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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된 탑비에서 옛 寺格을 보다

기자명 법보신문

[베일 벗은 천년사찰 북한산 삼천사지] 3.

<사진설명>A지구 발굴 전 전경. 대지국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의 상부 일부만 노출되어 있었을 뿐 나머지 유구는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토사로 매몰되어 있었다.

삼천사지 탑비구역 유적의 발굴조사는 A, B의 2개 지구로 구분하여 실시되었다. 해발고도 342.4m에 위치하는 A지구에서는 대지국사탑비, 대지국사탑비의 귀부와 리수, 부도 지대석과 하대석, 탑비전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A지구에서 서남향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해발고도 302.6m에 해당하는 B지구에서는 법당지(法堂址)로 보이는 건물지가 조사되었다.

발굴 이전 상황을 살펴보면, 탑비구역(A지구)의 경우 대지국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의 상부 일부만 노출되어 있었을 뿐 나머지 유구는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토사로 인해 지표 아래 3~4m 깊이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번 조사로 인해 새로 찾은 탑비전의 경우에도 두터운 토석층(사태로 인한 교란층)에 의해 완전히 매몰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유구 전면에 수령 30~40년 정도의 참나무와 교목들이 자생하고 있었다.

B지구 역시 유구 상면 전체가 수목으로 덮여 있었고 간혹 건물 주초석(柱礎石)으로 보이는 석괴(石塊)와 기단부 일부, 그리고 축대 일부가 노출되어 있어 건물지의 가능성만을 엿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도량 전체가 산사태에 매몰

<사진설명>(왼쪽)A지구 전경. 증취봉 능선 중단부(해발 342.4m) 일단을 정지하여 탑비전지와 대지국사탑비를 세웠다. 대지국사 탑비전지와 탑비 귀부와 이수, 계단지와 배수로 등이 보인다.(오른쪽)B지구 전경. 중앙의 불단 건물지와 기단석 및 계단지가 확인되며 좌ㆍ우에 불단 건물지보다 늦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들이 보인다.

A지구에 있는 대지국사탑비 귀부의 크기는 길이 270㎝, 너비 240㎝, 높이 138㎝이며 조립질(粗粒質) 화강암을 사용했고, 이수의 크기는 길이 185㎝, 너비 55㎝, 폭 80㎝인데 세립질(細粒質) 화강암을 이용하였다. 귀부는 용의 머리와 흡사하게 표현이 되어 있으며, 배면에 육각형의 귀갑문이 베풀어져 있는데 그 안에 ‘王’자 문양이 새겨져 있다.

또한 발 부분을 ‘L’자형으로 처리하여 비늘문을 장식했고, 귀갑대(龜甲帶)를 주름문으로 표현하여 돌리고 연주문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양식은 고려전기 법상종 사찰인 개경 현화사비의 귀부(102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비의 귀부(1085),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의 귀부(1060)의 것과 유사하다. 탑비전지는 이 대지국사 법경의 귀부가 놓여 있는 지점에서 동쪽으로 약 4m 떨어져 있는데 건물지의 주향은 북동-남서방향이다. 본 조사에 앞서 시행된 지표조사에서 석축이 확인되고 자기와 와편들이 수습되었으나, 대규모 산사태로 생긴 토사가 두껍게 덮여 있고 일부에는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민묘(民墓)가 자리하고 있어 건물지의 구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그러나 발굴조사에서 대칭적인 구조가 일부 남아있어 정면 3칸, 측면 1칸 정도의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탑비전지를 찾을 수 있었다. 탑비전은 기본적으로 치석된 원형주초에 고맥이석을 사용한 구조인데 건물 정면과 측면에 각주를 사용하여 1칸씩 외여닫이문을 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지 정면 원형주초 사이의 간격은 210㎝이고 중앙 각주(角柱) 사이의 간격은 100㎝이다.

고맥이 초석 안쪽으로 5줄의 화강암 판석(폭 40~50㎝, 길이 50~80㎝, 두께 10㎝ 내외)이 놓여 있는데 이는 탑비전이 축조된 이후 후대에 만들어진 구들시설이며, 이 시설하단부에서 고래로 보이는 석렬과 와편들이 출토되었다. 탑비전지 내 구들부 상단에서 철제 솥을 비롯한 철제유물과 청동발 2점이 출토되었는데 산사태로 인해 밀려 내려온 거대한 암괴에 의해 찌그러진 상태로 수습되었다. 또한 탑비전지 동쪽 끝부분에서 청자상감용문호편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탑비전지 하단에는 2단의 기단부를 조성하고 계단과 문지를 만들었는데, 탑비전에서 서쪽방향으로 내려가는 첫 번째 기단부 계단(4단)은 잘 다듬은 화강암 장대석을 이용하였으며, 부도 지대석을 중심으로 좌우에 하나씩 설치하여 대칭을 이루고 있다. 탑비전지 정면의 기단 갑석과 탑비전지 남쪽 기단갑석은 산사태로 인해 제자리를 이탈하여 바닥에 떨어지거나 유실된 상태이나 다행히 탑비전지 북단 기단부가 일부 원형으로 남아 있어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진설명>(맨 위)탑비전지 및 고래 건물지. 삼천사지 본사역을 바라보며 남서향 하고 있는 건물지로 원형주초와 고맥이석을 이용하여 건물을 축조했다. 정면 3칸, 측면 1칸 정도의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비전지에는 후대에 만들어진 구들시설이 확인되며 구들부 상단에서 철제솥을 비롯한 철제유물과 청동발 2점이 출토되었다.(가운데)부속 건물지. 탑비전지 하단에는 2단의 기단부를 조성하고 계단과 문지를 만들었다. 계단지 밑에 배수로가 연결되며, 배수로 서쪽에 치석된 화강암을 사용하여 회랑지로 보이는 건물지를 구획했고 축대 상단에 출입문 주초석을 마련했다. 또한 탑비전지 좌우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지를 두었다.(아래)불단. 건물지 중앙에 화강암 장대석을 ‘ㅁ’자형으로 붙여 만든 불단(가로 190cm×세로 170cm)이 있다. 건물지 하부에 온돌시설의 일부인 고래가 지나가는데 5열이 확인되며 화강암 할석과 기와편을 사용했고 점토를 활용하여 마감하였다.

