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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군종교구장 일 면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늘 마지막이란 간절함으로 살아갑니다”

새 천년이 열리는 2000년 1월, 세상이 온통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넘쳐 있던 그 순간, 일면 스님은 차가운 병원 수술실에서 홀로 죽음과 대면하고 있었다. 이미 기능을 상실해 버린 간, 육체는 죽음의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었다. 생명나눔실천본부를 통해 구사일생, 다른 이의 간을 이식받게 됐지만 수술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일. 수술도 수술이거니와 후에 오는 합병증을 견뎌내기가 더욱 어려웠던 탓이다. 수술 직전 스님은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조용히 올려다봤다.

‘저승에 가면 언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살고 죽음에 대한 상념은 불문(佛門)에 들며 놓아 버린 터이지만, 그래도 지나 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기억은 가물거리듯 심연 속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스님은 코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의 차가운 촉감을 느끼고서야 깨어났다. 잡혔다 풀린 물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느끼듯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시리도록 상쾌했다. 이윽고 흐릿한 눈을 통해 다시 보게 된 소중한 인연들, 가슴 깊은 곳은 고마움에 하염없이 울컥거렸다.

간 이식으로 두 번째 삶

“수술 후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아직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상태였지요. 밀려오는 극심한 고통을 간신히 견디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혼미한 상태에서 잠결인지 꿈결인지 어디선가 애절한 염불소리가 들려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헌데 자세히 들어보니 목소리가 또 귀에 익어요. 누가 죽어 저 스님이 저렇게 병원에 와서 염불을 할까. 그러면서 가만히 염불을 따라했지요. 제 일생에서 가장 경건하고 간절한 염불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병원에서는 그날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예요. 아마도 그 염불 소리는 새로운 생명을 주시려는 부처님의 수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스님은 기적처럼 살아났다. 수술과 합병증의 긴 고통의 터널을 뚫고 얻게 된 두 번째 삶.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다시 살아서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뼈저린 발로 참회, 그리고 삶에 대한 나태를 단칼에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얻은 인생, 이런 삶 어디에 기름기가 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 것이다. 스님의 일상은 군과 청소년 포교, 장기기증운동과 노인복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분초를 쪼개는 바지런함의 연속이다. 군종교구장을 시작으로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광동학원 이사장, 송산노인복지관 운영까지. 여럿이 감당해도 버거울 일들을 혼자서 허리가 휘도록 짊어지고 있는 것도 다시 주어진 삶을 세상을 향해 회향하려는 스님의 애틋한 마음에서다.

분초 쪼개 쓸 정도로 부지런

“맡고 있는 일들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군포교도 중요하고 장기 기증도 중요합니다. 청소년 포교와 복지활동 역시 소홀히 할 수 없지요. 그럼에도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군포교예요. 젊고 파릇한 장병들을 보면 신심이 서릿발처럼 절로 일지요.”

3년째 군종교구장을 맡고 있는 스님의 하루 일과는 군포교 활성화에 그야말로 ‘올인’이다. 수시로 전군의 군법당을 방문, 장병들을 격려하고 군포교 애로사항을 청취하는가 하면 전방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위문하는 일이 온전하게 스님의 몫이다. 어찌나 열심인지 굵직한 군법당치고 스님의 체취가 닿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 예년과 비교해 올해 훈련소 수계 장병이 6000명이나 늘었고 육군사관학교에 들어 온 후보생 160명 가운데 꼭 절반인 80명이 불자 됨을 서원했다. 가톨릭 후보생이 겨우 20여명에 불과했으니, 만 2년의 노력에 비하면 괄목한 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훈련소에서 수계를 받고 불자가 되는 장병들이 많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이니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겠지요. 그러나 더욱 힘든 사람은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입니다. 군종교구에서는 이런 부모님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수계를 받은 훈련병의 집에 일일이 편지를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반향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눈물어린 감사의 편지에, 고마움을 가득 담은 전화까지. 가슴이 절로 뻐근해지지요.”

