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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불교사]36. 조선불교 조계종의 탄생 과정

기자명 법보신문

전시동원 목적…총독부 묵인 아래 탄생

<사진설명>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사 태고사 건립 공사 광경. 사진제공=민족사.

본사 주지 회의서 선교양종, 조계종으로 개칭

38년 총본사 태고사 건립…현 조계사로 남아

종정 추대 불구…총독부가 주지 임명권 행사

 

일제시대 총독부는 사찰령 체제 아래서 불교계를 31개 본사로 나누어 통제하였다. 총독부가 불교계를 31본사로 분할한 것은 단일한 지도체제 아래서 통일된 목소리를 낼 경우 그것이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모습을 띠게 된다면 대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일제는 분할통치 방식을 도입, 서로간의 충성 경쟁을 유도하여 효율적인 지배를 꾀하였다. 불교계 내부에서는 분열된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통일기관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불교계의 여망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3·1운동 직후 이미 총본사 설립안을 검토하였다.

1920년 사이토 총독이 부임할 당시에 경성에 30본산을 통할하는 총본사를 세우고 중앙집권화를 꾀할 것과 총본사의 관장에는 친일주의자를 세울 것을 구상하였다. 그 후 총독부는 불교계에 통일기관 설립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37년 중일전쟁 도발 이후 이른바 총력전체제로 전환한 이후에 불교계에 통일기관 설립을 종용하였다. 총력전체제란 모든 국민들이 천황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세계 재분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준비하는 체제였다. 그 내용은 단지 자원, 자재, 자금, 노동력을 어떻게 배분하는가 하는 물자조달 체제를 구축하는 것과 함께 사상적으로도 통제책을 강화하여 신속한 명령 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일제는 전쟁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서 1938년 조선에서 구축된 국민정신총동원 체제를 1940년 10월에 국민총력 체제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산업·경제·문화·종교 등 각 방면의 단체를 총망라해서 통합된 단일기구로서 일원적 지도 체제를 확립하였다. 일원적 지도체제 구축은 전쟁 상황의 격화와 함께 모든 부분에서 나타났고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교계의 일원적인 지도체제는 총본사 설립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총본사 설립에 관한 기존의 학설은 조선불교계의 자주성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아가서 총본사 설립은 조선불교계에서 정체성을 수호하려는 노력과 대표기관을 설립하려는 자주적인 의지가 결합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총독부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은 언듯 보기에 식민지 체제하에서 불교계의 자주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긍정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견해는 식민지 지배 세력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지배 권력의 특성은 수탈에 있고, 수탈의 강도는 피지배 세력의 저항의 정도를 일정하게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식민지 권력은 피지배 세력의 저항이 완강하면 일정하게 양보하여 타협하고, 저항이 약하면 원래 의도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독재 정권이 지나치게 강하면 저항세력은 침묵할 수 밖에 없다. 강한 독재에 맞서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숨을 죽이고 기회를 살필 수 밖에 없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하의 파시즘 세력의 독재는 무자비 하였다. 이렇게 무자비한 독재 치하에 국내에서 식민지 피지배 민족의 자주성 관철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식민지 지배 권력이 전쟁수행의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고 본다.

총본사 설립에 관한 논의는 1937년 2월 총독부가 31본사 주지들 앞으로 두 가지 사항에 대하여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시달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두 가지 사항 가운데 첫 번째는 조선불교진흥책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교무원 및 중앙불교전문학교에 대한 개선책이었다. 총독부는 동년 2월 26일과 27일에 이 두 가지 건에 대해서 본사 주지들의 의견을 직접 청취하고자 회의를 개최하였다.

총독부가 31본사 주지회의를 개최한 목적은 총본사의 설립이 불교계 내부의 여망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31본사 주지회의 결과 총본사 건설비와 유지비 40만원을 각 사찰이 분담금으로 나누어 납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종정과 종무총장 그리고 각 부장의 선출방법과 임기를 확정하였다. 총본사의 명칭은 조선불교선교양종총본산 각황사로 하였으며 위치는 경성부 수송정 44번지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 내에 두기로 하였다. 1939년 5월 총본사건설사무소는 총본사의 사명(寺名)을 태고사로 확정하고, 총독부에 인가를 신청하였다.

