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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936년 조선민족해방동맹 결성

기자명 법보신문

우후죽순 혁명단체 통합 주장
주의주장 떠나 이념문제 유연

1927년 광주봉기에 참여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본 성숙은 28년 상해로 주거지를 옮긴 후 8년여 동안 진보적 문필가로 활동하며 이론가로써의 면모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광서성 성립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34년 다시 상해로 돌아온 성숙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제1선에 뛰어들었다.

이 무렵 중국사회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중일전쟁의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하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반일통일전선의 결성을 위한 국공합작이 36년 들어 다시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다. 성숙은 독립운동의 일선에 나서면서 각지에서 활동하는 진보적인 독립운동가들을 규합해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했다. 박건웅과 신익희의 사위인 김재호, 신정완 등 중국 각지에서 지하활동을 하던 동지들을 규합해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한 성숙은 해방동맹의 기관지 『민족해방』을 간행하며 ‘전 민족의 반독재투쟁과 해외 각 혁명단체의 통합’을 주장했다.

성숙이 해방동맹을 결성할 무렵, 중국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독립을 외치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제각기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각 단체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목소리만 높일 뿐이었지 통일적인 조직을 갖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러한 단체 난립 현상이 오히려 효과적인 대일 투쟁에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성숙은 해방동맹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혁명단체의 통합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성숙이 결집한 인물들은 민족혁명을 우선시하는 일명 민족적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성숙은 이미 광동에서 유일당공동촉성회를 결성해서 유일당 운동을 했고, 한인대표로 광주봉기에 참여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숙은 한 국가에 당은 하나 뿐이어야 한다는 ‘일국일당’의 원칙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신에 매몰되어 중국의 공산혁명에 참여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한인 청년들을 보면서 사상적으로 전환을 모색하게 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8년여의 긴 세월을 진보적 문필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게 되었고 그 결과 비록 몸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중국을 위한 혁명이 아니라 조선을 위한 혁명, 즉 민족혁명을 지향해야 한다는 노선을 걷기에 이른 것이다.

“나 혼자만이라도 조선의 혁명을 위해 노력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성숙은 “나 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에 들어가지 않고 조선의 혁명에 몸바치려고 하는 동지들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면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했다. 성숙은 공산주의보다 조국의 해방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족적 공산주의자들을 결집시키면서도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조직이나 활동가들은 성숙이 이끄는 해방동맹을 공산주의 단체로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훗날 임시정부 역시 해방동맹을 공산주의 단체로 보았다.

그러나 성숙이 당시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상호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성숙은 이때 민족주의를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로 몰아붙이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강조하며 마르크시즘과 레닌이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상에 맞섰다. 그러면서 “민족문제가 더 크며 민족이 독립된 뒤에야 공산주의든지 사회주의든지 무엇이든지 되는 것이지 민족의 독립이 없이 무엇이 되겠느냐”고 역설했다. 그리고는 “독립을 위해서는 전 민족이 단결해야하며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라며 “이 민족주의와 합작해서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숙은 이처럼 이념문제에 대해 예전과 달리 유연하면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었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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