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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색색의 30여종 금은보화-최고의 세공품들!

기자명 법보신문

[왕흥사-사리장치 깊이 보기]<끝>

강순형 창원문화재연구소장 특별 기고
왕흥사-사리장치 깊이보기

 

글 순서

1. 최고·최대 사리그릇 발굴하다
2. 왕흥사, 임금이 배타고 들어가는 구조
3. 언제 창건 되었나-위덕왕 때 창건?
4. 아좌태자 외 역사에 없는 또 한 왕자
5. 사리 그릇 차림새
6. 유리병 대신 순금 사리병
7. 사리장치처의 궁금증
8. 금은보화-진단구? 공양품?
9. 3알의 사리는 어디로 갔나?
10. 40여 종 최고의 세공품들
11. 기타 출토품들

12. 위덕왕이 세운 두 절과 사리공양

 40여 종 최고의 세공품들
나무木탑자리의 한가운데 땅밑 심초석 사리홈孔에 사리그릇이 놓인 곁(남쪽)의 흙 속에 흩어진 30여종 8,000점이나 되는 가장 많은 갖가지의 감材質․종류․형태․빛깔로 된, 수많은 공양품이 나와 깜짝 놀라게 하였다. 여기에는 장신구=몸치레개들 중심으로 공양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인도 실론=스리랑카의 불경에서도 적혀져 있는 것이다『大史經』-佛舍利納於 寶石所作 並以種種寶玉 供養, 『小史經』-瓔珞 王冠 環釧 及 其他極多 裝身 供養. 간단히 공양품을 살펴보면,

 금귀고리-알지름 1.1Cm나 되는, 입이 벌어진 방울꼴의 큼직한 알은 겉에 도들띠와 알갱이 곧, 대루帶鏤filigree와 입루粒鏤granulation로 무늬를 붙인 누금鏤金치레여서 눈길을 끄는데, 이는 앞선 공주의 무령왕·비릉(525․529)에서도 나와 비교되는 것임. 1벌.
 놋靑銅팔찌-지름7.1×너비0.3Cm. 둥글고 납작하며 겉둘레에 톱니무늬가 돌려짐. 신라를 비롯한 무령왕·비릉(525․529)뿐만 아니라 10해 앞선 같은 위덕왕의 능사 목탑자리에서도 거의 같은 크기가 나와 관련을 맺음. 1벌. 나아가, 신라 황룡사 9층나무탑자리(645)에서도 나옴.
 옥비녀-10.0×굵기0.3Cm. 끝을 살짝 가늘게 한 막대꼴의 작은 흰옥비녀.

 칠보무늬금구슬-지름0.5~0.6Cm. 15점. 도너츠꼴의 고리를 한쪽은 4개, 한쪽은 2개로 이어 붙인 뚫려透刻 칠보무늬를 만들고 있다. 6:2로 붙은 구슬들에는 달리, 붙은 고리 사이에 알갱이粒鏤granulation를 하나씩 붙인 맵시다. 목걸이나 팔찌인 것.
 짐승치레개-2.2×1.3Cm. 나온 유물 가운데 가장 눈길 끄는 자료의 하나. 옆구리에 끈이 꿰이는 구멍이 뚫려 구멍과 양면이, 끈과 양쪽에 꿰인 자子구슬과의 마찰로 많이 닳아있어, 목걸이의 가운데 본 치레인 주主구슬이 되는 치레. 단출한-둥그스럼한 머리에 엎드린=꿇어앉은 꼴이어 무덤 안에 놓이는 지킴이 짐승인 진묘수鎭墓獸꼴인데다, (남성)소변기인 호자虎子꼴과도 닮아 범=호랑이가 아닌가 하고 있다. 그러나, 그야말로 소변기꼴 호자를 걸고 다녔다기보다는 되려, 왕흥사로 건너가는 나루도 구드래(레) 나루이듯, 앞서의 공주=웅진熊津=곰나루로 이어오는, 부여를 나타내는象徵 곰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마노로 만든 것.
 짐승치레개-1.7×1.4Cm. 납작한 짐승얼굴로 밝고 귀엽게 새김. 입가에 수염도 드러난 나비=고양이같이 보이는 어린 범. 흰옥白玉으로 된 것.
 은허리띠조각-3.3×1.8Cm. 능사와 무령왕․비릉(525․529) 것과 닮아 비교됨. 나아가, 신라의 황룡사 9층나무탑자리(645)에서도 나와 주목됨.
 관모冠帽의 철심-29×22×높이25.5×굵기0.4Cm. ▽꼴의 쇠심으로, 부여 능안골 무덤(6세기말-7세기초)에서 나온 은관모꼴과 닮아 눈길 끔. 이 위에서 운모판으로 된 연꽃이 나왔다.
 작은 쇠칼鐵刀子-25.5~11.5Cm. 나무칼집까지 있는 작은 쇠칼도 보여 노리개 곧, 장신구로 써였을 수도. 8점이나 나옴. 나아가 신라 황룡사 9층나무탑(645)에서도 나온게 보임.
 곡옥-2.7×0.7Cm. 짙고 연한 빛깔들 6점.
 골무金帽型꼴금치레개-0.7×0.9Cm. 이어진 고리무늬 틈새로 점무늬가 메워져 마치 대루帶鏤filigree와 입루粒鏤granulation로 된 듯한 둥근 골무나 모자꼴. 함께 나온 곡옥에 씌워지는 것도 있어 눈길 끔. 고리와 점무늬를 좀 납작하게 나타내었음. 4점.
 금조각金板-2.8×0.9Cm×두께0.5mm. 매우 얇고 작은 네모난 금판.
 금실金絲뭉치-한 웅큼의 금실. 가닥마다 돌돌 틀어져 있음.
 이밖에 은귀고리들, 은가락지, 목걸이나 팔찌였던 크고 작은 금은구슬들이 나옴.

