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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곤궁을 견디기

기자명 법보신문

밖으로 구하길 멈추어야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저수지로 목욕을 하러 갔다. 그녀는 아이를 먼저 씻기고 나서 자신도 물속에 몸을 담갔다. 그때 한 야차(夜叉)가 아이를 보고 잡아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여인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다가가 “당신 아기냐?”고 물었다. 그리고 젖을 먹여주고 싶다고 청했다. 여인의 허락에 젖을 물리는 척 하던 야차가 갑자기 아이를 안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는 깜짝 놀라 뒤쫓아 가서 야차를 붙잡았다. 그런데 야차는 갑자기 돌변하여 “이 애는 내 아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둘은 재판관을 찾았다. 재판관은 마당 한가운데 선을 그은 후 두 여인을 마주보게 했다. 그리고 아이의 팔과 다리를 각각 잡게 하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이 선을 중심으로 많이 끌어당긴 사람이 아이의 주인이다.”

여인과 야차는 재판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아이의 비명이 터지면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여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잡고 있던 아이의 다리를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서러움에 겨워 울기 시작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재판관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자, 여러분! 누가 진정 이 아이의 엄마일까요? 한 여인은 아이가 찢기건 말건 상관없었고, 다른 여인은 아이의 고통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것만 봐도 누가 진짜 주인인지 명백해 졌습니다.” 야차는 결국 모든 것을 실토하고 용서를 빌었다. 인도에 내려오는 이 이야기는 솔로몬 왕의 지혜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집단은 개미와 벌이라고 한다. 개미의 예를 들자면, 그들의 존속 비결은 우리가 아는 부지런함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 개미는 전체의 30%만이 밖에 나가 일하고 나머지는 굴속에서 그냥 지낸다. 그러다 밖에 나갔던 개미가 몰살당하는 사태가 생기면 즉시 30%가 투입되고, 또 다시 30%가 투입되는 식이다. 즉 예비 전력의 확보와 조직의 유기적 기능이 그들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하나 둘이겠는가? 그러나 ‘오기(傲氣)’는 곤란하다. 공자는 “군자는 곤궁해도 견디지만, 소인은 궁하면 넘치고 만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고 했다. 개인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전체의 안녕에 기여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7대까지를 염두에 두고 일을 결정한다던가. 우리 같은 자발적인 출가 승단은 더더욱 그렇다. 개인은 일시적이지만 불법은 장구해야하기 때문에 숲을 보지 않고 ‘아이가 찢겨도 개의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새벽공기 같은 승단의 평화를 위해하는 탐욕어린 이는 부처님의 적자(嫡子)가 아니다. 밖으로 구하기를 멈추고 영혼의 고결함에 눈뜨라. 몸부림치다 지쳐 잠든 순례자의 거친 숨소리, 그 아픈 흐느낌이 답(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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