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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자유지만 잡념에 매달리면 중생

기자명 법보신문

부산 여여선원장 정 여 스님

흙 가라앉으면 깨끗해도
흔들면 흙탕물로 변하듯
사람 본성 맑다 하지만
탐욕에 이끌리면 탁해져

불쏘시개 계속 넣어야
젖은 장작 불 타오르듯
기도-염불 한 번 하면
한 시간 이상 지속해야

오늘은 행복이라는 주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행복보다도 소중한 말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동서남북 사대문을 통해서 생로병사의 실상을 보시고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고민을 거듭하다 출가하셨습니다.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되신 태자는 마음이 아주 맑고 깨끗하고 그윽했습니다. 마음을 괴롭히던 번뇌 망상이 다 사라지고 파란 하늘처럼 때 묻지 않은 연꽃과 같은 마음이 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고뇌도 고통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맑은 고요함을 남에게 전하겠다 생각하고 모든 중생의 마음을 가만히 살펴봤습니다. 중생의 마음을 살펴보니 깨달은 당신 마음만 깨끗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근본 마음 바탕도 똑같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맑고 깨끗한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게도 점점 어두운 쪽으로 갑니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의 본래 마음 바탕은 맑고 깨끗한데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고 보셨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욕망과 쾌락을 좇아가는 마음이 일어나면서 물질과 애정에 대한 소유욕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러한 것들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괴로움이 생긴다는 겁니다.

‘화’근본 알면 ‘시기’안 해

행복을 찾아가는데 일시적인 거짓 충족과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일시적인 거짓 행복이란 욕망과 욕구를 쫓아가는 것입니다. 나이가 70, 80세 정도 되신 분들은 욕망과 욕심이 허망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가수 현철 씨가 부른 노랫말에는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세 가닥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돈과 욕망의 포로가 되었는데 나이가 들어 보니까 한바탕 꿈이라는 말입니다. 욕망과 욕심, 쾌락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기다 모든 생명을 걸며 붙들고 매달리려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채우다가 안 되면 독 밑을 보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끝내 보지를 못합니다.

저는 한 때 토굴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곳에 앉아 정진에 들어가고 아침에는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깨어났습니다. 자그마한 공간에서 저절로 자연과 벗하면서 살게 되니 밥과 국에다 물김치 하나만 있어도 맛은 기가 막혔습니다. 정말 자연에서 살아 보니까 행복해요. ‘소유지족’이라는 말이 있는데 작은 것을 가지고도 행복할 수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작은 것을 가지고도 행복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물질이 없으면 못산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불교에서 마음을 비운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비우려고 해도 비워지지 않습니다.

달마 대사가 중국 소림굴에서 면벽 하고 있을 때 눈이 쏟아지는 가운데 삼일 밤낮을 소림굴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다 자신의 왼팔을 잘라서 도를 구하는 의지를 표현했던 2조 혜가 대사를 기억하십니까? 당시 혜가는 “마음의 괴로움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고 “네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다면 그 불안해하는 마음을 찾아서 내 놓아라”라는 달마 대사의 대답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 해 봅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답답하고 불안한 날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을 찾아서 내놓으라 한다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마치 하얀 도화지와 같은 마음에 아침에 눈뜰 때부터 저녁에 잠이 들 때 까지 끊임없이 생각을 그려 넣고 있는 겁니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지만 문제는 생각을 하고서 스스로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온갖 생각을 하고 있잖아요.

