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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과 緣맺으니 나날이 좋은 인연

기자명 법보신문

함평 연꽃나비 임 명 란 대표

연 재배에서 해외 수출까지

언뜻 보기에 세상은 멋대로 인듯하다. 불합리하고 불평등하며 도통 정의하고는 거리가 먼 일들이 우리 곁에 상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고, 어떤 이는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기아와 전쟁에 시달리며 아귀다툼을 벌이다 결국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같은 나라에 태어나 살더라도 교묘한 술수와 이기적인 방법으로 성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직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사는 데도 실패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일체가 멋대로 인듯 보이기는 하나 세상사에는 모든 것이 상의상존의 법칙에 따라 연을 맺고 있으며 인연법에 따라 과가 오는 법. 부처님은 그것을 연기라 설하셨다.

30대 중반부터 장애우와 생활

1995년 11월, 함평 연꽃나비 대표 임명란(47) 보살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쌀독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전기마저 끊겨 난방조차 할 수 없었다. 어려운 살림에도 장애인들을 돌보며 늘 선한 마음으로 생활해 왔건만 터럭만큼의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치솟게 했다. 2년 전 우연히 장애인 봉사활동에 동참한 후 이들을 위한 삶을 서원하며 운영하던 청소년수련관마저 정리했지만 연거푸 찾아온 악재는 삶의 의지마저 꺽어 놓았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왔건만 왜 이리도 힘겨워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어요. 15명이나 되는 장애우들과 촛불 하나에 의지해 추운 겨울밤을 지새야 했으니까요. 몸도 불편한 어르신들이 괜한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더군요.”

오히려 ‘희생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장애인들이 금세라도 쓰러질듯 한 임 보살의 버팀목이 되어 그를 감싸주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 밤, 어르신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촛불 곁에 모여 앉아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며 임 보살을 위로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 때문에 부연해진 저편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다시 찾아보았다. 열다섯 명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그녀가 아닌가. 그러나 동굴 같은 어둠의 절망만 계속될 뿐이었다.

그녀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 입시학원을 운영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당시 입시에 찌든 학생들에게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폐교를 매입, 청소년수련관 ‘바다학교’를 설립했다. 학생들과의 만남은 자연스레 봉사로 이어졌고 장애인들의 어려운 삶도 이때 접하게 됐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몇 분이라도 편히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세 명을 바다학교로 모셔왔다. 그러나 장애인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그들의 손과 발을 대신해야 하는 희생 그 자체였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24시간 돌보기 위해서는 수련관 운영마저 포기해야 했다. 그녀의 나이 34세 때의 일이다.

연 전문가 되면서 잇따라 행운

걱정과 고민으로 몇날 며칠을 지새우던 어느 날, 꿈인지 생시인지 끝을 알 수 없는 너른 연꽃 밭 한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잠시 후 한 스님이 홀연히 나타나 커다란 자라 한 마리를 건네줬고, 자라는 이내 찬란히 빛나는 황금빛 연꽃 송이로 바뀌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충남 아산 인취사 주지 혜민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하더라고요. 한 걸음에 인취사를 달려갔더니 혜민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이듬해 봄에 다시 오라는 거예요. 이듬해 다시 찾아뵈었을 때에는 연 뿌리 다섯 개와 기르는 법을 상세히 일려주며 좋은 인연이 생길 것이란 덕담도 해 주셨어요.”

혜민 스님의 말을 듣기는 했으나 연뿌리 다섯 개가 그렇게 큰 덕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연을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1년 새 수십 뿌리로 성장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주위에는 행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뿌리부터 잎, 꽃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연은 바다학교 재정 자립의 기틀이 되었다. 게다가 무안군이 연꽃축제를 기획하며 연 전문가로 그녀를 추천, 추진위원으로 위촉됐다. 바다학교 식구들은 더 이상 하루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재정적 안정은 더 많은 장애인들을 바다학교로 초청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고 한때 50여명이 함께 생활할 정도로 살림이 늘어갔다.

“자원봉사자들의 자비·보시 행렬이 줄을 잇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예요. 전국 제방의 스님들이 쌀과 의류 등을 보내왔고, 인천 길병원에서는 의료지원을 약속했어요. 특히 지역 군부대에서는 매일 다섯 명의 군인을 바다학교로 파견, 청소, 빨래, 식사 등 굳은 일을 도맡았습니다. 연을 통해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후 날마다 좋은 날의 연속인 셈이죠.”

연과의 인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2년 무안과 이웃한 함평에서 벼 대체 작물로 연을 선택, 월암리 82가구의 동참으로 60만㎡(18만평) 규모의 연지를 조성하는데 임 보살을 운영자로 지목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지 조성부터 상품 개발, 가공공장 건립까지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모든 것을 위임할 것을 서약했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지난 6년간 연을 키우며 그가 구상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경복궁-백양사 등에 연 식재

“700여 종의 연을 식용, 염색용, 관상용으로 구분해 연지를 조성했어요. 연잎 차를 필두로 연을 활용한 염색 천, 고추장, 된장, 조청 등을 차례로 상품화 했어요. 가공공장까지 갖추고 포장부터 개선하니,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워졌지요.”

문제는 판로였다. 82가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기에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트럭을 빌려 제품을 가득 싣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두어 시간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김제 금산사,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그녀도 몰랐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주지 스님을 찾아뵈었어요. 차마 차를 사달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보시하러 왔다고 말씀 드렸어요. 트럭 가득 실린 차 통을 보고 스님이 놀라시더군요. 그리고 감사히 받겠다는 인사와 함께 보시금을 주시는 거예요. 거기서 용기를 얻어 전국의 사찰을 직접 찾아다니며 제품을 알려나갔습니다.”

순박한 시골 농부들이 직접 연을 재배해 만든 차와 고추장, 된장, 조청 등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해 2년여 만에 흑자 회사로 거듭났다. 처음엔 반신반의로 연 농사를 시작한 함평 주민들도 벼농사에 비해 가계 수입도 증가하고 일손도 덜해 지금은 그녀를 후원하는 든든한 버팀목을 자청하고 나설 정도. 현재 함평 월암리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연꽃나비’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그는 연 보급에도 앞장서 경북 예천·영양, 전남 화순·해남, 백양사 연지 개발에 동참했다. 지난해에는 전국 최우수 연 품종으로 선정, 경복궁에 홍련과 백련을 식재했다.

임 보살은 연을 통해 맺은 인연을 귀히 여겨 해마다 2만 5000여 상자, 시가로는 10억원 상당의 차를 제방 선원과 사찰에 보시하고 있다. 이 같은 인연의 결과인지, 최근 연 추출 성분으로 개발한 ‘클렌징 폼’이 일본에 100만개를 수출하기로 계약하는 등 연과의 좋은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다양한 상품 개발, 일본에 수출

매일 오후 7시, 임 보살은 연 차 한잔을 들며 하루의 일과를 정리한다. 자신과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발원하는 시간이다. 1000년 전 조주 스님이 “차나 한잔 들게나”라며 일체 중생들에게 마음을 바로 볼 수 있는 화두를 던진 것과 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 모금 차를 음미하며 정좌에 든다.

“연꽃 같은 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이 사회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연꽃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정진하면 연꽃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요.”

여느 수좌 스님의 얼굴에 깃든 소소(少笑)를 떠올리게 한다. 061)323-3515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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