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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정해져 있는 건가요

기자명 법보신문

본질 꿰뚫으면 불변의 실체는 없어
온전한 자유는 변화 수용할 때 가능

인생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사는 건지요. 아니면 본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요. 알고 싶습니다.

드러난 현상을 보면 인생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본질을 보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드러난 현상은 있는 것 같아서 ‘색(色)’이라 부르고 그 근본으로 돌아가서 보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공(空)’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의식의 흐름은 내가 맘대로 조절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김치를 먹으면서 “맛없어라” 이런다고 맛이 없어지고 버터를 먹으면서 “맛있어라” 한다고 맛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냄새를 맡으면 벌써 맛있는 것, 맛없는 것 구분을 합니다. 이것은 내 의지로 조절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어렸을 때부터 맛에 대한 업이 형성되어 있고 형성된 업의 흐름이 내 의지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조절이 안 되는 것이지요.

우리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그 업(業·까르마)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그 업으로부터 좋고, 싫음이 일어납니다. 좋고 싫음이 본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좋으면 해야 하고 싫으면 안 하게 되는 것이 내가 업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좋아도 능히 안 할 수 있고, 싫어도 능히 할 수 있다면 인생이 내 의지대로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그렇게 안 합니다. 좋으면 반드시 해야 하고 싫으면 죽어도 안 하고 싶어 합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할 만큼 업의 흐름에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으로 돌아가서 보면 그 업마저도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본질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정해진 것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물이 증발해서 수증기가 된다고 할 때 겉으로 보이는 물질의 상태는 변한 것입니다. 얼음은 항상 얼음으로 있고 물은 항상 물로 있고 수증기는 항상 수증기로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고 온도의 변화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태가 변해도 그 속의 물 분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끓이고 얼리고 아무리 해 봐야 물 분자가 바뀐 것은 아니지요.

그러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원래 본질은 있다’고 착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화학변화가 일어나면 그 물 분자마저도 변해 버립니다. 즉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날아가 버립니다. 그럼 화학변화에서 원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것인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핵 변화가 일어나면 그 원자도 바뀝니다. 그래서 본질을 꿰뚫어 보면 ‘불변하는 실체는 없다. 즉 정해진 운명이라고 할 것은 없다’라는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나는 현상만을 보고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착각하고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삶의 흐름에서 그냥 휩쓸리는 대로 살아가면 영원히 속박 받는 존재가 됩니다. 삶의 본질을 알아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변화시킬 것은 변화시키면 업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운명이 정해져 있으니 내가 노력해도 변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 스스로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좋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 것은 주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주인은 능히 어떤 일이든지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면 “운명이 정해져 있다, 정해져 있지 않다.”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이 주어지면 주어지는 대로 기꺼이 받아서 하는 것이 주인 된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렇게 알고 어떤 일이든 내가 결정해서 선택하면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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