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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석장 이 재 순

기자명 법보신문

한국의 ‘비겔란’
‘폐광’에 佛光 비춰
석굴사원 조성하는 게 ‘꿈’

16살 때 김진영 선생 문하로 들어가 조각 입문
백제불교도래지 조성하며 120호 석장 지정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로그네르 공원이 있다. 일명 ‘비겔란 조각공원’이라 불리는 이 공원은 총 32만 3700평방미터에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 193 점이 멋진 조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세계 명소로 거듭난 이 공원을 찾는 관광객만도 매년 400만명. 특히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관련된 조각품들이 펼쳐져 있고, 더욱이 윤회를 바탕으로 한 동양사상이 스며들어 있기에 더욱 눈길을 끄는 공원이다.

강함-부드러움 조화돼야

조각가 비겔란이 ‘프로그네르’공원을 만들었다면 석장 이재순 씨(53세)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를 조성했다고 할 수 있다. 영광 법성포에 조성되고 있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는 A.D 384년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다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이다.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마라난타를 이른다. 간다라 불교의 문화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성지(공원)의 주요 작품 대부분은 이재순 장인의 손길에 의해 빚어졌다.

아미타불과 관세음, 대세지, 그리고 마라난타를 조각한 ‘사면대불’, 부영루에 조각된 부처님 일대기, 연등불과 석가모니불 역시 그의 작품이며 ‘간다라 유물관’에는 탑과 불상을 비롯한 그의 작품 5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불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연등불과 석가모니불 조성을 이미 마친 그는 ‘미륵불’만을 남겨놓고 있다.

<사진설명>석조마애불상.

외삼촌과 형님 아래서 잡일을 하며 돌을 만진 그는 16살 때 서울 망우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진영 선생 문하로 들어가 본격적인 조각 작업에 들어간다. 스승의 엄한 가르침 속에서 12년을 보낸 그는 돌 조각에 눈을 뜨고 1979년 겨울에 독립, 구리에 자신의 작업장을 마련했다.

사실 독립하기 전 그는 명성이 높았던 젊은 인재였다.

19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와 77년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서 금메달을 딴 그는 77년 7월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이후 1991년 다산문화제 대상 예술부분 대상을 비롯해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 전승공예대전,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전 등에서 수많은 수상을 기록하며 불교 내외로 명성을 얻었다.

“돌은 강하지만 아름답다”며 ‘돌 예찬론’을 펼치는 그의 눈빛에서 40년 석장 인생의 ‘고집’이 느껴졌다.

“돌을 쪼려면 쇠가 필요합니다. 강한 것과 강한 것이 만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속에 부드러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가에 박혀있는 돌부리만도 못 합니다.”

부드러움이란 ‘마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돌에 마음을 새기지 않으면 그 조각은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얻으려면 세월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정성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지요. 세월을 머금은 돌의 고졸미란 목조각이나 청동 조각품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사진설명>경희대 사자상.

그도 처음엔 돌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다. 더욱이 조각 작품에 대한 비례율을 터득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처음 석굴암 부처님을 친견할 때 역시 그랬다.

“10대 후반에는 그저 대단한 부처님이시구나 했지요. 30대 초반에 들어서서는 부분적인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말았지요.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부처님을 친견하는 참배객들의 시선까지 고려한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연실색할 정도였지요. 지금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무릎은 8자 8치, 어깨는 6자 6치, 가슴은 4자 4치, 얼굴은 2자 2치. 그도 궁금했다고 한다. 왜 석굴암 부처님의 어깨를 저리도 넓게 했을까? 그럼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비밀은 몇 해를 연구하고 나서야 풀렸다. 참배객이 부처님을 친견할 때 나오는 시선의 각도에 따른 것이었다.

관촉사 미륵대불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관촉사 대불은 4등신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나 볼 수 있는 인체비율이지요. 그래서 정면에서 보면 얼굴만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좀 더 다가가 아래서 올려다 보세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돌의 고졸미는 최고

<사진설명>진천보탑사 석등.

그랬다. 관촉사 미륵대불도 참배객의 눈높이에 따른 것이다. 가까이서 올려다보면 대불 상호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인체비율에만 따랐다면 상호가 너무 작아 위엄이 없어 보일 것이다.

“이젠, 불상이나 탑을 허겁지겁 만들지 않습니다. 불상이 안치될 자리와 주위 풍광까지 고려하며 돌을 다듬습니다.”

그가 유심히 보는 작품 중 하나가 용미리 미륵 부처님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금이 간 돌에 두 분의 미륵 상호가 서로 정겨운 대화를 나누듯 마주하고 있는 불상이다.

“자연을 최대한 이용한 작품입니다. 아니 이용한 게 아니라 살린 것이라 해야겠습니다. 옛 선인들의 지혜와 안목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도 이제는 ‘여백의 미’에 초점을 맞추고 작업에 임한다. 때로는 그 연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왜 작업을 하다 말았냐”고 하지만 그는 웃어 넘긴단다. 설명한다고 해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돌은 자연입니다. 제 작업은 인위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손길을 최대한 줄이고 자연을 최대한 살리는 게 최고의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여백이 있어야 달빛이 내려앉을 수 있지 않습니까?”

<사진설명>이재순 석장이 소장하고 있는 작은 불상들. 그의 세심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세밀한 부분을 작업해야 할 때는 금세공 작업보다 더 면밀하게 돌을 다듬는다. 그의 작품 중 한 화면에 새겨 넣은 삼존불과 광배를 보면 마치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듯 한 느낌이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에 불상을 조각한 그도 꿈이 있다. 폐광을 이용한 석굴사원(갤러리)을 조성해 보는 것이다. 사실 이도 꿈으로만 끝날 일은 아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테이트 갤러리’는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과 함께 영국 최고의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이 미술관은 헨리 테이트 경이 수집한 19세기 미술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하며 문을 열었다.

여백의 美 터득

<사진설명>대한석상 앞 마당에 모셔져 있는 석탑과 불상. 대작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1897년 밀뱅크 교도소 자리에 건립되면서 영국 회화와 유럽 현대미술을 함께 전시해 유명해졌다. 이후 2000년 5월 1981년 유가 파동으로 폐쇄된 뱅크사이드 화력 발전소를 두 명의 예술가가 갤러리로 개조하면서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탄생했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오픈하면서 기존의 데이트 브리튼은 영국 회화를, 테이므 모던 갤러리는 서양 현대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1997년 개관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역시 철광과 광산, 조선소가 있던 우중충한 공업도시를 일시에 탈바꿈 시킨 사례다.

원력을 새우고 정진하고 정진하면 언젠가는 이뤄지는 법이다. 안목 있는 지자체가 언제 어느 순간 그에게 손을 건넬지 모르는 일이다.

자연을 최대한 살려 여백의 미를 터득한 그 이기에 벌써 그가 조성할 석굴사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그는 지난 9월 18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석조각)으로 지정됐다. 40년 장인의 길을 걸은 그가 얻은 작은 ‘결실’이다. (대한석상. 031-563-5443)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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