총본사의 명칭은 종래에 논의가 되어오던 각황사와 태고사 사이에서 태고사로 확정되었다. 총본사의 명칭이 태고사로 확정된 것은 조계종의 법통을 고려 말의 태고화상과 연결시키려 한데서 비롯된 되었다. 총본사 태고사는 1937년 5월에 짓기 시작하여 1938년 10월에 완공되었다. 태고사 건축은 전북 정읍에 있는 보천교의 십일전을 해체한 목재를 사다가 지었으며, 이 건물이 오늘날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조계사 대웅전이다.

총본사가 인가될 즈음에 조선불교총본사설립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런데 그 위원회의 사무소가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에 두어졌고, 위원장은 총독부 학무국장이었다. 2명의 부위원장 가운데 1명은 총독부 사회교육과장이었고, 나머지 1명의 부위원장은 월정사 주지였던 이종욱이었다. 이러한 사실 하나 만으로도 총본사의 설립이 총독부의 구도에 따라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종정에게 종회 의장직을 겸직하도록 한 데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태고사법 제6장 52조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있다.

<사진설명>1941년 4월 23일 총독부령 125호로 제정된 조선불교 조계종 태고사 사법. 사진제공=민족사.

‘총본사에는 중앙 종회를 두고 본사에는 지방 종회를 둔다. 중앙 종회는 종정 및 본사 주지로 조직한다. 중앙 종회 의장은 종정이 되고 종정이 사고가 있을 경우 종회 의원 중에서 가의장(假議長)을 선출한다. 가의장은 연장의 종회원으로 의장의 직무를 대리한다.’ 이처럼 전시 비상체제하에서 총독부는 31본사들을 통괄하면서 시달되는 지침을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는 총본사를 필요로 하였다. 이렇게 신속한 진행에 제동이 걸리면 안되었으므로 종정으로 하여금 종회 의장을 겸하게 하였다.

총본사설립위원회가 조직될 무렵 불교계에서는 종명 개정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1940년 11월 31본사 주지들이 모여서 총본사 건설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종래 조선불교선교양종이라고 사용해 오던 종명을 조선불교 조계종이라고 개정할 것을 결정하고, 태고사 사법과 함께 인가를 신청하였다. 태고사의 인가는 신청한 지 일 년의 세월이 지난 1940년 5월에 확정되었다.

총본사 태고사는 그 후로도 1년여의 세월이 흐른 1941년 4월 23일자로 사찰령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인가되었다. 현행 사찰령시행규칙에는 31본사만 규정되어 있고 총본사에 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찰령시행규칙은 경기도 광주군의 봉은사에 경성부의 태고사를 포함시키는 형태로 개정되었다. 1941년 6월 5일 태고사에서 31본사 주지 회의가 열렸다. 태고사 주지 즉 종정 선거를 실시한 결과 방한암이 당선되었고, 종무총장은 월정사 주지였던 이종욱이 선출되었다.

정무총감은 총본사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1940년 8월 23일 다음과 같은 통첩을 시달하였다. “금년 3월 31일 31본사 주지회의에서 총본사의 기본재산 백만 원을 조성하겠다고 결의하였다. 아직 기금이 마련되지 않은 까닭에 1940년 현재 법정 지가 1,500엔 이상을 소유한 사찰은 소유지가의 1할을 총본사에 무상양여하라”고 지시하였다.

불교계는 이제 총본사, 본사 그리고 말사로 분류되었다. 총독부는 총본사가 전국의 본말사를 통괄·지휘 감독하게 하였다. 태고사는 31본사를 총괄하는 최고 기관임에도 종정에게 31본사 주지의 임면권이라든지, 사찰 재산 처분권을 인가하는 등의 실질적인 권한은 부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은 총독부가 총본사를 설립함으로써 31본사 통제를 원활하게 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김순석(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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