군종교구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군포교의 핵심전력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교구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열린 행정이 큰 힘이 됐다. 회보를 통해 살림 내역을 빠짐없이 알리고 교구장 스님을 중심으로 포교와 불사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 했던 점이 군포교 활성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예전에는 군승행정이 군법사들 자율로 운영되다보니 성과만큼이나 문제점도 적지 않았어요. 이를테면 진급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인데, 노력과 성과보다는 상급자들의 호오(好惡)에 따라 진급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파벌이 형성되고 크고 작은 불협화음들이 터져 나오곤 했지요. 그러나 군종교구가 출범한 이후 확고한 인사고과를 통해 진급자가 결정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주 법회를 여는지, 수계 장병은 얼마나 되는지, 전방 근무는 또 몇 차례나 했는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체크하지요.”

처음엔 불평들이 적지 않았다. 40여 년의 세월을 자율로 운영하다 갑자기 관리를 받으니 불편해 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아무리 공정해도 인사에 있어 당락(當落)은 비껴 갈 수 없는 일. 때문에 진급 발표가 있는 날이면 으레 죄인마냥 스님은 미안함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탈락자들을 불러 며칠이고 설득하고 위로하는 것이 또 하나의 중요한 일과가 됐다.

“교구장인 제가 직접 위문품을 들고 전방을 방문하면 장병은 물론 지휘관들이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직접 방문에 따른 고마움도 있겠지만 군종교구를 통해 일선 부대의 애로점들을 해결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겠지요. 현장을 방문해 보면 군종교구에 대한 위상이 우리 생각 이상으로 높아져 있어, 깜짝 놀라곤 합니다.”

달라진 군종교구의 위상만큼이나 군 안에는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불자임을 애써 숨기던 예전과 달리 장성이나 영관급은 물론 일선 초급 장교들까지 당당하게 불자임을 밝히고 있다. 군종교구가 충분한 바람막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때문일 터였다.

올 불자 훈련병 6000명 늘어

군종교구는 매년 전방 연대 법당에 분기별로 적지 않은 후원금과 초코파이를 지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포교에 공이 큰 법사 15명을 선발해 꾸준히 해외 연수를 보내고 있다. 또 불사가 진행 중인 부대에는 3000만원에서 2억원까지 적지 않은 재원을 후원하고 있다. 특히 불사 계획부터 설계도까지 모든 공사를 군종교구에서 일괄 관리하는 까닭에 불사를 둘러싼 부끄러운 잡음들은 옛 이야기가 된 지 오래. 사정이 이러니, 군포교 현장에 윤기가 흐르는 것은 불문가지. 이런 노력의 결과로 군종교구는 최근 30억 원 규모의 강원도 양구 사단법당 의선사 불사를 마무리한데 이어 17사단, 27사단 법당과 6사단 통일대불 건립 등 수십 억 원에 이르는 크고 작은 불사를 진행하거나 추진 중에 있다.

“종단에서 매년 2억 5000만원의 정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포교 현장에서 커다란 힘이 되고 있지요. 하지만 따지고 들면 또 그리 넉넉한 자금은 아니에요. 그래서 군종교구 차원에서 군포교 후원 1인 1구좌 갖기 만인동참 운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부족한 재원을 메워보자는 노력의 일환이지요. 처음 하는 일이라 중간에 착오도 없지 않았지만 조금씩 자리가 잡혀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돕겠다는 분들이 참 많아요. 올해만 벌써 7억 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았으니, 이정도면 군포교에 희망이 있는 셈이지요.”

수필 출간법회 수익금도 보시

군종교구가 제자리를 찾다보니 이제는 신심 깊은 지휘관이 먼저 군법당 불사를 타진 해 올 정도로 포교 현장의 분위기가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스님은 기꺼워했다.

최근 스님은 이미 발표한 글을 다듬고 여기에 몇 편을 더해 수필집『행복한 빈손』을 발간하고 이를 기념해 출판 법회를 열었다. 법회를 통해 들어 온 7000여만 원 전액을 군종교구에 후원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경구는 출가수행자로 부끄럼 없이 살고 있는지, 열심히 살고 있는지 항상 되묻거든요. 저에겐 말 그대로 죽비예요.”

자신에게 늘 ‘잘 사느냐’고 묻는것은 작은 방일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넘어 새롭게 주어진 삶, 그러니 아까울 것도 남길 것도 없다. 아니, 스님에게 간을 기증했던 고마운 이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무런 번민 없이 군의 포교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일에 스스로를 온전하게 바칠 수 있었던 것도 욕심을 모두 놓아버린 무욕의 마음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였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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