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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 - 인연 52

기자명 법보신문

제 10장 오대산 연비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일타는 걸망을 메고 서대 염불암을 떠났다.
운수납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다 하고
구름이듯 물이듯 어디론가 흘러갈 뿐이었다.”

마가목차를 한 사발 들이키자 신기하게도 오른 팔의 통증이 차츰 멎었다. 실제로 차의 약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타는 연비한 오른손의 고통을 잠시 잊었다. 일타는 부엌으로 가 아침공양을 준비했다. 지금까지는 매일 새벽에 상원사로 내려가 죽을 먹어왔으나 오대산에서의 정진도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대 염불암에서 아침공양을 하고 싶었다.

늦어도 아침공양 후에는 서대 염불암을 떠나야 했다. 연비한 손가락을 그대로 두면 염증이 생겨 오른손이 곪아 들어가므로 오늘 중으로 병원으로 가서 소독을 해야 했다. 아침 햇살로 오른손가락을 살펴보니 손가락들이 말끔하지는 못했다. 손바닥 가까운 손가락에 살갗이 쪼글쪼글하게 붙어 있었다. 손가락 끝부분만 깨끗하게 태워져 뼈가 쇠젓가락처럼 드러나 있었다.

일타는 우통수에서 샘물을 길어다 생쌀 반 공기를 솥에 안쳤다. 반 공기만 안쳐도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한 죽이 쑤어졌다. 그런데 아궁이에 막 불을 지피려 할 때였다. 아궁이 속에서 물뱀이 느럭느럭 기어 나왔다. 염불암에서는 뱀을 ‘긴것’이라고 불렀다. 일타는 긴것을 부지깽이로 들어 부엌 밖으로 살려 보내주었다. 어떤 날은 방안에서 좌선하고 있을 때 긴것이 천정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서대 염불암이 습한 곳이었으므로 시도 때도 없이 긴것들이 동거를 요청해 왔다.

일타는 항아리에 든 생콩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혜암과 함께 생식을 해온 콩이었다. 일타는 콩 때문에 혜암에게 타박을 들은 일도 있었다.

“일타스님, 다 같은 콩인데 무얼 그리 가리십니까.”

일타가 썩은 콩을 골라낸 뒤 좋은 콩만 먹자 혜암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혜암은 썩은 콩이든 좋은 콩이든 가리지 않고 한 끼에 일정한 개수만 먹었다. 생콩만 먹는 것이 아니라 변비를 방지하기 위해 솔가루를 물에 타 가루약처럼 마셨다.

‘그렇다. 콩 한 알에도 부처님의 법이 담겨 있구나. 불구부정(不垢不淨). 콩이면 콩이지 더러운 콩, 깨끗한 콩이 어디 있겠는가. 콩 한 알에도 『반야심경』의 도리가 담겨 있구나. 그런데도 나는 콩 속의 공(空)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색(色)의 분별에 빠져 있었구나.’

일타는 걸망을 메고 서대 염불암을 떠났다. 혜암과 작별인사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발우에 담긴 죽을 보면 일타가 떠난 줄 알 터였다. 운수납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다 하고 구름이듯 물이듯 어디론가 흘러갈 뿐이었다. 살았던 토굴에 장작이 부족하면 장작을 해놓고, 양식이 떨어져 있으면 탁발하여 양식을 마련해놓고 떠나는 것이 운수납자들의 인사법이었다.

일타는 산짐승이 이동하듯 산길을 타고 내려갔다. 서울로 가려면 진부로 가서 또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일타는 서둘러 산길을 걸었다. 진부에 도착하더라도 막차를 놓치면 또 하룻밤을 그곳에서 자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타는 또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노스님을 만났다.

“어디로 가는가.”
“서울 선학원으로 갑니다.”

노스님은 일타를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떠나라는 듯 손짓으로 월정사를 가리켰다.

“어서 내려가 보게. 월정사에 서울 가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니. 방금 여기 상원사에서 천도재를 회향하고 내려갔네.”

노스님의 말대로 30리 밖의 월정사에 도착하자, 서울로 가는 신도와 차편이 있었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김정환 장군의 천도재를 상원사에서 지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헌병대 지프차 서너 대와 장군의 어머니 변 보살 일행이 있었다. 변 보살은 오른손을 붕대로 감은 일타의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스님, 나무 하다 다치신 것입니까.”
“보살님, 다친 것이 아닙니다.”
“스님, 어서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제가 타고 가는 차편을 이용하세요.”
“보살님, 어디까지 가십니까.”
“서울입니다.”
“보살님, 잘 됐습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절도 종로 안국동에 있는 선학원입니다.”

