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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에 감사 … 포교는 덤이죠”

기자명 법보신문

서울 향천선원 유 혜 림 법사

포교의 길은 참 험하다. 마치 가시밭을 눈으로 보면서도 걸어가야 하는 길과 같다. 내 모든 것을 바쳐야 조그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길이 포교의 길이라 할 수 있으리라. 특히 재가자들의 포교는 더욱 어렵다. 생업과 포교의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갈등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겠다는 원력 하나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순복음 주보 인쇄하며 문서포교 결심

그 순수한 원력으로 ‘모범사례’라 손꼽히는 재가자들도 적지 않다. 서울 장충동에 손수 선원을 열고 ‘문서포교’와 ‘어린이포교’를 실천하며 사는 유혜림 법사도 그런 모범사례다.

유혜림 법사는 본래 인쇄업자였다. 1984년 ‘광진문화사’라는 인쇄업소를 설립하고 중노동에 가깝다는 인쇄업계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인쇄업은 대부분 남자들의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당연히 여자인 유 법사의 존재는 인쇄업계에서도 희귀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본래 불교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나도 폼 잡고 여유롭게 살고 싶은데, 그게 되나요? 시간에 쫓기다보니 마음도 쫓기게 되고…. 늘 쪼들리며 사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렇지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죠. 불자들이라면 잘 아실거예요. 절간 담벼락들이 얼마나 높은지. 불교 공부를 해볼까 싶어 조계사를 찾았다가 뒤돌아 나온 게 한 두 번이 아니었 거든요. 당시만 해도 조계사에 신도들은 많았지만 처음 찾아가는 사람이 법당 문을 열고 들어가기에는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누군가 반겨주고 맞아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더 일찍 불교를 접할 수 있었겠죠.”

몇 번씩 마음을 냈다가도 다시 갈무리했던 것이 불교였다. 그런데 인쇄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님이 달력을 만들겠다고 그를 찾아왔다. 그 스님은 당시 예산 향천사 주지를 맡고 있던 경담 스님이었다. 경담 스님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는 불연을 맺게 됐다. 유 법사는 스님을 통해 그동안 애써 눌러왔던 갈증을 해소하기 시작했다.

스님은 유 법사에게 경전과 불서의 제작을 수시로 의뢰해왔다. 경전과 불서를 만들며 한 번씩 열어 찾아본 글귀들은 유 법사에게 가뭄에 단 비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유 법사는 한 달에 한 두 번씩 직접 차를 몰고 스님이 있는 예산까지 찾아갔다. 그렇게 지내기를 몇 년. 마음의 눈이 열리는 단 맛에 그는 지치는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24시간이 모자란 인쇄업을 하며 그렇게 차를 몰아댔다.

그러다 경담 스님이 미국행을 결정하면서 유 법사는 스님과 맺었던 불연을 더욱 깊은 그릇에 담아보고자 비로소 조계사 문턱을 넘을 결심을 굳혔다. 처음에는 기초교리반에서 정식으로 불교의 교리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끝없는 궁금증은 그를 불교대학 입학지원서에 서명하게 만들었고 흐르고 흐르다보니 어느덧 조계사 대승불자회 부회장까지 역임하게 됐다. 본인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전생에 쌓아둔 업보가 그랬는지 유 법사는 자꾸만 조계사 대웅전 한 가운데로 다가가고 있었다.

조계사에서는 좋은 기억도 참 많았다. 여의도 제등행렬에 참가해 보현보살도 돼보고, 동대문에서 열린 첫 제등행렬 때는 행렬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마야부인 역할도 맡아봤다. 하지만 1998년, 조계사를 둘러싼 법난 이후 유 법사는 처음 넘었던 그 문턱을 다시 넘어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처님 법에 대한 갈증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더 많은 공부를 위해 이번엔 동국대학교 교문을 넘었다. 대학원을 등록하고 심도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불교 공부의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아쉬움도 진해졌다.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당연히 초심자들을 이끌어줄 힘이 부족하다는 한국불교계의 문제도 눈에 들어왔다.

“스님하고의 인연이 없으면 재가자들이 불교 공부를 시작하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체계적인 공부는 더 힘들죠. 그래서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재가자들이 쉽게 공부할 수 있을까. 포교에 대한 첫 고민을 시작했던 셈이죠.”

그런데 유 법사가 포교에 대한 원력을 내게 된 계기는 또 있다. 이웃종교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본 것이다.

‘오분향’ 발간…향천선원 개원

“시댁을 통해서 순복음교회의 주보를 만들게 됐어요. 정말 엄청나더군요. 처음에는 1만 부를 찍더니, 1년 뒤에는 5만 부를 찍어요. 몇 년 지나고 나니까 50만 부, 그 다음에는 120만 부까지 찍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찍은 주보를 교회 사람들이 일일이 들고 다니면서 나눠줘요. 정말 대단한 원력이죠. 그 모습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쯤 우리 불교계에서도 저런 포교지를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스님들에게 물어봤다. 그러나 보통 되돌아오는 대답은 쉽게 긍정하기 힘들었다.

“귀한 말씀을 어떻게 함부로 길바닥에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유 법사는 만 장을 버리더라도 한 명의 불자가 만들어진다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포교 현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사랑방 공간 하나 만들어서 도반들과 수행이나 할까 했는데, 대학원 시절 인연을 맺게 된 보광 스님이 “제대로 한 번 해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2001년 유 법사는 결국 대각회에 등록을 마치고 ‘향천선원’이라는 이름으로 선원을 개설했다.

그리고 2002년 1월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조그만 주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2003년부터는 ‘오분향’이라는 포교지로 형태를 바꿨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안면 있는 불자들과 주변 사람들, 교도소 등지로 보내기 시작하며 현재 그는 혼자 힘으로 매주 1000부씩 ‘오분향’을 만들고 있다.

재가 구심점 ‘불교회관’ 건립 꿈

내용은 공부를 많이 학자들이나 스님들에게 청탁을 의뢰했다. 절대 자신이 스스로 글을 쓰거나 하지는 않는다. “얕은 알음알이를 가지고 주제넘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운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유 법사는 “언젠가 불교계 방송에서 마련한 토론 프로그램에 나갔더니 전국에서 ‘오분향’을 신청하겠다는 문의가 쇄도하더라”며 “그날이 전국을 대상으로 문서포교 하겠다는 원력이 처음 실현된 날이었다”고 했다. “불자들이 쉽게, 가볍게, 부담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감로수 같은 글귀에 한 명의 불자가 또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아직 그대로 품고 있었다.

유 법사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의 법을 전하며 살고 있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재가자’라는 굴레였다. 한 명의 불자가 선원을 찾게 만들기 위해서는 스님들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주변에서는 “출가하면 쉽게 해결될 일을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는 핀잔도 보냈다. 그러나 유 법사는 “금생에는 유발로 포교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재가자의 입장에서 재가자들이 가장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포교를 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많이 부족해요. 수행도, 포교도, 문서포교도 가야할 길이 아직 구만 리죠. 그래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씩 원하는 목표들을 이룰 수 있겠지요. 제 꿈이요? 향천선원이 자리하고 있는 이 건물을 불교회관으로 만드는 거예요. 불자들이 편히 찾을 수 있는 공간. 참선, 사경, 사불, 염불 가리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부처님 전에 향을 올리는 모습이 진중하다. 그는 매일 향이 아닌 향기 나는 꿈을 부처님 전에 사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정하중 기자 raubon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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