 네 가지 법을 들고 있다.
진여정법(본각)에는 본디 염이 없으나 무명의 훈습 때문에 염상이 있고 무명염법(불각)에는 본래 정업이 없으나 진여로 훈습하기 때문에 정용(淨用)이 있다. 여기서 진여정법 즉 본각과 무명염법 즉 불각은 하나의 식에 함유된 두 가지 뜻으로서 번갈아 서로 훈습함에 의해 두루 염정을 내는 것이므로 이를 불사의훈과 불사의변으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진여법에 의해 무명이 있고 이 무명염범의 인, 즉 근본무명이 있기 때문에 진여를 훈습한다. 이 근본무명의 훈습에 의해 업식심(業識心)이 있으며(무명훈습 중의 근본 훈습) 이 근본무명에서 일어난 견애가 그 의식을 훈습하여 추분별을 일으키므로 이를 무명훈습 중의 소기견해훈습이라 한다. 이 업식심이 거꾸로 무명을 훈습하여 진여법을 요달하지 못함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전식과 현식 등 허망한 경계를 이루는 것이다. 이를 망심훈습 중의 업식근본훈습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삼승인(三乘人)이 삼계를 벗어날 때 분별사식에 의한 분단생사의 고통은 여의었으나 아직 변역생사의 아라야행고(行苦)를 받는다.
근본무명이 있어 진여를 훈습
여기서 의식의 견애번뇌가 증장되어 삼계의 업에 메인 과보를 받으므로 범부의 자리에서 분단생사의 고통을 받게 되니, 이를 증장분별사식훈습이라 한다. 이 망경계가 또 망심을 훈습하여 이 망심으로 하여금 염착케 하여 여러 가지 업을 지어 모든 심신의 고통을 받게 하는데 이 망경계훈습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증장념훈습으로서 분별사식 중의 법집분별념을 증장시키며 둘째는 증장취훈습이니 사취(四取 : 욕취, 견취, 계금취, 아어취)의 번뇌장을 증장하는 것이다.
이상의 염법훈습과는 달리 이번에는 거꾸로 진여법이 무명을 훈습하여 이 훈습하는 인연의 힘으로 망심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를 좋아하게 하는 것이다. 즉 이 망심에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 좋아하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진여를 훈습하여 스스로 자기 본성을 믿으니 이는 십신 자리의 신(信)이다. 이리하여 마음이 헛되이 움직이는 것이지 앞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 멀리 여의는 법을 닦으니 이는 삼현위의 수행이다. 이 수행 뒤에 앞의 경계가 없음을 확실히 알게 되는데 이는 초지의 견도에서 유식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방편으로 수순행을 일으켜 사취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법집분별념도 일으키지 아니하면서 오랫동안 훈습한 힘에 의해(십지의 수도위 중 만행을 닦는 것) 무명이 곧 없어지게 된다. 무명이 없어지므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없고 따라서 경계도 없어진다. 이렇게 인과 연이 다 없어지므로 심상(心相)도 없어지니 이를 열반을 얻어 자연업(부사의업용)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이상의 정법훈습을 『기신론』에서는 좀 더 세분해서 밝히고 있다. 정법훈습이니 만큼 추에서 세의 순서로 설명하는 방법을 취한다. 먼저 망심훈습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별사식훈습으로 모든 범부와 이승인등이 생사의 고통을 싫어함에 의해 힘닿는 대로 무상도(불과)에 나아가는 것이다. 범부와 이승인은 그 의식이 모든 경계가 오직 식뿐임을 알지 못하므로 마음 밖에 실제로 경계가 있다고 집착하여 생사는 싫어할 것, 열반은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니, 이는 분별사식의 집착과 다르지 않으므로 분별사식훈습이라 한다.
둘째는 의훈습으로 모든 보살이 용맹하게 발심하여 속히 열반에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업식훈습이라고도 하니 이 업식은 가장 미세하여 모든 식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아직 견분과 상분으로 나뉘어지지 않았다. 모든 보살은 마음이 망령되이 움직일 뿐 따로 경계가 없음을 알며 일체법은 오직 식의 헤아림인 줄 알기 때문에 앞의 경계가 밖에 있다는 집착을 알고 발심하여 열반에 나아가는 것이다.
다음 진여훈습에 또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자체상훈습이니 무시의 때로부터 무루법을 갖추고 부사의업을 갖추며(본각불공문) 여실공문의 경계성을 짓는다. 이에 의해 항상 훈습하므로 이 훈습의 힘에 의해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여 스스로 자기 몸에 진여법이 있는 줄 믿어 발심하고 수행케 하는 것이다.
일체법은 오직 식의 헤아림일 뿐
둘째 용훈습이니 이는 중생의 외연의 힘을 말한다. 이 외연에 또 차별연과 평등연이 있다. 차별연은 범부와 이승의 분별사식훈습을 위하여 연을 짓는 것이니 이 사람이 처음 발심하여 구도할 때로부터 부처가 될 때까지 권속, 부모, 제친, 급사, 지우, 원가(怨家) 등이 되어 이런 대비의 훈습력으로 선근을 증장케 하고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이다. 평등연은 모든 부처와 보살이 일체의 중생을 도탈시키고자 하여 동체지력으로 중생의 견문에 따라 응하여 업용을 나타내는 것이니 십주(十住) 이상의 모든 보살들이 삼매에 의해서 부처의 보신의 무량한 상호가 분제상을 떠나 있음을 보는 것이다.
은정희 전 서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