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호 선생의 사불수행]사경수행중 경계가 왔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2)

기자명 법보신문

헛된 것임을 직시하면 저절로 소멸

다음은 수행 중에 나타나는 경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행 중에 나타나는 경계는 매우 다양하지만 종합하면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몸에 이상이 오는 경계와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초능력과 같은 착각으로 오는 경계입니다.

이러한 모든 경계 또한 원인에 따른 결과물입니다. 이에 대한 굳은 믿음이 정법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네 관점의 통합체입니다. 첫째는 근본 불성(본래면목)이요, 둘째는 그 본래면목을 보고자 하는 거짓 마음이요, 셋째는 다른 사물과 대상을 인식하는 순간 작용이요, 넷째는 다른 사물이나 대상을 통해 투영되는 외부 형상입니다. 이 넷이 마음 작용을 일으키는데 근본 불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상한 것임을 깊이 인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 넷을 바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또한 매 순간 잊고 지냅니다. 우리가 늘상 숨을 쉬면서도 잊고 지내듯이 말입니다. 깨달음은 늘 이를 바로 보는 깨어있음에 다름 아닙니다.

여기 하나의 사과(본래면목)가 있다고 합시다. 수행은 사과가 사과인 채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분별망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생은 이를 자신의 기준(분별망상)에 따라 절단을 하고는 보이는 그 면만을 진실이라 믿습니다. 보이는 부분에 매몰되어 개별적인 경험을 전체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망상입니다. 본래 사과에는 절단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본래면목은 백천만억의 모든 단면을 수용합니다. 이 도리를 바로 아는 것이 정법입니다.

사경수행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경계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외부로부터 그때그때 나타나는 단면(경계) 역시 모두 헛된 것임을 바로 직시하면 모든 삿된 경계는 소멸됩니다. 그와 동시에 온전한 하나의 사과로 남게 됩니다. 수행이 깊어간다는 것은 본래면목 그대로에 보다 철저히 머무름을 의미합니다. 이때에는 외물들이 나타났다가도 몸과 마음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저절로 사라지곤 합니다. 이후 감정도 이성도 모두 소멸되고 평화만 남게 됩니다. 그러한 상태로 사경수행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봉숭아 씨방 터지듯 부처님의 혜안이 열립니다. 〈계속〉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