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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완전한 광복에 심신 바친 민족지도자·끝

기자명 법보신문

해방 후 좌우합작운동 앞장
중도적 삶 일관…69년 입적

성숙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한 이후 중경의 임시정부가 상해로 옮기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같은해 12월 1일 전북 옥구비행장을 통해 입국했다.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홍진, 조성환, 신익희, 조소앙 등과 함께 입국한 성숙은 다음날 서울에 도착했다. 이후 좌우합작을 주창하며 몽양 여윤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하고 중앙위원에 뽑힌 성숙은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운동을 펼치는데 앞장섰다.

이후 1955년 조봉암 등과 접촉하여 진보당 추진위원회에도 관여했으나, 훗날 5·16 군사반란 이후 이른바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성숙은 57년 11월 16일 근로인민당 재건사건이 불거지면서 근로인민당재건 당 총책의 혐의를 받아 구속되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진행된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성숙은 이어 1960년 4·19혁명 직후에 한국정당사상 처음으로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민주사회주의의 실현을 기치로 내걸고 만들어진 사회대중당 창당을 주도하고 정치위원으로 피선됐다. 이후 혁신우파임을 자처하는 통일사회당이 탄생되고 성숙은 여기서 정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민대중이 참여하는 민주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61년 2월 혁신적인 제 정당과 사회단체가 참여해 결성한 민자통중앙협의회의 의장단이 되어 60년대 초반 혁신계를 이끌었다.

성숙은 60년대 중반 선명야당의 기치를 들고 결성한 신민당의 전신 신한당 창당에 참여하고, 신한당 정무위원으로 재야 통합야당인 신민당 창당에 참여해 운영위원과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성숙은 그러나 말년에 가난과 궁핍으로 말미암아 크게 고통을 받았고, 결국 가까운 지인들의 도움으로 방 한 칸을 마련하여 피우정이라 이름 붙이고 말년을 보내다가 1969년 4월 12일 오전 10시 만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성숙은 출가 이후 입적할 때까지 단 한번도 불의에 굴하지 않았고,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등과도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용문사로 출가하고 봉선사에서 수행했던 성숙은 일찍이 월초 화상으로부터 중도의 도리를 배워 알고 있었기에 극단적인 좌우에 휩싸이지 않았고 오직 조국과 민족을 구하려는 마음 하나만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새겨진 구국의 결단은 결국 그를 한 평생 조국의 완전한 광복을 위해 심신을 다 바친 민족지도자로 살게 했다.

성숙의 공적은 1980년 이후 인정을 받아 82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sjs88@beopbo.com 

참고자료

운암 김성숙(태허 스님) 일대기를 연재하면서 『혁명가들의 항일회상』,『아리랑』,『운허 스님의 크신 발자취』,『고승열전-운허 큰스님』,『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등의 서적. 그리고 김재명 선생이 쓴 「민족해방과 통일 위해 바친 자의 묘비명」을 비롯해 「일제하 불교계의 항일운동」,「재중 항일민족협동전선운동과 김성숙」,「1930년대 중산대학과 한국독립운동」,「1930-40년대 전반 중국 관내에서의 민족통일전선운동」,「일제하 불교계의 항일민족운동」,「제휴와 배제의 이중주-한국현대사에서 민족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좌우 대립」,「독립운동사 제2권, 제4권, 제7권, 제8권」,「독립운동사자료집 제5집, 제13집, 제14집」 등을 참고자료로 이용했다. 또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을 비롯해 운암 김성숙이 봉선사에서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했던 지월(이순재) 스님의 친아들 일우 스님, 조카 김정욱 씨와 손자 김덕천 씨 그리고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 민성진 회장이 도움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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