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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7

기자명 법보신문

지관이문 함께 수행할 때 장애도 없다

지난번에 이어 관을 닦는 네 가지 방법 가운데 두 번째인 대비관(大悲觀)으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② 대비관 : 일체의 중생이 무시의 때로부터 모두 무명의 훈습을 받는다. 이 훈습에 의해 마음이 생멸케 되어 이미 모든 심신의 큰 고통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곧 한량없는 핍박이 있으며, 미래에 받을 고통도 한계가 없어서 버리고 여의기가 어렵건만 이를 깨닫지 못하니 중생이 이처럼 매우 가련한 것임을 늘 생각해야 한다.

③ 서원관(誓願觀) : 이러한 생각을 하고 곧 용맹스럽게 다음과 같이 대(大) 서원을 세워야 한다. 즉 원컨대 내 마음으로 하여금 분별을 떠나게 함으로써 시방에 두루하여 일체의 모든 선한 공덕을 수행케 하며, 미래가 다하도록 한량없는 방편으로 일체의 고뇌하는 중생을 구원하여 그들에게 열반·제일의락(第一義樂)을 얻도록 바라는 것이다.

④ 정진관(精進觀) : 이러한 원을 일으키기 때문에 모든 때, 모든 곳에 있는 여러 선을 자기의 능력에 따라 버리지 않고 수학하며 마음에 게을리 함이 없는 것이다.

오직 앉았을 때, 지(止)에 전념하는 외에는 나머지 일체에서 다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관찰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와 관을 각기 따로 밝혔고 다음은 지관을 합해서 닦는 것을 밝힌다.

행하거나 머물 때, 눕거나 일어날 때든 어느 때든지 항상 지관을 함께 행해야 하는데, 이 수행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이치에 따라 지관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니 모든 법의 자성이 나지 않음을 생각하나 또한 인연으로 화합한 선악의 업과 고락 등의 과보가 빠뜨려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비유문(非有門)에 의해 지행을 닦는 것과 비무문(非無門)에 의해 관행을 닦는 것이니, 실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모든 법을 건립하는 것이므로 지행을 버리지 않고 관행을 닦을 수 있다.

인연의 선악의 업보를 생각하나 또한 곧 본성은 얻을 수 없음을 생각하는 것이니, 이는 가명(假名)을 파괴하지 않은 채로 실상을 따르기 때문에 관행을 그만두지 않고 지문(止門)에 들어갈 수 있다.

둘째, 장애에 대하여 지관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니 ① 만약 지를 닦는다면 두 가지 허물을 여읜다. ㉠ 범부가 집착한 인법상(人法相)을 없애며, ㉡ 이승들의 오음(五陰)이 있다고 보아 고통을 두려워하는 겁약한 소견을 다스린다.

② 만약 관을 닦는다면 역시 두 가지 허물을 여읜다. ㉠ 이승의 협렬(狹劣)한 마음을 없애어 널리 중생들을 살펴 대비를 일으키게 한다. ㉡ 범부들이 무상을 보지 아니하여 분발하여 도에 나아감을 게을리 하고 선근을 닦지 않으므로 이를 다스린다.

이 지관 이문은 함께 수행해야 하며 또한 두 가지 장애를 아울러 대치하여 쌍으로 없애야 한다. 지와 관의 두 가지 수행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은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한 날개라도 없다면 허공을 나는 힘이 없을 것이오, 두 바퀴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운재(運載)의 공능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신론』에서는 수행자의 물러남이 없는 방편을 밝힌다. 즉 이 사바세계에 머무름에 스스로 항상 부처님을 만나 친히 받들어 공양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신심은 성취하기 어렵다’고 걱정하면서 뜻이 퇴전하려고 하는 이는 여래가 수승한 방편으로 신심을 섭호함을 알아야 한다.

즉 뜻을 오로지 하여 부처를 생각한 인연으로 원에 따라 타방불토에 나게 되어 항상 부처를 친히 보아서 영원히 악도를 여의게 된다.

이는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염하고 그가 닦은 선근으로 저 세계에 왕생하게 되며, 부처를 친히 보기 때문에 끝내 퇴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권수이익분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여래의 매우 깊은 경계에 대해 바른 믿음을 내어서 비방을 멀리 여의고 대승도에 들고자 한다면, 이 논을 가지고 사량·수습함으로써 마침내 무상도에 이를 수 있다. 모든 여래가 이 법에 의해 열반을 얻으며, 모든 보살이 이에 의해 수행하여 불지(佛智)에 들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의해 정신(淨信)을 이루게 됨으로 우리 중생도 이 법을 부지런히 수학해야 할 것이다.
 
은정희 전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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