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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 - 인연 53

기자명 법보신문

제 10장 오대산 연비

“저는 중노릇만 하겠습니다. 제 정화불사는 따로 있습니다.”
“허허, 그것이 무엇인고.”
“마음속에 번뇌 망상을 지워 제가 청정해 지는 것입니다 .”

연비를 한 일타는 조금도 후유증을 겪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자 말끔하게 완치가 됐다. 초가을부터는 연비한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일타는 엄지와 손바닥 사이에 붓을 끼워 글씨를 연습했다.

아침저녁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와 선학원 마당에는 느티나무 낙엽이 쌓였다. 일타는 마당을 쓸며 밥값을 했다. 고승들이 그러한 일타를 보고 칭찬하곤 했다. 일타의 연비를 모두 장하게 여겨 주었다.

선학원은 늘 대중이 많았고, 전국의 여느 절보다 양식과 먹을거리가 풍족했다. 승속을 불문하고 어디나 전후의 가난을 면치 못했는데 선학원만큼은 세끼 흰밥 공양이 나왔다. 고승초청법문이 돌아가면서 차례차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승들이 정기적으로 법문하면 선학원 살림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제안하여 이루어진 초청법문이었다. 일타는 먹어보지 못했던 고급 케이크와 빵 등을 맛보았다. 고승들을 친견하기 위해 찾아온 신도들이 가지고 온 시주물이었다. 일타는 대중공양을 할 때마다 고승의 힘을 느꼈다.

‘큰스님의 법력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구나. 선학원의 많은 대중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보니 말만 큰스님이 아니구나.’

일타는 동안거를 선학원에서 났다. 고승들의 법문을 들을 때마다 행복했고, 연비한 공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사람노릇은 걷어치웠다. 그래도 마음은 태평이다. 이제 대학에 대한 미련도 없고, 권력에 대한 미련도 없고, 부자에 대한 미련도 없다. 사람이 탐하는 일체 명예도 명리도 없는 바보가 바로 나이다.’

일타는 비로소 중이 된 것 같았다. 자물쇠와 열쇠가 만난 것처럼 중이 될 운명 속으로 들어선 것 같았다. 과반에 놓인 탐스런 배를 보자, 문득 스물한 살 무렵의 통도사 강원졸업 시절이 떠올랐다. 졸업생 도반들과 함께 통도사 부근의 서천이네 과수원으로 배를 먹으로 갔다. 일본인이 경영하다가 해방 후 조선인에게 넘기고 간 제법 큰 규모의 과수원이었다.

마침 과수원에는 잘 익은 배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예닐곱 명의 학인들은 배를 사먹고 나서 과수원 인근의 자갈 동네로 갔다. 그 마을에는 관상쟁이가 있었는데, 한 학인이 관상을 한번 보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과연 자갈동네에는 눈이 뚱그렇고 몸집이 뚱뚱한 20대 중반의 관상쟁이가 있었다. 당시 강원졸업생들은 머리를 조금 기르고 사복 차림으로 강원을 다녔으므로 일반인과 구별이 잘 안 됐다. 관상쟁이는 나이 먹은 학인을 먼저 봐주더니 일타 차례가 되니 나이를 먼저 물었다.

“몇 살이오.”
“스물 한 살입니다.”

일타는 자신의 실제 나이를 가르쳐주었는데도 관상쟁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일타가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 아래는 관상을 안 보는 법이오.”
“이보시오. 내 나이를 왜 속이겠소.”

관상쟁이는 일타의 얼굴을 유심히 훑어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학생은 장가를 못 가겠구먼.”

좌중은 웃음보가 터졌다. 학인뿐만 아니라 관상을 보러 온 속인도 몇 명 끼어 있었는데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속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이고, 이 학생은 솥단지를 매달아 놔야겠네.”

속인 할머니도 말했다.

“저런 좋은 청년이 장가 못 간다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고자도 아닐 긴데.”
“왜 장가를 못 갑니까.”

한 학인이 대신 묻자, 일타의 운명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여자가 한둘이라야 결혼하는데 수백 수천 명이 앞에 있으니 어찌 하겠소.”

일타는 관상쟁이에게 기가 질렸다. 신기가 있는 듯 관상쟁이의 시선이 일타의 뇌리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일타는 자신의 장래 희망을 말했다.

“나중에 대학에 갈려고 합니다. 가겠습니까.”
“책은 많이 보겠소.”
“잘 되겠다는 이야깁니까.”
“책 많이 보면 됐지 뭣 하러 대학 갑니까. 대학은 못 갑니다.”