 구슬-유리·수정·마노들로 된 갖은 빛깔과 생김새의 수많은 찬란한 구슬들은 모두 꿰는
구멍이 뚫려穿孔 목걸이와 팔찌같은 쓰임새였음을 보여줌. 이러한 금은과 더불어 유리·옥구슬들은 군수리절터․능사터의 사리 공양품도 비슷하여 주목됨.
 유리구슬들은 모두 알카리계 소다유리로 푸르고 붉고 노랗고 자주의 갖가지 화려한 빛깔들은 납Pb·주석Sn·구리Cu·철Fe들을 이용한 성분을 착색기술로, 인도·이란·중국일본의 동아시아로 관련 됨.
  모나고 배부른 긴구슬-6모수정구슬 2.2×0.8Cm. 3점. 4모마노구슬 1.9×1.5Cm. 3점.
  6모홍구슬-지름0.5Cm. 마노나 유리로 보임. 5점
  대추빛 대추꼴구슬-1.8×1.1Cm. 유리로 보이며 흰빛을 비롯한 반점이 박힘. 3점.
  금․은박유리구슬-1.5×0.9Cm 굵기의 조랭이떡국꼴로 볼록하게 이어진 이른바, 연주문連珠․聯珠文꼴로 된 대롱구슬들. 무령왕·비릉(525․529)에도 같은 게 나와 분석 결과, 두겹2重유리 사이에 은(박)을 삽입한 놀라운 것으로 밝혀짐. 99.7%의 은. 금(빛)으로 보이는 것은 철Fe 성분의 유리빛 때문으로 추정함. 1괄.
  금테탄정炭晶구슬-1.0×0.6Cm. 화석화되어 굳어진 목탄(木炭, 탄화목 곧, 무연탄無煙炭Anthracite 재질) 수지樹脂인 탄정炭晶에 금테를 두른 탄목금구炭木金具. 9점. 납작한 구슬扁玉꼴로, 금테의 옆쪽에 구멍이 뚫려있어 꿰어 팔찌같은 치레거리로 보임. 무령왕․비릉(525․529) 임금의 허리띠 드림치레 쪽에서 나온 것(87점)과 같아 또한 비교됨. 나무가 땅속에서 산소부족에 수지樹脂와 함께 굳어지는 탄화炭火→오목烏木→탄정炭晶으로, 호박琥珀같이 굳어진 수지. 이러한 재료로 만든 사자나 범虎, 개나 양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중국 하북성 BCE.4세기 옹관묘, 평양 낙랑 BCE.1세기 목곽분)은 있다.

