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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열리면 복은 따라온다

기자명 법보신문

안국선원장 수 불 스님

마을에서는 대선 정국이라고 해서 온통 관심이 그쪽으로 집중되어 있는데 잠시라도 불심을 다지는 시간을 갖겠다고 이 자리를 찾은 여러분을 만나니 미래가 밝아 보입니다. 오늘은 ‘간화선 수행과 원력’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깨달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깨달음, 즉 지혜를 완성시킬 수 있는 가치관을 어떻게 열어 가느냐 하는 것이지요.

수행에 앞서 원력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원력은 공덕이 쌓여야 되고 또한 원력이 형성되어야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것인데, 부처님 가르침에 복과 공덕이 있습니다. 복은 형상을 말하고 공덕은 형상 없는 모습을 가르칩니다. 어떻게 하면 형상을 여의고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을 지을까. 이것을 부처님 가르침이나 조사 스님들의 가르침 속에서 찾아 현실 속에서 체험하고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내적인 힘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원력은 절을 크게 짓고 사람을 많이 끌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확인해서 지혜를 증장시키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우선 공부 인연을 찾기 위해 늘 선지식을 가까이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곁에 두어서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면 굉장히 큰 힘이 생긴다는 것을 다 알고 있겠지만, 그 말만 믿고 『금강경』을 공부했을 때는 회의적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강경』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뜻을 찾아가면서 읽어야 합니다. 『금강경』은 선(禪)과 교(敎)의 이해에 따른 가르침이 있고, 때문에 양쪽을 다 소화해서 또 다른 차원으로 넘길 수 있는 큰 힘을 갖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혜안(慧眼)을 가진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묻는 것이 교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금강경』입니다.

그러나 불법(佛法)은 불안(佛眼)과 법안(法眼)을 갖기 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혜안의 어리석음을 갖고 불법을 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설일 것입니다.

불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수행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른 믿음에서 이끄는 수행이 이루어져야 원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공덕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간명합니다. 상대를 간파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나 간략하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습니다. 반면 사리불의 가르침은 아주 논리적입니다. 따라서 화려하고 말도 많아집니다. 우리가 이미 깨달은 분의 상을 높이 세우는 것은 뒤를 쫓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불상을 통해서 또 불교의식을 통해서 열어놓은 것입니다. 불교를 의지하는 수단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불교학이고, 좀 더 보편화시킨 것이 불교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밀하게 나눈 것이 불교인연이지만 그러한 인연과 사상을 배우고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과정일 뿐입니다. 거기에 빠져서 마치 그것이 불교의 전부인양 착각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불교의 어지러움은 그런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는 종교윤리적 개념과 일반윤리 개념을 혼돈하면서 시작된 오류입니다. 사회윤리적 가치관으로 종교윤리의 이상을 보기 때문에 이해가 빗나가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일반윤리 개념에서는 선(善)은 진리이고 악(惡)은 진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적 윤리관에서는 선도 진리이고 악도 진리라고 가르칩니다. 어떤 것도 진리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그렇게 나누는 것이 아니고 어리석음을 지혜로 돌릴 수 있는 힘을 갖고 그 지혜로움까지 끊어낼 수 있는 공부인연을 지었을 때 비로소 완성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탐진치 삼독(三毒)을 제어합니다. 또 삼독이 깨달음을 인연으로 해서 삼학(三學)으로 바뀝니다. 계정혜 삼학은 삼독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삼학까지도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삼학까지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간화선입니다. 조사선은 모든 교적인 이해를 선적인 이해로 거듭나게 합니다. 그 조사선이 지나면서 묵조와 간화선으로 나타났는데, 간화선이 수승한 이유는 승속(僧俗)에 관계없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식들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속에서 정진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간화선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수 없는 연구 끝에 화두(話頭)라는 것이 제시되었습니다. 화두는 공안이고 공안 가운데 말머리에 ‘무’자니 ‘이뭣고’니 ‘판치생모’니 하는 일련의 일들이 화두화 되어서 이것을 의심하게끔 하는 것이 간화선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근원적인 것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게 됩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마음 작용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내 안에 있는 번뇌망상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답답한 상황들이 모여 선지식을 의지하고 묻고 대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간화선이 생활선이라고 하는데 천만의 말입니다. 간화선의 가르침을 통해서 돈오견성한 후에 생활선이 되는 것이지, 돈오견성한 힘도 없이 화두만 들어 의심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활을 합니까. 생활에 집중하면 의심이 깨지고, 의심에 집중하면 생활이 안 되는데요. 하지만 간화선을 통해서 어떤 계기가 되어 지혜로움이 생기면 생활도 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생활과 둘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또 다른 인연에 눈 뜰 수 있도록 하는 가치가 간화선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심은 근원에 대한 의심을 해야 합니다. 아직 근원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자신의 눈을 보고 있느냐’고 하면 ‘내가 내 눈을 어떻게 보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내가 내 눈을 보지 않고서는 다른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내가 내 눈을 봤기 때문에 일체의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성을 보고 있으나, 때묻은 눈으로 보기 때문에 번뇌망상만 들끓고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생사를 벗어나는 가장 수승한 공부가 간화선인데, 무조건 ‘이뭣고’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의심하고 의심 끝에 선지식을 만나 더 큰 의심으로 거듭나거나, 의심이 아니라 집중력을 지녀서 의념 속으로 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곳에 나아가 의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선요』에서는 아주 거친데서 의심에 들어가 미세한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선은 한 생각이 만년을 가도록 의심하려고 하지 않아도 의심이 될 수 있는 활구(活句)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갑갑해야 맑고 고요한 곳에 들어갈 수 있고, 의심을 놓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든지 가서 선지식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간화선은 화두 없이 공부할 수 없고, 화두결택은 선지식과 함께 해야 합니다. 선지식은 믿음의 정도를 봐 가면서 자기의 경계를 볼 수 있게 역경계에 밀어 넣어 주는데, 화두는 그런 입장에서 결택하게 됩니다. 그냥 ‘화두 하나 주십시오’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수행을 통해서 원력이 커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항상 지혜에 눈뜨고 수행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서 결과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포교가 원력이고 원력이 곧 수행이며 수행이 곧 포교입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모습 속에서 거듭날 것이 있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현실에 매달려 복을 비는 분들이 많은데, 지혜로 안목이 열리면 복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우선 삼보에 귀의해서 십악(十惡)을 물리고 십선(十善)을 지녀서 부처님의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금강경』이나 『육조단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아서 수행의 완성을 이룰 수 있는 가치를 지녀야 하며, 수행을 완성할 수 있는 간화선 수행을 해야 합니다. 최상승선의 수행으로 지혜의 눈을 뜰 수 있는 문을 열고 사홍서원 할 수 있는 원력으로 거듭나는 것이 곧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입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부산광역시불교신도회(회장 공병수)가 11월 22일 부산불교신도회관에서 주최한 ‘도심 포교 성공 신화 릴레이 초청대법회’ 다섯 번째 회향 법석에서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이 ‘간화선 수행과 원력’을 주제로 법문한 내용을 요약 게재했다.


수불 스님은

수불 스님은 1975년 범어사에서 지유 스님에게 사미계를, 1977년 범어사에서 고암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제방 선원에서 안거 수행한 스님은 범어사 내원암에서 능가 스님을 시봉했으며, 1989년 부산 안국사 주지를 맡아 안국선원을 개원하고 도심 속 수행도량으로 가꾸어 오다 지난 2005년 부산 남산동에 안국선원을 이전개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스님은 사단법인 불국토 상임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재단법인 불교전도협회 상임이사, 불교언론문화상 대표,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 이사장 겸 선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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