일타는 실망하여 말했다.

“그래도 간판이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책만 본다고 간판이 생깁니까.”

관상쟁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일타는 또 말했다.

“대학도 못 가고, 장가도 못 가고 그럼 나는 뭐해 먹고 살면 되겠소.”

일타가 장래의 직업을 하나 선택해 달라고 하자 관상쟁이는 눈을 감고 말했다.

“활인성(活人性)이 있구먼.”
“활인성이 무엇이오.”
“사람 살리는 것을 활인성이라 하오. 의원 노릇하면 괜찮을까. 아, 그렇지. 사람을 살리는 의원노릇하면 되겠소. 약도 짓고 병도 치료해주는 한의원 말이오.”

일타는 한의원이라는 직업에 시큰둥했다. 한의사 공부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중이 되기 위해 출가한 사람에게 한의원이라니 생뚱맞았다. 일타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관상쟁이와 더 주고받을 얘기도 없는 것 같아 좌선의 자세로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관상쟁이가 자신의 무릎을 치며 말했다.

“한의사보다 더 좋은 것이 있소.”
“무엇이오.”
“미안한 소리지만 제일 좋은 것은 다 훌훌 버리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중이 되면 좋겠소.”

일타는 속으로 관상쟁이가 용하다고 생각했다. 관상쟁이는 다소 신이 나 단정하듯 말했다.

“중 돼서 한 40이 넘으면 이름이 확 나겠소.”

이름이 난다는 것은 신도들이 구름처럼 따르는 고승이 된다는 얘기였다. 일타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관상을 봤던 학인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일타를 쳐다보았다. 관상쟁이도 일타가 도인이라도 된 듯 말투가 조심스러워졌다.

“천하의 도인이 되어 세상을 제도하겠소. 허나 여섯 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여섯 수라니요. 무엇을 조심하라는 말이오.”
“스물여섯, 서른여섯, 마흔여섯, 쉰여섯, 예순여섯 등등 나이 여섯이 붙을 때 근신하라는 것이오.”

그러나 일타는 관상을 보고 나서 통도사로 돌아가면서 속으로 관상쟁이를 비웃었다. 대학을 가고 싶은 자신의 꿈을 꺾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에이, 밝은 대낮에 엉터리구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을 갈 것이구먼.’

일타는 법당으로 들어가 향을 하나 피웠다. 그런 뒤, 스물한 살 때 만났던 그 관상쟁이를 위해 합장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신의 말이 맞소. 지금 연비를 한 내 나이가 여섯이 붙은 스물여섯이오. 내 몸을 태웠으니 스물여섯은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된 것이오. 이제 대학 갈 생각은 아예 전생의 일처럼 아득해져버렸으니 당신의 말이 맞소.’

일타는 향을 또 하나 더 피워놓고 불단 옆의 영단(靈壇) 구석으로 가 앉았다. 일타에게 영단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공간이었다. 화두인 ‘염화시중’을 들고 자기 내면으로 돌아가는 장소였다.

불교정화의 중심지가 된 선학원은 언제나 스님들의 빈번한 출입으로 시끄러웠지만 영단의 공간만큼은 오대산 서대 염불암과 다를 바 없었다. 번뇌 망상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적멸의 공간이었다. 불교정화의 비분과 강개가 횡횡하는 가운데 일타에게 영단은 물 흐르고 꽃피는 수류화개(水流花開)의 청산이었다.

그런 삼매를 체험하며 일타는 틈나는 대로 영단 구석에 앉았다. 물론 고승들의 법문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간절하게 새겨들었다.

불교정화를 논의하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금봉, 고봉, 동산, 경봉, 효봉 등의 가르침은 일타에게 전등(傳燈)의 불을 환히 밝혀주었다. 고승들은 왜 불교정화가 시급한지를 일타에게도 설명하기도 했지만 일타는 그런 얘기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큰스님, 저는 중노릇만 하겠습니다. 저의 정화불사는 따로 있습니다.”
“허허, 그것이 무엇인고.”
“마음속에 번뇌 망상을 지워 제가 청정해 지는 것이 저의 정화불사입니다.”

그래도 고승들은 일타를 놔주지 않았다. 고승들 대부분이 평생 화두만 든 선승들이기에 불교정화의 근거가 되는 율장에 대한 공부와 지식이 깊지 않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일타는 통도사 천화율원에서 자운의 지도를 받으며 2년 동안 공부한 경력이 있었던 것이다.

일타는 고승들 사이에 시시비비가 일어날 때마다 불려갔다.