일타는 변 보살이 타고 온 공군 헌병대 지프차를 탔다. 운전석 옆에는 변 보살의 친척 남자가, 뒷좌석에는 일타와 변 보살이 탔다. 변 보살은 일타가 왜 다쳤는지 차가 달리는 동안 계속 궁금해 했다.

“손가락을 다쳤습니까, 팔목을 다쳤습니까.”
“다친 것이 아니라 제 손가락을 연비했습니다.”
“에구머니나! 스님 손가락을 태웠다는 말입니까.”

일타는 숨길 이유가 없었으므로 사실대로 말했으나 보살은 크게 놀랐다. 그때부터 변 보살은 일타를 그지없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보살님,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온몸이 내 것인 줄 알지만 진짜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자기 몸에 대한 애착이야말로 허망한 것입니다.”

변 보살은 일타에게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스님, 저는 아들을 잃고 상원사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가는 길입니다.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이것도 육신에 대한 애착입니까.”
“육신에 대한 애착은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변 보살은 합장한 손을 풀지 않고 일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육신은 그림자입니다. 왜 아들의 주인공인 실상을 보지 않고 허상을 보려 합니까.”
“아들을 보고 싶습니다. 진짜 내 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살님, 천도재를 지내고도 이미 망자가 된 아들을 보고 싶다고 하니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변 보살은 나무라는 듯한 일타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일타는 의기소침해 있는 변 보살을 위로해 주었다.

“천도재를 지냈으니 아드님은 벌써 다른 모습으로 환생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습만 달리 했을 뿐 죽은 것이 아닙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입니다. 그러니 슬퍼할 까닭이 없습니다.”

변 보살은 일타의 법문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스님, 아들이 그리워 슬퍼하는 제가 바보입니다.”
“어찌 보살님만 바보이겠습니까. 깨치어 실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바보이지요. 어리석은 중생이지요.”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변 보살의 친척 남자가 말했다.

“스님, 상원사에는 스님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전쟁 전에는 이삼 십 명의 수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네댓 분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저는 서대 염불암에서 혜암스님과 같이 있었습니다.”
“혜암스님이라면 제가 가까이서 모셨던 분입니다.”

그제야 변 보살의 친척 남자가 일타에게 혜암의 안부를 묻는 등 관심을 가졌다. 그는 오래 전부터 혜암을 틈틈이 찾아가 시주도 하고 사는 데 조언을 들어온 듯했다. 혜암이 서대 염불암에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그는 혜암을 몹시 만나고 싶어 했다.

“혜암스님이 계신 줄 알았다면 반드시 뵀을 것입니다.”
“전쟁 중에 헤어지셨군요.”
“그렇습니다. 전쟁 중에 소식이 끊겨 뵙지 못했습니다.”

그는 혜암이 서대 염불암에 머물면서 생식과 장좌불와 수행을 하면서 용맹정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감격한 나머지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지척에 큰스님이 계셨는데도 뵙지 못하고 떠나다니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일타는 그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키지만 다부진 혜암에게서 도인의 기질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름 한 철 내내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밤새 적멸보궁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내리는 행선이라든가, 음식에 대한 애착을 끊은 채 철저하게 생식을 하는 공양 모습에서도 도인의 근기가 보였던 것이다.

일타는 공군 헌병대 지프차로 편안하게 서울로 들어와 종로 선학원 앞에서 내렸다. 일타는 범어사에 머물 때 선학원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선학원이 낯설지 않았다. 선학원은 1921년 남전(南泉), 성월(惺月), 도봉(道峰), 석두(石頭) 등 네 스님의 원력으로 세운 선원이었다.

그 당시 일본이 사찰령을 반포하여 조선 불교를 일본의 총독부 관할 아래 두었기 때문에 고승들이 조선불교의 법통을 지키고자, 사(寺) 암(庵)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고 선학원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선학원이 1934년에는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으로 개칭하여 초대 이사로 적음(寂音), 남전, 성월, 만공, 한암 등이 이끌었고, 조국이 해방 되자 다시 선학원으로 이름을 환원하였으며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이승만 정권의 지지를 받아 왜색불교를 정화하는 데 산실이 되었다.

일타가 선학원을 찾았을 때 선학원 원장은 적음이었고, 동산, 효봉, 경봉, 인곡(仁谷), 청담, 고봉 등 범어사와 통도사, 해인사와 송광사의 고승들이 오가며 불교정화에 대한 논의를 8월 늦더위처럼 뜨겁게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침 일타를 아는 고승 인곡이 선학원에 머물고 있었다. 일타가 해인사 장경각에서 밤낮으로 7일기도를 하는 동안 가끔씩 일타의 귀를 잡아당기며 공양을 걱정해 준 스님이 바로 인곡이었던 것이다. 일타가 절을 하자마자 인곡이 호통을 쳤다.