깨닫고 깨닫지 못한 차이는 간단합니다. 깨달은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어나는 끊임없는 생각이 자기가 일으킨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자신의 그림자에 속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텔레비전과 같습니다. 텔레비전의 브라운관 안은 진공입니다. 진공이기 때문에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우리 마음도 브라운관처럼 형체를 가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텅 빈 공간속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하지만 헐떡거리지 않습니다. 참다운 행복은 말과 모양에 속지 않는 사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깨달은 부처님의 마음과 중생의 마음을 비교한다면, 부처님 마음은 그냥 맑음입니다. 맑은 물은 흔들어도 언제나 맑은 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생의 마음은 마치 흙탕물과 같아서 가만히 두면 맑았다가 흔들면 흙탕물이 됩니다. 화를 낼 때 화내는 근본을 알면 화를 내거나 남을 미워하고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 마음처럼 살겠다고 다짐을 해도 누가 욕을 하면 금방 뒤집어집니다. 이것은 목동이 소를 찾아 길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화는 습관입니다. 화가 났을 때 또 속았구나 하고 화를 내는 모습을 살펴보면 뿌리도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날 때 ,남을 미워할 때, 언제든지 자기를 보는 공부가 이뤄져야 합니다. 처음에는 화가 날 때 자신을 살펴보는 노력이 한 시간 걸리지만 점점 짧아집니다. 나중에는 화가 나는 것을 돌아보는 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잘못된 길을 가면 채찍질을 하면서 어두운 소가 점점 흰 소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부처님 마음으로 돌아가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하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공부가 소중하고 어떤 공부는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사경을 잘하는 사람은 사경을 하면서 부처님 마음에 들어갑니다. 또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부르는 분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과 연결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할 때 한 번 시작하면 적어도 한 시간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월남전에 참전한 이후 몸이 나빠져 병원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스님 한 분이 관세음보살을 많이 부르라더군요. 그래서 주사 방울이 한 방울 씩 떨어질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1개월이 지났는데 온 몸이 아주 편안하게 이완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나도 대상도 다 사라지고 아주 맑고 고요한 세계에 들어갔습니다. 너무 맑고 깊어서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었어요. 지금도 저는 연하장 5천장을 직접 씁니다. 500장 이상을 쓰고 나면 의식이 깊어집니다. 그리고 두, 세 시간이 지나도 환희심으로 계속 그리게 됩니다.

자비심 넘치면 ‘불국토’

기도를 할 때는 5분, 10분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일 때와 같습니다. 불쏘시개를 계속 넣어야 불길이 타오르는 것처럼 계속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꼭 원을 세우고 정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선지식이 법문을 한다면 반드시 듣겠다는 원을 세워야 합니다. 돈을 벌면 반드시 좋은 곳에 회향 하겠다고 발원해야 합니다. 원을 세운 사람과 원을 세우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업’이 하나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거나 힘들고 어려운 중생을 보았을 때 그들을 구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비심입니다. 만약 많이 가진 자가 자기만 갖고 남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일만 불 시대가 되었고 세계 2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은 선진국 수준인데 생활은 뒤떨어져 있습니다. 함부로 버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고 어른을 존경하는 모습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불교를 통해서 이러한 사회문화를 쇄신해야 합니다. 어른을 존경하는 문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끔 이끌어 주는 문화를 말입니다. 일념으로 기도 정진하고 자비심으로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부터 돌아 볼 때, 참다운 행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불자가 많아진다면 그곳이 곧 불국토가 아닐까요.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부산광역시불교신도회(회장 공병수)가 10월 12일 부산불교신도회관에서 본지와 공동 주최한 ‘도심 포교 성공 신화 릴레이 초청대법회’ 두 번째 법석에서 부산 여여선원장 정여 스님이 ‘참다운 행복이란’ 주제로 법문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정여 스님은

정여 스님은 벽파 스님을 은사로 부산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1979년 범어사 금강암 주지를 지낸 스님은 1995년 여여선원의 모태인 보현선원을 개원해 도심 포교를 시작했으며 2000년 5월 부산시청 바로 옆에 부산불교회관을 건립, 여여선원을 이전 개원했다. 어린이 포교와 복지에 관심을 가진 스님은 대한불교교사대학 학장,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 회장, 부산 금정구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지냈으며 보현도량 및 보현장학회 이사장, 공동선실천 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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