“일타수좌, 비구스님들 중에 은사스님이 대처스님이 많지 않은가. 이럴 경우 비구스님의 승적을 옮기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다른 스승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맞는가.”

고승들의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은사가 대처면 마땅히 스승을 옮겨가야 합니다. 그래야 정화가 됩니다.”
“아무에게나 옮겨가면 법맥이 흐트러지니 안 됩니다. 방법은 대처은사 앞의 스님에게 승적을 올려붙이면 됩니다.”
“그것도 말이 안 됩니다. 항렬이 은사와 같아지니 그런 법맥이 어디 있습니까.”

금오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나의 은사는 보월스님이고 노스님은 만공스님입니다. 만공 노스님 제자 밑의 노스님 손주상좌가 수백 명이나 됩니다. 우리 보월스님은 비구승이니 나는 만공스님의 손주상좌로서 문제가 없습니다. 허나 만공 노스님 회상에 대처승을 은사로 삼은 손주상좌들이 있으니 이들을 만공 노스님에게 승적을 옮긴다면 그들은 나보다 한 항렬이 높아져 하루아침에 나의 사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은사를 옮기는 것은 불가합니다.”

일타가 판단하기에도 불합리했다. 정화를 한다면서 오히려 법맥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은사가 살아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은사가 돌아가시고 나면 마음대로 옮겨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은사 삼겠다고 하고, 달마대사를 은사 삼겠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하하.’

일타는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무관심할 수도 없었다. 율장에 근거해서 유권해석을 내려주지 않으면 불교정화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일타는 율장에 의거해서 대답을 해주었다.

“비니정율(毘尼正律)에 이와 같이 나와 있습니다. 의지함 없이 머물러도 좋은 득무의지주(得無依支住) 비구와 의지함 없이 지내서는 안 되는 무득무의지주(無得無依支住) 비구가 있습니다. 만 20세에 비구계를 받고 5년 이상 지난 비구는 득무의지주 비구가 되니 반드시 은사스님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은사스님이 대처승이라면 위로 올라갈 것이 아니라 다른 비구스님을 스승 삼아도 될 것입니다. 다만 비구계를 받고 5년이 되지 않은 무득무의지주 비구는 반드시 새로운 스승을 정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일타는 문교부 관리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율장에 대처승이란 말이 있습니까. 율장에 승려가 대처를 하면 안 된다는 구절이 있습니까.”

“율장에 사바라이계(四波羅夷戒)가 있습니다. 살생, 투도, 음행, 대망어를 하면 승단에서 축출한다는 네 가지의 계율입니다. 승려가 음행의 계율을 어기면 반석을 깬 것과 같고, 목을 벤 것과 같고, 나무의 심을 끊어 다시는 움이 나지 않은 것과 같고, 바늘귀가 뚝 떨어짐에 그 바늘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타는 율장에 나오는 그 부분을 문교부 관리에게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문교부가 불교정화 사무를 보는 주무부처였던 것이다.

일타의 명쾌한 논거는 더 이상의 시비를 없앴다. 일타는 본의 아니게 절에서 시비를 가리고자 여는 대중공사에도 불려나갔다. 그런 날 일타는 선학원으로 돌아오면서 중얼거리곤 했다.

“사람노릇 하지 않겠다고 연비한 놈이 이 곳 저 곳 불려 다니며 율장이나 써먹고 있으니 내 꼴이 이게 뭔가. 화두 하나만 들고 살다가 죽겠다고 연비한 내가 아니었던가.”
일타는 영단 구석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대산을 그리워했다. 서대 염불암과 적멸보궁이 눈앞에 선했다.

‘선학원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이 영단 구석도 이제는 내가 좌선하는 선방이 아니구나.’

깊은 청산 같았던 영단도 이제는 화두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지만 율장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망상처럼 들끓었다.

선학원에서 하안거를 마친 일타는 마침내 진부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다시 연비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생식과 장좌불와 등 가행정진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상원사를 바로 오르지 않고 월정사를 들른 것이 잘못이었다. 월정사 주지 탄허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탄허가 일타를 붙들었다.

“일타수좌, 강원교구 교무국장을 맡아주게. 강원도 절을 정화하는데 나를 도와주게. 일타수좌는 율장에 일가견이 있지 않은가.”

그날 밤 일타는 피곤했지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을밤 풀벌레 소리에 마음이 한껏 심란하기도 했지만 나무꾼도 보고 지나치는 썩은 나무 등걸처럼 숨어 중노릇만 하기가 힘들어서였다. 일타는 머릿속으로 오대산보다 더 깊은 청산을 찾아 헤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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