“이놈의 자식이 또 쓸데없는 짓을 했구먼.”

인곡이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일타를 보고 ‘또’라고 한 것은 자신의 상좌인 운문도 손가락을 태운 바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적음이 일타에게 감긴 붕대를 풀어보라고 했다.

적음이 그렇게 말한 것은 상처의 정도를 알고 싶어서였다. 약간의 의술이 있고 침을 놓을 줄 아는 적음은 일타의 연비한 손가락을 보고는 놀랐다.

“손가락이 반 이상 탔군 그래. 뼈가 젓가락 같이 삐쭉하구먼. 고추 꿰놓은 듯 쪼글쪼글한 살은 빨리 없애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손바닥 살까지 곪으니까. 이 정도면 내 침도 소용없으니 병원 치료를 받아야겠어.”
“소독하려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아는 병원이 있는가.”
“없습니다.”

적음은 즉시 종이를 꺼내 서울대병원장에게 화상치료를 부탁하는 편지를 썼다. 서울대병원장이 속가제자인 모양이었다.

“병원장이 나를 가끔 찾아와 법문을 듣고 가는 의사네. 편지를 썼으니 잘 해 줄 것이네. 어서 가봐.”

조금 전에 호통을 쳤던 인곡도 나섰다.

“나랑 같이 갈까. 이 더운 날 살이 썩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야.”
“스님,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스님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서울의 여름 날씨는 오대산과 달랐다. 늦더위가 거리를 화덕처럼 달구고 있었다. 행인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로 나서자 금세 땀이 흘렀다. 적음과 인곡이 걱정한 대로 더운 날씨에 살이 곪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일타가 서울대병원장을 찾아가 편지를 내밀자, 병원장이 젊은 외과의사를 불러 지시했다.

“손가락을 태우신 스님이오. 오늘은 응급조치를 하고 가능한 한 수술 날짜를 빨리 잡아 치료하시오.”

의사는 붕대를 풀더니 알코올로 소독부터 먼저 했다. 뼈마디에 붙은 살을 벗길 듯이 깊숙이 소독하고서는 바셀린 거즈를 덮었다.

“스님, 아프지 않습니까.”
“견딜 만합니다.”
“통증이 심할 텐데 대단하십니다.”

의사는 의아한 얼굴로 간호원을 불러 페니실린 주사를 놓도록 지시하고는 응급실을 나가며 말했다.

“내일 수술할 테니 다시 오십시오, 스님.”

다음 날.

의사는 병원 대기실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타를 앞으로 불러 수술을 시작했다. 거즈를 벗기고 나서는 뼈에 붙은 쪼글쪼글한 살을 긴 가위로 말끔하게 제거한 다음, 젓가락처럼 솟은 뼈를 모두 삭둑삭둑 잘라냈다. 그러자 오른손이 엄지와 손바닥만 남아 뭉뚝한 주먹손이 돼버렸다.

“조심하십시오. 절대로 물을 묻혀서는 안 됩니다. 균이 침투하면 큰일 납니다.”
“박사님, 언제나 치료가 끝나겠습니까.”
“적어도 우리 병원을 3달은 다니셔야 되겠습니다.”

인곡은 병원을 오가며 치료하는 일타와 마주칠 때마다 걱정을 했다. 일타는 점심 공양 후 창경원 돌담길을 따라 서울대병원으로 산책하듯 걸어가 담당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서 슬금슬금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날이 더우니까 살이 썩을 수도 있어. 내가 적음스님에게 부탁해 두었으니 아무 일도 하지 말게.”
“매일 칼슘 주사와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다행히 염증이 멎고 생살이 잘 돋는지 근질근질합니다.”
“이 사람아, 중은 고기를 안 먹어서 그래. 이런 때 고기 먹는 중과 그렇지 않은 중을 알 수 있어.”

일타의 오른손은 의사의 진단과 달리 빠르게 치료가 되었다. 병원장도, 담당 의사도 놀랐다. 3달 정도의 치료 기간을 예상했는데 보름이 지나자 생살이 돋기 시작했다. 젊은 의사들 끼리 수군대었다.

“달마대사 앞에서 혜가스님이 제자가 되고자 팔을 하나 잘랐다더니 현대판 혜가스님이 나타났어.”
“손가락 열두 마디를 태우고도 아무런 후유증 없이 생살이 돋고 있으니 도대체 불심이 무엇인지 내 의학지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니까.”

일타는 연비한 오른손이 다 나은 후에도 선학원에 그대로 머물고 싶었다. 선학원만큼 전국의 고승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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