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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불꽃같은 삶의 고통 다라니로 녹였지요”

기자명 법보신문

매일 대비주 1000독
김 순 자 씨

암으로 남편 먼저 보내고
아들까지 병고로 고통

신묘장구대다라니에 의지
죽음보다 더한 고통 견뎌

하루 넘던 다라니 1000독
이제는 4시간 만에 마쳐

“위암 말기입니다. 수술을 하면 1년을 살 수 있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못삽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사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연히 수술해서 어떻게든지 남편을 살리겠다고 말하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나갔다. 이를 꽉 깨물고 떨리는 다리를 두 손으로 꼭 잡았지만 뛰는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죽을힘을 다해 다시 일어서는데 그제서야 그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양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느 날부터인가 유난히 몸이 부쩍 마르고 먹는 음식마다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남편이 이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남편의 삶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니…. 의사는 믿을 수 없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단 한 마디 말로 그녀를 천 길 낭떠러지로 떠밀었다.

의사와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그녀를 보자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반기듯 활짝 웃었다. 남편의 삐쩍 마른 몸, 검어져 버린 얼굴 빛. 가슴이 미어졌다. 왜 진작에 병원에 오지 않았을까. 금방이라도 콸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참아야 한다. 아니 울 수 없었다. 울어버리면 이 모든 게 현실이 되어 버릴 테니까.

꽃다운 나이 20대 초반에 남편을 만나 토끼 같은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알콩달콩 살아가던 김순자 씨에게 검은 구름은 그렇게 다가왔다.

오로지 집과 회사 밖에 모르는 자상한 남편과 엄마를 끔찍하게도 위해주는 착한 두 아들과 딸. 콩나물 값 한 푼이라도 아끼며 사는 평범한 삶이었지만 그녀는 크게 욕심내지 않았다.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준비하고 다섯 식구가 함께 둘러앉아 저녁 먹는 것이 가장 행복했던 그녀는 착한 아내, 좋은 엄마였다. 그런 그녀에게 하늘이 두 쪽나는 시련이 닥친 것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녀가 남편에게 거짓말을 시작했다.

“당신, 위에 탈이 났나 봐요. 수술만하면 금방 나을 수 있다네요. 진작에 병원에 왔으면 됐을 것을. 예전부터 병원 한 번 가보자고 했죠. 정말 당신 때문에 못 살겠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오히려 화를 내버렸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했다. 별일 아니라는 자신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허허’ 웃는 남편의 모습은 그녀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버스 창밖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빠르게 지나갔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낯설고 두렵게 느껴졌다.

예정대로 수술을 마쳤지만 의사의 말대로 남편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스스로도 불길한 느낌을 감지한 남편이 의사를 찾아갔다.

그제서야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남편. 그 때문이었을까. 예정보다 더 빨리 남편은 떠나버렸다. 그녀가 47살이 되던 1987년이었다.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꿈만 같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남편의 따뜻한 그늘 아래서 20여년을 살아온 그녀에게 현실은 냉정하기만 했다.

고2의 큰아들과 중학생 된 아들과 딸. 남편을 따라 가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들고는 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근근이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마련했지만 여자 혼자 아이 셋을 키워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도 세상 앞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렇게 아픔이 서서히 아물 무렵. 어느 덧 장성해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으로 바르게 자라준 큰아들이 갑자기 이상한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남편의 산소를 이장한 이후부터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심장이 멈춰버리는 듯 했다. 결국 아들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그녀는 또 한 번 몸서리를 쳐야했다. 떠난 남편을 대신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던 큰아들이었기에 그녀의 충격은 더했다.

그녀는 제일 먼저, 생계였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아들 간호에만 전념했다. 무슨 일이라도 할 작정으로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다. 하지만 수술로도 고칠 수 없다는, 원인과 병명조차도 알 수 없는 ‘무병’이라는 답변뿐이었다. 또 한 번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끝내는 무당도 찾아가 보고 백방으로 뛰어다녀 봤지만 그녀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버리는 듯 했다.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그때 덕양선원 법상 스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스님의 권유대로 신묘장구대다라니 주력수행을 하기 시작했죠. 스님과 아들과 셋이서 법당에 앉아 낮과 밤 구분도 없이 죽기 살기로 했습니다. 정말 내가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첫 100일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김순자(원명화·65)씨의 주력수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100일 정진이 끝나면 또 다시, 또 다시.

200일, 300일, 400일, 500일…. 끝도 없이 그녀는 주력수행을 계속 이어나갔다.

일산에 위치해 있는 덕양선원과 살고 있는 집까지의 거리는 2시간.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두 아이의 식사를 챙기고 집안 일을 마무리한 뒤 아들과 함께 오전 8시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컴컴한 밤이 될 때까지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또 매주 금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23시간동안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했다. 그렇게 해서 10만독을 마치고 20만독을 해냈다.

“기도 중에 조상님과 만나기도 하고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시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까치가 머리 위에서 ‘까악까악’ 울기도 하는 신비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을 겪기도 했었죠. 또 어떤 날은 죽어있는 내 모습을 보기도 했었고요. 그럴수록 스님은 더 정진해야 한다며 1000독도 모자라 하루 2000독을 하라고, 더 정진하라고 하셨어요. 그땐 정말 ‘나 죽었구나’ 했었죠.”

그렇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내가 쓰러지면 모든 게 끝나버린다’는 생각에 스스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다시 정진을 시작했다.

“어느 날은 하다하다 정말 죽을 듯이 힘이 들어 ‘스님 저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그래, 차라리 내가 죽자’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모든 괴로운 마음들을 부처님께 맡기는 방법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는 그녀의 눈에서 촉촉히 이슬이 맺힌다. 하루하루가 길고 긴 어두운 터널에 갇혀있는 것처럼 힘에 겨웠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기도할 때 저는 항상 혼자가 아니었어요. 힘겨워하는 제 곁에서 저 보다 더 간절하게 목탁을 치며 독송하는 스님이 계셨고 도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죠.”

그리고 거짓말처럼 서서히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언제그랬냐는 듯 큰아들도 대비주 독송으로 병을 이겨내고 예전의 든든한 아들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그녀는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대비주 87만독을 이루어 내고 매일 1000독을 계속해 오고 있는 김순자 씨.

하루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도 모자랐던 신묘장구대다라니 1000독을 이제는 단 4시간 만에 마칠 정도로 그녀에게 수행은 몸의 일부처럼 하나가 되어버렸다.

“내 목숨이라도 바꿀 각오로 수행으로 나와 맞서다보면 어느 순간 힘든 모든 일들이 콩알만큼 작아지고 내가 큰 우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비가 훨훨 날아가다 향기로운 꽃에 다가가 살포시 내려 앉는 그런 기분이죠. 수행을 만나고 정진의 마음이 한 층 한 층 탑을 이루면서 세상 모든 일들이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수행을 하면 할수록 가슴에서 느껴지는 맑은 빛이 하늘의 태양보다 더욱 빛나는 것 같다’는 그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거 없습니다. 죽기보다 힘든 일 있으면 죽을 각오로 기도해보세요. 그렇게 죽기 살기로 정진하면 소원하는 한 가지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행복해집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도 해냈는걸요.”
 
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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