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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국 지식인의 얄팍한 감상일까

기자명 법보신문

『미의 법문』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 이학사

책읽기 모임에서 책을 선정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완독할 때까지 나는 벗들의 눈치를 봅니다. 그런데 이번의 이 책, 야나기 무네요시의 『미의 법문』처럼, 책 한 권을 읽어가면서 벗들의 매서운 감상과 혹평과 호평 속에서 이토록 오만가지 상념에 사로잡힐 때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미의 법문』은 그 중에서 삶의 종점에 막 다다른 야나기 무네요시가 병상에 누워 그간 자신이 열광적으로 수집하고 예찬했던 작품들을 돌아보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매듭을 짓는 글 네 편을 모은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정작 책 속에는 고차원의 종교적 경지가 거침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말과 생각의 길마저 끊어진 궁극적 차원이 조선 막사발을 비롯한 서민들의 ‘물건’을 통해서 장황하게 말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일본 사람입니다. 출생연대가 말해주듯 그의 가장 왕성했던 생애는 일제강점기입니다. 그는 조선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만나는 거리의 온갖 건축물, 사찰, 청자와 백자, 미술품, 산천에 대해 나름대로의 미적 감각을 풀어내며 찬사의 글을 썼습니다.

한국의 일부 학자와 예술가들은 그의 조선예찬에 한없이 흠모를 품어왔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그의 조선 사랑은 굶주린 자의 심정을 절대로 알 수 없는 배부른 자의 얄팍한 감상이요, 심지어는 일본의 조선강제점령을 합리화하기까지 한 이중적인 인물이라는 매운 질타가 나오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이란 책까지 새롭게 나온 터에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건만 책을 선정한 ‘죄’를 자처하여 뒤집어쓴 나는 일방적으로 저자를 옹호하기에 바빴습니다. 과연 책을 읽어가던 벗들의 표정도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벗들에게서는 참으로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졌습니다.

“이거 너무 일본풍 아닌가?”
“나는 이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조선에서는 버려도 아깝지 않았던 것이 어쩌다 일본 놈 손에 들어가더니….”
“그냥 담담하게 읽어가니 이 사람이 뭘 말하려는지 알 것 같다.”
“미학자의 관점이라고 생각하자.”
“참 좋은 책이다. 자칫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미의 법문』은 내게 아주 참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자성이 빈 것(空)의 차원을 과연 객관적으로 말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나는 미추(美醜)의 차별이 끊어진 극락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언제쯤 일본과 한국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서 두 나라 사람들은 순수하게 미적, 예술적, 종교적, 인간적 차원에서 소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독자가 자신의 선입견을 비우고 저자의 생각을 따라 들어가는 것과, 자신의 생각 맞은편에 저자를 불러 세우는 것, 이 중 어느 것이 제대로 책을 읽는 행위인가’는 한참은 고민해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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