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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곁의 지목행족]19 연꽃마을 이사장 각 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 노인복지의 서막 연 이 시대의 원력보살

불교를 불효(不孝)의 종교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부모은중경』을 비롯해 효를 설한 경전들이 여럿 있지만 위작의 시비는 항상 끊이지 않았다. 사실 부모, 형제, 친구 할 것 없이 주변 인연을 단칼에 자르고 입산 출가해야 하는 수행자의 삶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부모를 극진히 봉양해야 하는 효의 이미지와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연꽃마을 이사장 각현 스님. 스님이 교계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불교에서 말하는 효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스님은 아름다운 삶을 통해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님은 지난 1990년 연꽃마을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 근 18년 동안을 노인복지를 통한 ‘효의 사회화 운동’에 매진해 왔다. 화두처럼 매 시간 효만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붙들고 늘어지다 보니 어느덧 노인 요양원과 양로원, 병원 등 47개소에 이르는 복지시설들이 마치 신장처럼 스님을 외호하고 있다.

스님이 말하는 효는 간단하다. 내 부모를 모시는 그 정성을 모든 인연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주변의 인연들을 버리고 출가한 부처님이 깨달음 이후 오히려 광대무변한 중생을 품에 안았듯 스님은 내 부모 형제라는 소아적인 효의 관념을 벗어나, 모든 노인을 부모로 받드는 대승적 효의 실천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출가를 하면 부모와 인연을 접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치열한 수행을 위해 번잡한 반연을 버려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효의 본질은 자비심입니다. 출가로 자비심마저 끊어져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 모두 억겁의 윤회에서 부모, 형제 아닌 이가 누가 있었을까요. 이런 의미에서 출가는 효의 확장입니다. 혈연에 갇힌 이기적 효의 껍질을 걷어내고 세월에 육신이 스러져가는 모든 이들을 나의 부모로 삼는 것.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효의 의미가 되겠지요.”

일에는 시절인연이 있듯 스님이 처음부터 노인복지를 통한 효의 사회화에 개안을 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교계 노인복지의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상찬을 받고 있지만 스님의 삶은 너무나 평범했다. 참선하고 염불하고 간경하고, 또 사찰의 주지 소임을 맡아 절 살림을 꾸리는 그야말로 누가 봐도 평이한(?) 수행자의 삶이었다. 그러나 1978년. 늦은 공부를 더해 볼 욕심으로 건너 간 홍콩에서 스님은 마치 묵직한 주장자로 어깨를 맞은 것같은 남다른 깨달음을 얻게 됐다. 자비심으로 가득 찬 홍콩 불교의 진면을 보면서 우리 불교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연꽃마을로 첫 스타트

“청계사 주지를 맡으며 매일 일에 시달렸어요. 어떤 날은 온 종일 돈을 세기도 하고. 진저리가 나데요. 이게 수행자의 삶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홍콩으로 건너갔지요. 늦은 공부나 해 볼까하고 홍콩의 중문대학에 적을 뒀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홍콩의 사찰 구조가 참 특이해요. 앞에는 복지시설을 크게 지어놓고 그 뒤에 부속 건물로 법당과 요사를 조그맣게 지어요. 뒤늦게 알았지만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점령국 영국의 종교 정책을 비껴가기 위한 방편이더군요. 하지만 오늘날 홍콩 불교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었어요. 도량을 국민의 복지를 위한 공간으로, 자비 실천의 장으로 아낌없이 개방하는 모습. 그 모습에서 자비와 보살의 가르침인 대승불교의 진면을 보게 됐지요.”

‘孝의 사회화’로 포교영역 확대

사찰이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듯 사찰에서 염불하고 참선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량은 사부대중 모두의 공간이 돼야 하고, 더불어 그 곳에는 넘치는 자비와 사랑이 가득해야 한다. 스님은 홍콩에서 홀로 눈물어린 참회와 반성을 거듭했다. 그리고 4년간의 짧은 홍콩 체류기간을 끝내고 귀국하자마자 동국대 행정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복지학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가 1984년. 그러나 당시에 결심했던 복지에 대한 꿈은 그러고도 수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발아를 할 수 있었다. 1990년 연꽃마을 이사장에 취임한 것이다. 사실상 교계 복지 사업의 서막이었다.

“1990년 4월 법주사 청동미륵불의 봉안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부주지로 실무를 맡았는데, 능력 밖의 불사를 끝내고 보니 감격에 홀로 눈물을 흘렸지요.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기처럼 부처님의 가피가 내리더군요. 복지법인 연꽃마을과의 인연이지요. 당시 성수 큰스님께서 복지법인 연꽃마을을 설립하고 용인에 노인요양원을 짓기 위한 부지까지 마련한 상태였는데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아 법인 차제가 취소될 처지였어요. 큰스님께서 부랴부랴 저를 부른 것도 이런 연유였지요.”