 쇠쪽집게鐵鑷-길이5.9Cm. 오늘날의 족집게와 꼭 같은 것.
 놋靑銅젓가락-21.9×굵기0.3Cm. 1벌. 머리쪽에 비단錦으로 보이는 천(平織)도 붙어 있어 중요
자료가 됨. 크기에서나 손잡이 쪽에 구멍 뚫린 것까지 같은, 젓가락으로 보는 이 유물이 무령왕·비릉(525․529)에도 나와 주목됨.
 운모연꽃-지름10.5Cm×두께0.16mm. 운모雲母석을 얇디얇게 저며! 만든 연꽃. 6잎을 놓아 연꽃을 만들고 위에다 연밥을 뜻하는 둥근 판, 그 위에 작은 6꽃잎間葉을 놓고 다시 작은 둥근 연밥판의 모두 4겹으로 된 납작하고 투명하게 다듬어낸 놀라운 솜씨의 연꽃. 작은 사이 잎間葉 밑에는 또 마름모꼴 금판金板까지 넣은 치레를 한 꾸밈새가 놀랍다.
 도철무늬옥-7.6×2.4Cm. 앞뒤로 도철무늬가 오목 새겨진 납작한 원뿔꼴로, 벽玉璧같은 치레의 둥근 테두리 한 쪽을 자른 것으로 보임.
 활꼴弓型옥-비취빛 2.0~6.3×0.4Cm, 흰빛 6.0~4.1×0.3Cm. 좁고 납작한 활꼴. 7점.
 상평오수전常平五銖錢-지름2.4Cm. 중국 남북조의 북조(386-581)인 북제(北齊, 550-577)의 동전.
신라의 분황사돌탑(634, 선덕여왕3) 공양품에도 같은 2점이 나옴. 은덩이-2~3.8×1.3Cm×3.3mm․1.7Cm×1.5×1.6mm. 네모난 덩어리로 도금한 재질같이
보이나 분석 필요.
 이러한 공양품들 곧, 비녀簪·귀고리耳飾·가락지環·팔찌釧·목걸이같은 갖가지 장신구=몸치레개들과 그 감材質인 금·은·유리(파리)·옥(수정)의 4보에 마노·진주·산호를 더한 7보의 갖은 보석과 쪽집게鑷·젓가락箸·동전·거울·금은조각들은 인도에서 중국(남북조 등)으로 이어지고 글들에도 적혀있는 것(舍利尋沒於 地至金剛擦 種種珍寶 金銀 摩尼 眞珠 琉璃 珂貝 璧玉 珍寶僞寶 瑪瑙 珊瑚 天冠 寶飾…如雨而下 一切遍滿 裟婆世界 爾時人民 其心和悅 無諸鬪諍 飢餓 疾病 他方怨賊 惡口 諸毒 一切消滅 皆得寂靜 爾時世界 有如是樂…, 『悲華經』, 권7, 北凉, 曇無讖, 419)으로, 이번에 밝혀진 우리의 가장 오랜 백제 왕흥사에서 사리차림(577, 위덕왕24)에서도 드러난 첫 실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선 능사와 군수리·금강사터(6세기) 및 신라의 분황사 돌탑(634)와 황룡사 9층나무탑(645․646)들이 자리잡는 것이다.  
 나아가, 부처가 돌아갈 때 아난에게, 임금轉輪聖王의 장례처럼 하라(如飛行皇帝 送葬之義, 『佛滅度後棺斂葬送經』, 西晉, 265-316)고  이른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곧, 무령왕·비릉(525․529) 유물과의 비교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주목되는 것이다.

 기타 출토품들

 사리차림의 유물 그 밖에, 어두운 갈회색의 모래질 찰흙을 깐(두께15-20Cm) 바닥 위에, 누런 모래질 찰흙과 누런 굵은 모래=마사토를 번갈아(두께25-30Cm) 깔아 다진=판축에 많은 편의 작은 돌이 섞인 탑자리의 기단 속에는, 모두 6세기 후반의 편년을 짓는 중요한 백제암平기와와 연꽃잎 끝이 버선코같이 살짝 돋은 외잎이 8잎 돌려진 연꽃무늬수막새 및 같은 외잎이 8잎 또는 10잎 난 서까래椽木막새들이 눈에 띈다.
 또한, 「巳毛」·「巳」자銘가 찍힌-도장印章암기와도 눈길 끈다. 이는 부여 관북리·부소산성과 왕궁리에서도 나와 견주는 중요한 자료 거리. 3발三足토기와 불상 광배의 윗부분꼴인 연꽃당초문의 큰바래기기와望瓦 및 치미편과 도깨비기와를 비롯한, 백제에서 고려에 이르는 기와들이 200여점 나와 주목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절터 동쪽에는 백제기와 가마터가 무려 14기나 조사되어 왕흥사의 규모를 알게 했으며, 고려기와 가마터 1기에는 「王興」자 기와가 나와(2001․2006) 1934해에 처음 발견된 王「興」자 기와와 절의 자리가 정확히 확인되는 수확을 거두었다.

 -자료를 흔쾌히 제공해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발굴단에 감사 드리며,  사리그릇의 그 葬자 유물이 흔한 6조六朝의 서울 남경南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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