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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차의 해독성-끝.

기자명 법보신문

소화를 돕는 실생활의 탕약

고기 녹이는 소화력에
초기엔 약으로도 응용
송대부터 고급문화 돼

황금 들녘, 고개 숙인 벼이삭이 함초롬한 산색(山色)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끊일 듯 이어진 귀뚜리 소리, 가을 정취를 더하고 샘물도 이미 가을 맛을 지녔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과 겨울에 따라 각기 다른 풍취를 지니는 것이 차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차의 변화이지만 정작 차의 풍색(風色)은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런 미세한 변화는 차를 즐기는 이의 오랜 숙련과 치밀한 궁리에서 얻어지는 은미(隱微)한 차의 경지이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즐기는 향미(香味)가 다르겠지만 담백한 사람은 가을차가 주는 텅 빈 자유로움을 좋아할 것이다.

엊그제 모처럼 인사동 고서점을 들렸다. 층층이 쌓인 책 더미 속에서 김육(金堉1580~1658)의 『유원총보(類苑叢寶)』를 찾았다. 책이 주는 무게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이리 저리 유전(流轉)한 옛 책에는 마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1644년 편찬된 이 책의 첫 장에는 김육과 이식이 쓴 서문이 있고 첫 권(券)에 기록된 항목(項目)이 질서 정연하다. 김육은 김상헌의 문하(門下)로 사마시 합격 후 성균관 태학생과 함께 청종사오현소(請從祀五賢疏)를 올려 성균관을 떠나기도 했던 인물, 경기도 잠곡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천문, 지리, 복서, 율력에 밝았던 그는 우리나라 절기에 알맞은 시헌력(時憲曆)을 만들기도 하였다.

늘 백성의 안정된 생활을 걱정하여 영의정이 되어 『호남대동사목』을 구상, 대동법을 확대코자 하였으나 시행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후일 그의 경제 이론은 실학자 유형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자는 백후(伯厚)이며, 잠곡, 회정당이란 호를 썼다.

한편 그가 쓴『유원총보(類苑叢寶)』는『예문유취(藝文類聚)』『당류함(唐類函)』『천중기(天中記)』『산당사고(山堂肆考)』『운부군옥(韻府群玉)』 등 을 참조하여 총 47권 30책으로 편집한 유서(類書)이다. 인조22년 (1644)에 편찬된 이 책의 권 20, 「음식문(飮食門)」에 차에 대한 항목이 들어 있다. 차조(茶條)의 내용은 당으로부터 송, 명대 중국차의 자료가 대부분이지만『동다송』에도 이미 언급된 이덕유가 차의 해독성을 실험한 대목이 눈에 띤다.

“어떤 사람이 서주 목사(牧使)가 되었다. 이덕유(李德裕)가 말하길 서주에 도착하는 날 천주봉에서 나는 차 삼각(三角)을 얻을 수 있는가 그 사람이 수십 근(斤)을 올렸지만 이덕유는 받지 않았다. 다음해 서주를 떠나면서 성의를 다해 구하여 몇 각(角)의 차를 얻었다. 이덕유가 말하길 이 차는 술과 식독(食毒)을 없앨 수 있다고 하였다. 곧 차를 끓이게 하여 고기로 만든 음식에 붓게 하고 은합으로 덮었다. 날이 밝자 그 고기를 살펴보니 이미 물처럼 변했다.(有人授舒州牧 李德裕曰 到郡日 天柱峰茶 可惠三數角 其人獻數十斤 李不受 明年罷郡 用意精求獲 數角投之 李曰 此茶 可以消酒食毒 乃命烹一 沃于肉食 以銀合閉之 詰旦視其肉 已化爲水矣)”

차의 해독성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고기로 만든 음식에 차를 부어 두니 물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차가 소화를 돕는다는 사실은 이미 차의 구덕(九德) 중에 한 위치를 이미 점했다. 이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기 차는 실생활에 응용된 약이었으며 송대를 거치면서 고상한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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