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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구숼산 월정사 [하]

기자명 이학종

“추녀 끝 線 구비치는 건 세월의 무게에 겨운 탓”

조선초기 양식 전각마다 고려의 멋 듬뿍
명부전 지장보살상 마치 숨을 쉬는 듯
 

구월산 월정사에는 현재 두 분의 스님이 살고 있다. 두 스님은 이 절에서 오랜 세월 관리인을 해왔던 노 거사의 두 아들인데,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스님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재작년에 스님이 되었으니 아직은 사미승인데, 두 스님 모두 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법타 스님이 평불협 방문단을 이끌고 이곳을 방문했을 때, 두 형제에게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스님이 될 것을 적극 권유했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법타 스님은 스님이 되어있는 아우 스님을 부둥켜안고는 등을 두드리면서 “잘했어. 얼마나 좋아. 이렇게 스님이 되어 있으니.”라며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주지격인 형님 스님은 마침 베이징으로 출장을 나가 있어 동생 스님이 홀로 절을 지키고 있다. 처음에는 절에서 사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외부로 나가 있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생각이 바뀌어 스님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단다. 짙은 회색 승복에 홍가사를 걸친 모습이 유발이긴 해도 썩 잘 어울린다.



4년전 김 위원장 방문‘격려

월정사는 지난 199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녀가기도 했던 북한의 주요 사찰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본래 고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많이 있는 법인데, 아는 것이 있으면 들려 달라’고 요청했고, 관리인은 옛날 월정사와 산내암자에 살던 노 비구와 비구니 스님이 남자와 여자의 오줌 누는 모습이 다른 것을 몹시 궁금해 하다가 어느 날 상대의 모습을 훔쳐보려고 해우소로 갔다가 서로 마주쳐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어찌나 구성지게 이야기를 풀었는지, 김 위원장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대를 이어 절을 지키고 있으니 장하다는 칭찬과 함께 그 징표로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이러는 통에 본래 15분으로 예정돼 있던 김 위원장의 월정사 체류 시간이 무려 1시간 반으로 늘어나 당시 경호원들이나 수행원들이 비상이 걸렸었다는 것. 지금은 월정사의 주지가 된 이(형님) 스님은 아직도 그 때의 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려나. 네 채의 전각이 둘러싸고 있는 법당 앞마당의 양 편에 괘불을 세웠던 돌 받침대(당간지주)가 마주 보고 서 있는데, 그 양태가 전형적인 조선시대 것이다. 조선 초기의 건물이다 보니 때때로 보수를 했더라도 전체적으로 고색이 완연하다. 추녀의 선이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요철처럼 굴곡지어 있는가 하면 기왓장이나 기둥, 서까래 등 나무구조물들은 저마다 한껏 세월을 머금었다. 눈부시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월정사는 고졸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배불(흘)림 기둥 위로 외7포, 내5포의 지붕을 짜 올렸는데, 보통의 경우와는 다르게 법당 내부보다 바깥쪽을 더 화려하게 치장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부의 마지막 첨차를 생략해 안팎이 같은 포수를 가지고 있는 셈이니 이 또한 독특한 조선시기 건축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붕은 겹처마 합각지붕으로 용마루를 한껏 들어올렸고, 처마를 2.5미터나 길게 내뿜게 한 뒤, 안전을 기하기 위해 사방 추녀의 끝부분에 각각 기둥을 세웠다.



화려한 건축양식에 문살은 단출

조선 초기의 목조건물인 터라 건축수법 및 탱화 등에 고려불교의 맛이 드문드문 남아있다. 닫집은 바깥 13포, 안 5포의 화려한 구조로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하는데, 전문가에 물으니 그리 오래된 작품은 아니라고 한다. 이음새 부위의 짜임새가 이완됐는지 추락방지용 기둥을 만들어 붙여 ‘공중에 달려있는 집’이란 의미의 닫집 특성은 상실된 상태다.

본전인 극락보전의 문은 상대적으로 화려한 갖은 포장에도 불구하고 사대부집의 그것을 연상시킬 만큼 단순한 문양을 사용해 외려 눈길을 끈다. 화려한 꽃살문 대신 기둥 위에 문인방을 건너지르고 아래에는 세살문을, 위에는 방형의 격자살로 된 뙤창을 각각 설치했다. 화려한 건축양식에 단출한 문짝이라는 대조미를 노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본전의 정면 문짝은 그 솜씨 등으로 미루어볼 때 훼손된 이후 후대에 적당히 만들어 달아놓은 듯하다.

본존불 아미타불은 전형적인 조선 목불상이다. 그 표정이나 미소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만큼 편안하고 자비롭다. 탱화는 그 양식이나 상태로 보아 16세기 작품으로 여겨지는데,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명부전의 지장보살상과 석류조각, 수월당의 목조각 등은 하나같이 생명이 깃들어 있는 양 생생한데, 빠듯한 일정 탓에 미처 살펴볼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예로부터 이름난 명부전을 세밀하게 관찰하지 못함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으리라.



만세루서 듣는 계곡물 소리 일품

‘월정사’라는 현판이 달린 만세루는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배집 양식의 전형적인 조선목조건축물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는 편안한 느낌을 준다. 1.2미터의 돌기둥위에 마루를 깔고 다시 나무기둥을 이어 세운 다락집인데, 마루에 올라 명상에 잠기노라면 마당개울에서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새들이 지저귐을 만끽할 수 있다.

월정사를 뒤로 하고 구월산을 내려오며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더 찬찬히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고찰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보고 나니 영 개운치가 못하다. 구월산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구월산을 바라봤다.


이학종 부장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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