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신심이 일궈낸 지상의 정토여,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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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보신문
  • 승인 2007.10.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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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의 마지막 정토 부탄을 가다
下 부탄의 수도 팀푸
<사진설명>부탄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타쉬초 드 종. 이곳에는 국왕의 집무실을 비롯해 정부의 주요 기관이 모여있다.

오전 7시. 밤새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온 아침 햇살이 창문 가득 밀려 들어왔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 탓인지 전날 분주한 일정으로 지쳤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빵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나서자 가이드 까르마 왕촉 씨는 벌써부터 채비를 마치고 반갑게 맞았다.

그는 오늘도 회색의 전통 의상을 두르고 있었다. 고(gho)라고 불리는 이 전통의상은 남녀의 구분이 뚜렷한데, 재미난 것은 여성은 긴 바지를 입는 반면 남성은 오히려 짧은 치마를 두른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두루마기를 걸친 것 같고 미니스커트 같기도 한 이 전통의상은 서서 용변을 봐야 하는 남자들이 입기엔 조금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모든 부탄인들은 외출을 할 때면 늘 이 옷을 입어야만 한다. 정부에서 의무적으로 전통의상을 입도록 법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경찰서에 잡혀가 구류를 살거나 한달 생활비 상당의 벌금을 내야한다. 지나칠 정도지만 ‘자기의 것’을 지키려는 부탄인들의 열정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부탄 교육비, 전액 정부서 지원

다음 목적지는 파로에서 60km 남짓 떨어진 부탄의 수도 팀푸였다. 넓게 트인 우리네 고속도로라면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리지만, 빨래판처럼 울퉁불퉁한 길인지라 2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더구나 천 길 낭떠러지를 깎아 만든 길이라 산사태로 간혹 길이 끊기는 경우도 있어 도착 시간을 예상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가방을 메고 학교를 향하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간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수십 리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가는 어린학생들의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가득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만큼은 아니더라도 부탄에서도 교육열이 높다고 한다. 부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인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을 나와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비를 국가에서 전액 지원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가계의 큰 부담인 사교육비가 별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여기에 원한다면 대학 등록금뿐 아니라, 해외유학도 정부에서 지원한다고 하니 흔히 부탄을 두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고 했던 말이 한편으론 이해가 됐다.

부탄엔 ‘짝퉁’이 없다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구불구불한 절벽 길을 벗어나자 부탄의 수도 팀푸 시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으레 한 나라의 수도라면 현대식 고층 건물이 한두 개가 있기 마련이지만 팀푸에는 고층 건물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다만 틀로 찍어낸 듯 동일한 크기의 3층 건물이 성냥갑을 세워 놓은 듯 가지런히 정돈돼 도심임을 상징했다.

시내로 들어서자 넘쳐나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복잡한 여느 나라의 수도와 달리 팀푸는 그 흔한 신호등 하나 없는 조용한 도시였다. 워낙 인구가 적은 탓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까닭에 낮에는 도시자체가 텅 비어 있기 때문이란다.

잘 정돈된 도심을 가로질러 부탄의 전통 공예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민속공예학교를 찾았다. 민속공예학교는 탱화를 비롯해 목공예, 금속공예, 각종 수공예 등 부탄인들이 수세기 동안 간직해 온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이다. 7년 과정의 교육을 이수하면 정부로부터 자격증을 얻게 되는데, 부탄에서는 이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전통 공예품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 때문에 부탄에서는 ‘짝퉁’이 없다. 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그 공예품은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는 진품이라고 했다. 현대식 기계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만 워낙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라 부탄인들은 전통 공예품을 일일이 손으로 빚어낸다고 했다.

어두컴컴한 교실 내부로 들어서자 푸른색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견습 장인’들이 부탄 전통공예품을 만드느라 열기가 뜨겁다. 민속공예학교는 자국의 전통문화를 자랑하기 위해 부탄 정부에서 장려하는 관광코스로 유명하다. 이런 까닭에 그 동안 수많은 관광객들을 봐 왔던 탓인지 낯선 이방인이 들어와도 누구하나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만드는 작품에 정성을 다할 뿐이다. 화려한 문양의 용, 정교한 만다라,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등. 말이 ‘견습 장인’이지 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수준급이다.

