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선 스님]하나이면서 둘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섬진강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서 화개장터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끝없이 맑은 물길에 내려앉은 가을 하늘과 강의 정취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강물에 띄운 뗏목이 안전하게 바다에 도착하려면 양어귀와 중간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듯이 성품에 계합하려면 일체 사량 분별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화두를 하는 사람은 의단이 뭉치게 되면 생각의 기멸이 사라지고 마치 가을 들물처럼 무심을 이루어 깨침의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공부를 마치는 것이 멀지 않았다고 『몽산법어』는 설하고 있다.

가을은 너무 덥거나 춥지 않아서 수행하기에 좋은 계절인 것 같다. 수행이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계절을 타지는 않지만 싸늘한 바람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면 왠지 모르게 외롭고 쓸쓸하여 지난 시간을 돌이키게 되어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들이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착안하여 바로 알아차리고 화두의 의정으로 돌이키면 일체에 의지하지도 않지만 분명하고 신령스러운 성품이 나타난다. 사량 분별을 떠난 화두의 의정은 성품의 작용으로 의심을 통하여 의심하는 놈을 회광반조하는 것이어서 일체 업력을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화두가 가을 들물처럼 순일 무잡하게 타성일편을 이루면 머지않아서 병아리가 알에서 껍데기를 쪼고 나올 때와 같고 밤을 구울 때 속이 다 익어서 탁 터지는 순간처럼 확철대오한다고 하였다.

한때 무성했던 것들이 한 잎 두 잎 물들기 시작하여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더욱더 마음은 조촐하게 된다. 번거로운 일상을 탈출하여 가을 여행을 떠나는 것은 두터운 업력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온몸으로 청량한 기운을 느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섬진강은 노랫말처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하동 포구 팔십리를 거쳐 끝내는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세상은 갈수록 양극화 되어가고 더구나 선거철이 다가와서 여야가 둘로 나뉘어 서로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극한 대립이 시작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른 것은 끝없이 자기를 낮추고 시비를 가리지 않아서 양변을 여의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서 그간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앞으로 수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 것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서로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대화가 되고 남북이 함께 잘 사는 길이 열릴 것이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부처 성품에는 남북이 없어서 오직 차별심만 버리면 함께 화합하여 하나로 만날 수 있다. 머지않아 백두산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하니 다음 가을에는 천지에 가서 맑은 물에 얼굴을 비춰 보고 싶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