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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 천도재, 시작일 뿐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7.10.29 10:37
  • 댓글 0

수경 스님
화계사 주지

청명청명 가을 하늘마저 눈물겹다. 생명평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노라면 그 모든 것들이 참으로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종교대로 그러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 등 그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더구나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두 기둥을 무참하게 쓰러트리는 불교계의 추악한 모습들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해 관음의 천수천안이 되어야 할 수행자들이 오히려 더 깊은 중병을 앓고 있으니 속인들의 눈에 비치는 불교계의 위상은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아닌가. 마침내 터질 것이 터지고 올 것이 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발로참회뿐이다.

지난 10월 28일 삼각산 화계사에서는 ‘이주 사망노동자를 위한 천도재’를 봉행했다. 이 땅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으며 일만 하다 죽어간 이주 노동자들의 고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였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지난 10여 년간 죽어간 이주 노동자는 3000여명이나 된다. 산업재해 보상은커녕 노예처럼 일만 하다 죽어간 이주 노동자들, 그들은 지구인 혹은 세계시민으로서의 환대는 고사하고 죽거나 차별당하거나 다치거나 추방되거나 불법체류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토끼몰이식 사냥’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이번의 천도재는 피부색과 얼굴 생김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한 채 인권을 유린당하면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과 우리 사회가 저지른 그간의 과오를 참회하려는 불자들이 함께 손을 맞잡아 치름으로써 그 의미가 한층 더 깊고도 넓었다.

스님과 불자, 이웃 종교 지도자들이 정성스레 봉행한 이주 사망 노동자를 위한 천도재는 단순한 천도의식이 아니다. 이 땅에 일하러 온 이주 노동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행한 온갖 차별과 학대, 그로 인한 고통과 분노와 갈등에 대해 머리 숙여 참회하고 앞으로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아 주자는 발원의 장이었다.

이제는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의 동반자로서 공생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할 때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우리 이웃으로 끌어안기 위한 그 첫 번째 실천 과제는 열린 마음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문화와 언어,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각 사찰과 불교 기관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어 각국의 문화와 언어 등을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웃사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실천 과제로는 각 단위 사찰이나 불교계 NGO, 교계 지원 단체들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을 지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한 단체나 개인, 사찰에서 이주 노동자 문제를 안고 해결해 나가기에는 지난하고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찰과 개인, 단체 사이에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뒷받침은 결국 종단의 몫이다.

종단에서 이주 노동자를 위한 지원에 솔선수범한다면 어느 개인, 어느 사찰 차원의 역량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을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정책과 시스템을 마련하고 전국적인 조직망을 구축하는 일은 종단의 체계적인 후원과 실천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정 무정의 그 모든 것들이 한 뿌리이자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일지니, 불교계가 먼저 발로참회의 자세로 초발심을 다잡아야만 한다. 위기에 처한 불교계 모두가 백척간두 진일보의 대각성과 초발심으로 돌아가 상구보리와 더불어 하화중생의 두 기둥을 다시 굳건히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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