법인 사무실은 그래도 서울에 있어야지 싶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은 없었다. 사무실을 얻기 위한 전세보증금 2000만원 마련도 여의치 않았다. 무슨 도깨비 방망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궁색한 처지의 스님이 노인요양원 건립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마치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피가 스님을 비껴가지 않았다. 법인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머리가 터질 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모 신문사 문화부장이 우연히 사무실을 찾았다.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불사 과정에서 좋은 인연을 맺었던 기자였다.

“불교계에서 사회복지에 첫발을 내딛는데 도와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다른 신문사 기자들까지 모두 불러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했지요. 다음날 신문을 보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구요. 신문마다 노인요양원 불사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났던 것이지요. 이튿날부터 후원자가 몰려들고 후원금이 밀려들기 시작하더군요.”

생각해 보면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1200명 넘는 이들이 후원금을 보내왔고 불과 2달 만에 진성 후원자가 10000명을 넘어섰다. 당시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음성의 꽃동네가 전국적으로 복지 열풍을 일으키고 있던 시절. 이런 때에 연꽃마을의 노인요양원 건립은 불자들의 자긍심이기도 했다. 법회 때 후원 전단지를 돌리겠다는 단체들도 줄을 이었다.

드디어 불교계에도 복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일기 시작한 것이다. 스님은 370여 평에 이르는 용인 노인요양원 건립으로 자신감을 얻자, 노인복지에 그야말로 온 몸을 던져버렸다. 요양원을 늘리고, 병원을 확충하고,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프로그램을 다양화 하고, 노인들의 빈한(貧寒)한 가슴을 채워주기 위해 십수년을 앞만 보고 달렸다. 연꽃마을 산하 47개소에 이르는 시설들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들이다. 특히 지난 2002년 32억 원을 들여 완공한 안성 감로당은 노인복지의 선두주자인 일본에서도 부러워 할 만큼 뛰어난 시설과 서비스로 ‘꿈의 요양원’으로 불리고 있다.

허나 이런 장대한 결과에도 스님의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시리기만 하다. 사찰들의 태반이 여전히 복지를 외면하고 복지에 매진하는 스님들을 삼류 수행자로 매도하는 것이 종단의 현실 때문이다. 이런 두꺼운 장벽을 보노라면 갈 길은 조금도 줄지 않았음을 절감하기도 한다.

경주에 실버타운 건립할 터

“뜻만 있으면 사찰에서 할 수 있는 복지 서비스는 많아요.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할 수 있고, 10인 이하의 노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노인공동생활가정도 꾸릴 수 있지요. 꼭 복지관이나 양로원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연꽃마을의 용솟음치는 힘은 20000여명의 후원자에게서 비롯된다. 한때 30000명의 후원자가 있었지만 IMF의 여파로 10000여명까지 급락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꾸준한 노력으로 조금씩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스님은 더 이상 시설을 확충하거나, 짓기 않겠다고 밝혔다. 시설을 짓거나 위탁받는데 들이는 공력을 이제는 국민들의 인식변화에 쏟겠다는 뜻이다. ‘효의 사회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또 연꽃마을을 이용하는 노인들을 불자로 만드는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복지가 제자리를 잡으려면 국민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연꽃마을 시설들의 노인들이 잘 먹고 잘 입는 모습을 보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꽃마을은 부자니까 지원할 필요가 없다나요. 그러면서 미인가 시설로 발길을 돌립니다. 이곳은 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을 불쌍한 상태로 그대로 두거든요. 그런데 이런 모습이 불쌍하다고 후원을 합니다. 인가를 받지 않은 복지시설은 불법입니다. 그래서 미인가 시설에서 노인들에 대한 학대 등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쌍하다고 도와줘요.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이 정도니 걱정이 아닐 수 없어요.”

다행히 스님에게는 최근 좋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경기복지미래재단 초대 이사장에 선임된 데 이어 최근에는 경주에 있는 한 독지가로부터 5000평의 땅을 기증받았다. 그래서 스님의 하루는 더욱 바빠졌다. 스님은 경주에 불교계를 대표하는 실버타운을 지어 보답할 생각이다. 천문학적인 건설비용이 여전히 화두이긴 하다. 그러나 이 또한 부처님의 가피가 해결해 주지 않겠는가. 031)898-1486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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