<사진설명>민속공예학교에서 부탄의 전통 공예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현재 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모두 300여명. 해마다 입학을 원하는 학생이 늘어 내년에는 증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대 서양 문물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전통문화를 기피하는 우리와 달리 자국의 것을 지키기 위해 열정을 쏟고 있는 부탄 청소년들의 눈매가 사뭇 진지하다.

민속공예학교를 빠져 나와 부탄의 3대왕 지그메도지 왕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메모리얼 쵸르텐(Memorial Chorten)으로 향했다. 1974년 건립된 메모리얼 쵸르텐은 부탄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3대 왕 지그메도지 왕축이 돌연 병으로 죽자 불심이 깊었던 그의 어머니가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원래 부탄에서 쵸르텐은 고승들의 사리를 봉안하는 탑이지만 메모리얼 쵸르텐에는 사리 대신 왕의 사진과 그의 업적을 기록한 기록물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특히 메모리얼 쵸르텐은 팀푸를 대표하는 신행 공간으로 유명한데, 이 탑을 돌며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면 죄를 씻고 좋은 업보를 받게 된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로 인해 매일같이 수십 명의 불자들이 손에 염주를 들고 돌고 있다고 한다.

탑의 중심부에 이르자 가이드의 설명대로 많은 불자들이 손에 염주를 들고 탑 주위를 돌고 있었다. 부탄 불자들이 사용하는 염주는 우리의 것과 조금 다른데 108개의 염주 알을 묶은 줄 중간 중간에 10개의 작은 염주알이 별도로 묶여져 있다. 자신이 염주를 몇 번 돌렸는가를 표시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탑 1바퀴를 돌때 마다 108염주 중 하나를 세고, 다시 108염주 한 묶음을 다 돌리면 작은 염주 하나에 표시를 해두는 셈이다. 부탄인들은 자신이 지은 죄의 경중에 따라 스스로 염주를 돌리는 횟수를 정하는데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의 경우 최소 100만 번의 염주를 돌려야 그 업보가 사라진다고 믿는다. 108염주 1번을 돌리는 데 최소 2시간은 걸린다고 하니 평생을 돌려도 그 업보를 다할 수 있을까. 늘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부탄인들의 순박한 불심이 만들어 낸 진풍경이리라.

메모리얼 쵸르텐을 돌아 나와 마지막 순례지 타쉬초 드 종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타쉬초 드 종은 부탄의 국왕의 집무실을 비롯해 정부의 주요기관이 모여 있을 뿐 아니라 부탄의 정신적 지주인 법왕이 거주하는 곳으로 부탄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타쉬초 드 종, 정부종합청사

<사진설명>부탄의 3대 왕 지그메도지 왕축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메모리얼 쵸르텐.

타쉬초 드 종은 국가의 중대한 업무를 처리하는 정부종합청사와 같은 곳이라 관광객들은 일과가 마무리되는 오후 6시 이후에나 관람이 가능하다고 했다. 때문에 해가 한창 서쪽으로 기울고 나서야 비로소 타시초 드 종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다.

부탄의 여느 종과 마찬가지로 타쉬초 드 종도 사찰과 함께 있는 곳이라 붉은 가사를 두른 스님들로 가득했다. 천진난만한 동자승의 해맑은 미소가 낯선 환경에 긴장한 이방인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녹여준다. 일행들과 기념촬영을 끝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던 부탄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신비의 나라로 안내했던 드룩 항공에 몸을 실었다. 짧은 일정 탓에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삭히려 애써 눈을 감았다. 순간 오염되지 않은 환경, 경이로운 풍경과 건축물들, 가난하지만 언제나 행복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스쳐지나간다. 현대문명에 물들지 않은 해맑은 부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군더더기 없이 맑기만 한 부탄 불교의 골수에 닿아 있는 듯 했다.
 
팀푸=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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