대지국사 부도지대석에서 다시 아래쪽에 있는 두 번째 기단부로 내려가려면 화강암을 ‘口’자 모양으로 붙여 만든 신방석(가로190㎝×세로 90㎝)을 지나 두 번째 계단지를 지나게 되는데, 이것 역시 면을 고른 화강암 장대석(가로 270㎝×세로 52.4㎝)을 활용하여 3단의 계단을 만들었다. 하부계단석 좌우측 모서리에서 진단구로 추정되는 도기 호가 각각 1점씩 확인됐다. 계단지 밑에 배수로가 연결되며, 배수로 서쪽에 치석된 화강암을 사용하여 회랑지로 보이는 건물지를 구획했고 축대 상단에 출입문 주초석을 마련했다.

또한 탑비전지 좌우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지를 두고 담장을 활용하여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쪽 건물지는 탑비전과 마찬가지로 원형주초를 사용하였는데 현재 4개의 주초가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각종 꺾쇠류, 문고리, 돌쩌귀 등 가옥 관련 철제유물들이 대다수이며, 산사태로 인해 유구의 교란이 심한 상태이다. 남쪽 건물지는 탑비전 축조이후 수축된 흔적이 보이며, 역시 사태로 인한 유구 손상이 심해 제 모습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구들부에서 고려 유물 출토

2007년도 조사에서 탑비전의 후면에 쌓은 옹벽선을 일부 찾았는데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있는 동남쪽 부분의 구조를 살펴보면 장대석을 길이방향으로 3단 쌓기 하여 경사면을 마구리하였다. 이 옹벽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로 220cm× 세로 230cm크기의 정면 1칸, 측면1칸의 아궁이가 딸린 집자리가 조사되었는데 맷돌 상부 1매와 질그릇 등이 수습되었다.

대지국사탑비 구역은 경사진 구릉의 일단에 높이 1~4m의 화강암 축대를 삼면으로 쌓아 공간을 만든 후 장대석을 활용하여 방형의 터를 조성했으며, 구릉의 생토면을 파낸 후 점토층을 다져 기초를 마련한 위에다 건물지를 축조했다.

담장지와 배수로 일부에서 후대에 개축된 흔적이 확인되며, 산사태로 인해 유구가 교란된 부분이 관찰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주 건물지인 탑비전을 비롯하여 부속 건물지까지도 모두 고려시기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B지구는 A지구 탑비전의 조성 방식과 같이 능선의 일단을 정지하고서 화강암 괴석을 활용하여 축대를 쌓고 건물지를 축조했으며, 중앙 건물지 가운데 방형의 불단(佛壇)으로 보이는 시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법당지로 추정된다. 건물지의 주향은 동-서 방향이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계단부가 심하게 붕괴되어 있으나 산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여타 구조물들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전체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중심 건물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정면 주초간 거리는 270㎝이다. 4개의 주초 중 3개가 남아 있고 나머지 1개는 교란되어 있는 상태이다. 기단부의 장대석을 다룬 솜씨나 전체적인 구조로 보아 고려시대에 축조된 건물지이나 후대에 수차례에 걸쳐 수축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지 내부에 남-북 방향으로 구들을 놓았다.

건물지 중앙에 화강암 장대석을 ‘ㅁ’자 형으로 붙여 만든 불단(가로 190cm×세로 170cm)이 있다. 건물지 하부에 온돌 시설의 일부인 고래가 지나가는데 5열이 확인되며 화강암 할석과 기와편을 사용했고 점토를 활용하여 마감하였다. 불단의 중심 지표 밑 10㎝지점에서 (석조보살두)石造菩薩頭가 출토되었다. 삼불보관(三佛寶冠)에 입술 일부와 화불(化佛) 일부에 붉은 채색을 하였으며, 머리 부분에도 검은 채색을 한 흔적이 있다.

중심 건물지 기단석과 계단지 일부가 교란된 상태이나 발굴조사를 통해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기단부의 가로 길이는 980cm이다. 기단부와 문지 사이에는 화강암 박석(薄石)으로 바닥을 깔아 처리하였는데 가장자리 부분만 남아 있고 가운데 부분은 비어 있는 상황이다. 후대에 구들시설을 하면서 재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220cm 크기의 장대석 2매를 맞붙여 문지를 만들었는데 비교적 유구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또한 중심 건물지 북쪽과 남쪽에 일련의 건물지들이 연접해 있는데 모두 동-서 방향으로 연도를 놓았으며, 남쪽 건물지의 경우 아궁이와 주초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김 우 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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