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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신심이 빚어낸 신비의 사원

기자명 법보신문

사바세계의 마지막 정토 부탄을 가다
中 부탄의 상징 탁상 사원(Taktshang Temple)

<사진설명>‘연꽃에서 태어난 위대한 스승’이라 불리는 구루 린포체가 세웠다는 탁상 사원. 비스듬한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이 사찰은 부탄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유산으로 알려져 있다.

신비의 나라 부탄을 찾는다는 기대감에 새벽부터 분주하게 보낸 탓인지 오전 11시가 넘어서자 벌써부터 허기가 밀려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먼저 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다.

부탄의 음식문화는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쌀밥에 소금과 버무려 만든 고추무침, 고기만두와 비슷한 모모스, 치즈로 만든 각종 반찬. 여기에 김치와 고추장이 곁들여진다면 영락없는 우리네 시골 밥상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민족들이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지만 부탄인들은 유독 쌀을 좋아한다. 자국의 통계에 의하면 부탄인들은 하루에 평균 1kg의 쌀을 먹는다고 한다. 더욱이 부탄인들은 흰 쌀 말고도 일부 지방에서 재배되는 붉은 색깔의 적미(赤米)를 즐겨먹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붉은 쌀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흰 쌀보다 값이 더 비싸다고 한다.

부탄, 범어 ‘부우탄’서 유례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토속적 향이 짙게 배인 부탄의 전통음식을 후딱 해치우고 다음 목적지인 기츄 사원을 향해 다시 봉고차에 올랐다.

파로 시내에서 기츄 사원까지는 20분 남짓. 가는 내내 인도 델리대에서 불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가이드는 부탄 불교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놨다. 해박한 불교지식 탓인지 그의 설명은 수준급이었다. 그는 우선 부탄의 이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사실 히말라야 산맥에 갇혀 수세기 동안 은둔의 삶을 살았던 터라 부탄은 그 이름을 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된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부탄가스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부탄은 산스크리트어 ‘보타나(Botana, 티베트의 변방)’ 혹은 ‘부우탄(Bhu Utan, 높은지역)’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대로 해석하면 티베트 변방에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나라인 셈이다. 어원이 암시하듯 부탄은 지역적인 특수성으로 오래전부터 인접한 티베트의 영향을 받아왔다. 특히 찬란한 밀교 문화를 꽃피웠던 티베트 불교는 부탄 불교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설명>7세기 티베트왕 송첸감포가 세웠다는 기츄 사원.

구전에 의하면 부탄이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7세기 경. 당시 불심이 유독 깊었던 티베트 왕 송첸감포가 불법을 전하기 위해 티베트를 비롯해 히말라야 전 지역을 돌며 하루 만에 여러 지역에 108개의 사찰을 건립하면서부터다. 사실 사찰 한 곳을 짓는데도 엄청난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거늘,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 이 곳 저 곳을 돌며 하루만에 108개의 사찰을 지었다니….  불교를 전해준 송첸감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부탄의 신심 깊은 불자들이 지어낸 소설 같은 이야기일 테지만, 아무튼 우리가 찾는 기츄 사원은 부탄 중부 내륙 지방인 붐탕의 잠바 사원과 함께 티베트 왕 송첸감포가 건립한 108개 사찰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무르익을 무렵, 산중 작은 암자처럼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기츄 사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티베트 양식의 불탑을 중심으로 3층 규모의 전각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서둘러 법당으로 들어섰다. 화려한 조명이 법당 내부를 대낮같이 밝게 하는 우리의 여느 사찰과 달리 기츄 사원의 내부는 어두컴컴해 한동안 발길을 옮기기가 힘들었다. 넉넉지 않은 전력 탓도 있지만 수백 년 간 법당을 장엄해 온 수많은 만다라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런 까닭에 법당을 참배하러 온 모든 이방인들은 가지고 온 카메라를 법당 입구에 마련된 종무소에 맡겨야만 했다. 그 누구에게도 법당 내부 촬영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부탄의 불교문화를 많은 이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욕심에 기자 신분증을 보여서라도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역시 부질없는 시도였다. 문득 자신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후대에게 전해주려는 부탄인들의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 존경심이 들었다.
 
대웅전에 들어서자 높이 3m는 됨직한 대형 부처님이 지긋한 눈빛으로 이방객들을 맞았다. 풍만한 풍채에 근엄한 상호. 스리랑카, 태국 등 남방불교문화권에서 느꼈던 부처님 상호와는 사뭇 다르다. 마치 석굴암 부처님을 옮겨놓은 듯 편안함이 느껴진다.

부탄불교, 7세기 티베트서 전래

<사진설명>깨끗하게 정돈돼 있는 파로 시내 전경.

법당 참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부탄 성지를 환하게 비추던 가을 햇살은 벌써 히말라야 산맥을 홀로 넘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 숨겨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 듯 가이드는 다시 다음 목적지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탁상 사원. 해발 3000미터의 탁상 산 절벽에 세워진 이 사찰은 부탄 불교를 상징하는 곳이다. 많지는 않지만 부탄을 소개하는 책자에 어김없이 등장할 뿐 아니라 수많은 부탄 불자들의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으로 일컬어진다.

사실 부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7세기 경 송첸감포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격적으로 부탄에 불교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연꽃에서 태어난 위대한 스승’이라 불리는 구루 린포체(Guru Rinpoche)가 8세기 경 ‘호랑이 보금자리’라고 불리는 탁상 산 절벽에 사찰을 건립하고 불법을 펴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이후 불교는 부탄의 역사와 전통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현재까지 전 국민의 90%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이런 까닭에 지금도 부탄의 사찰이나 각 가정에서는 구루 린포체의 상(像)이나 그림, 조각 등을 전시할 정도로 제2의 부처님처럼 추앙받고 있는 인물로 전해진다.

구루린포체, 제2의 부처님으로 추앙

푸르게 펼쳐진 초록의 물결이 다할 즈음 탁상 사원으로 통하는 산 어귀에 도착했다. 탁상 사원은 차를 타고 중턱까지 오른 다음 다시 걸어서 올라야만 한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개설하거나 케이블카를 상상해 봄직 하지만 전통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부탄인들에게 현대문명은 사치에 불과한 듯하다. 탁상 사원은 천길 낭떠러지를  오직 한발 한발 신심으로 오른 이들에게만 그 자태를 드러냈다.

깎아지른 절벽에 위태롭게 놓여 있는 오색의 전각들. 어떻게 저런 곳에 절을 지을 수 있었을까. 손에 기와와 벽돌을 들고 부처님 도량을 짓겠다는 원력으로 한발, 한발 험준한 절벽을 올랐을 부탄인들을 상상하니 그저 숙연해질 뿐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끌리듯탁상 사원을 향해 나아갔다. 순간 등 뒤에서 손을 내저으며 소리를 지르는 가이드의 모습이 들어왔다. 3시간은 족히 걸리는 탁상 사원을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시각에 오르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위험한 절벽 길을 달빛에 의지해 오르다가 큰 사고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란다.

거듭되는 가이드의 설득에 부탄 불자들의 신심이 빚은 신비의 사찰을 참배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과 서운함을 애써 달래고 다시 차를 돌려 파로 시내로 향했다.

숙소에 들어서자 벌써 어둠은 짙게 깔려 있었다. 창문을 열어 부탄의 밤하늘을 바라봤다.
탁상 사원을 참배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것일까. 탁한 공기에 미쳐 확인할 수조차 없었던 서울과 달리 부탄의 밤하늘에 흐드러진 별들이 두 눈 가득 쏟아져 내렸다. 마치 어린왕자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오는 듯 하다. 
 
파로=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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