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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부족한 고려불교 복원 ‘촉매제’

기자명 법보신문

[베일 벗은 천년사찰 북한산 삼천사지] 끝.

<사진설명>석조보살두(石造菩薩頭). 높이 3.7㎝의 소형 보살두로 고려시대 유물이다. 삼불보관에 입술 일부와 화불 일부에 붉은 채색을 하였으며, 머리 부분에도 검은 채색을 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삼천사지 탑비구역 발굴조사는 희귀한 고려시대 유구와 유물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조사지구 전역에서 수습된 대지국사명문비편을 비롯한 고려시대 유물 약 500여점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은제칠보문투각장식, 청동제 합(盒)과 수저 등을 비롯한 금속유물, 금니 목가구편 등 목제유물, 분청사기, 청자, 도기 등의 도ㆍ자기류 및 어골문(魚骨文)계열과 초화문(草花文)계열의 평기와, 막새, 치미 등의 기와류로 분류된다. 이 중 주요유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불 보살두 등 특이 유물 발견

▷청동합 등 청동유물 일괄
2개의 손잡이 달린 청동대발(靑銅大鉢) 2점은 산사태로 인해 형태가 심하게 훼손된 채 출토되었다. 크기는 구연(口緣) 둘레 110cm, 굽 높이 1.7cm의 것과 구연둘레 124cm, 굽 높이 2cm인 것이 있다. 전자의 내부에 바구니로 보이는 물건이 들어있었다.
청동사리합(靑銅舍利盒)은 뚜껑과 몸체가 분리된 채로 출토되었으며, 몸체 안에 석제받침이 동반해서 나왔다. 뚜껑 하단에 턱받이를 마련하여 몸체와 결합을 쉽게 하였다. 청동합은 높이 5.3cm, 구경 6.7cm의 뚜껑이 있는 그릇이다. 뚜껑의 중심부에는 지름 0.2cm인 원형의 음각선을 중심으로 각각 크기가 다른 2조의 원형 음각선을 3개 장식하였다.

▷철제유물 일괄
철제 솥, 철제 발(鉢), 철제가위, 부젓가락 등 생활용구류와 호미, 철부, 쇠스랑과 같은 다양한 공구류, 그리고 돌쩌귀, 철정, 문고리장식 등과 같은 건축 관련 철제유물이 출토되었다.

<사진설명>(사진 위)은제칠보문투각장식. 탑비전지 북쪽 기단부 아래에서 수습되었다. 은제투각칠보문 구슬 3개와 청동제 16화형고리 1개, 3개의 사다리꼴 장식편으로 구성됐다.(사진 아래)‘가순궁주’ 명 금니목가구편. 목가구편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며 목심은 부식되어 남아있지 않고 목가구 겉면 칠기막에 금니로 ‘가순궁주왕씨 아 가우신안공○○세시○○(嘉順宮主王氏 我 嘉 新安公○○世時○○)’ 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도ㆍ자기류
10세기 말~17세기에 해당되는 자기(磁器)를 폭 넓게 확인했다. 특히, 11세기 전반과 여말선초(14~15세기경) 자기의 출토 비중이 높다.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은 해무리굽 청자와 백자완(白磁碗)이며 하한에 해당하는 것은 분청사기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전기(15세기 전반경) 자기이다. 더불어 조선 중기(17세기)에 해당되는 백자철화 문병이나 대접 등도 일부 수습되었다. 도기류는 고려~조선시대의 연ㆍ경질도기인 옹(瓮), 호(壺), 병(甁) 등의 기종이 출토되었다. 청자상감용문호는 중심 문양대에 두 마리의 용이, 그 상하에 연판문(蓮瓣文)이 시문(施文)되어 있다. 두 마리의 용 가운데 한 마리는 길게 표현되어 있고 다른 한 마리는 나머지 공간에 맞도록 자세를 웅크리고 있다. 중국 안휘성 제현에서 출토된 용문호(龍文壺)와 비교된다.

▷기와류
평기와 중 단독문의 경우는 고려시대 기와의 특징인 어골문이 다수 확인되고 복합문은 어골문, 초문, 집선문계가 주문양을 이루고 있다. 명문(銘文)기와에는 ‘삼천(三川)’, ‘삼천 부(三川 夫)’ 명(銘)의 사찰명 암키와, ‘보(甫)’, ‘김철○(金哲○)’ 명의 암키와, ‘○○主○○○’ 명 암막새, ‘○○王○○’ 명 암키와가 수습되었고, 막새 문양으로는 연화문, 당초문 등이 나왔다. 이 외에도 치미(    尾), 전(塼), 귀면와편(鬼面瓦片) 등도 함께 출토되었다.

▷은제칠보문투각장식
탑비전지 북쪽 기단부 아래에서 수습됐다. 은제투각칠보문구슬 3개와 청동제 16화형(花形)고리 1개, 3개의 사다리꼴 장식편으로 구성됐다. 구슬 일부에서 금색이 관찰되는데 이는 은으로 구슬을 만든 후에 표현에 금도금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12세기경에 유행하던 문양과 장식들이 표현되어 있어 유물의 연대를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이와 유사한 장식이 국립중앙박물관 동원기증품과 일본 동경박물관 오쿠라 컬렉션에 남아 있다.

▷‘가순궁주’ 명 금니목가구편
목가구편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며 목심은 부식되어 남아있지 않고 목가구 겉면 칠기막에 금니(金泥)로 ‘가순궁주왕씨 아 가우신안공○○세시○○(嘉順宮主王氏 我 嘉    新安公○○世時○○)’ 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좬고려사좭에 가순궁주는 고려 21대 희종(熙宗)의 4녀로서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 ~1261)과 혼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가구편의 연대는 적어도 13세기경에 해당됨을 알 수 있으며 고려시대 목칠공예 편년 및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다양한 문양의 (금동목가구장식)金銅木家具裝飾이 여러 점 수습되어 예가 희소한 고려 중기 목가구 및 문양사 연구에 참고가 된다.

<사진설명>(사진 위)청자사기상감용문호. 탑비전지 동쪽 끝부분에서 수습되었다. 높이 21cm, 구경 10.5cm, 저경 10cm이다.(사진 아래)기와류. 평기와는 어골 단독문과 어골문에 방곽, 격자 등의 여러 형태의 문양들이 횡대로 결합되는 복합문이 확인된다. 막새는 연화문과 귀목문이 주로 나타난다.

▷석조보살두
B지구 중앙 건물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불단의 중심 지표 밑 10㎝지점에서 출토되었다. 유구의 중첩순서로 보아 후대에 불단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매납(埋納)된 것으로 보인다. 높이 3.7㎝의 소형 보살두로 고려시대 유물이다. 삼불부관(三佛寶冠)에 입술 일부와 화불(化佛) 일부에 붉은 채색을 하였으며, 머리 부분에도 검은 채색을 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5불이나 7불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석조 보살두는 특이하게도 3불을 표현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한국에서 출토된 바가 없어 불교미술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금동불상편
B지구 중앙 건물지 북쪽 기단부 아래에서 수습되었다. 손가락 편 일부와 또 다른 금동편 1점이 수습됐는데 2005년 지표에서 수습한 불명금동편과 성분조성이 흡사하여 같은 금동불상편의 일부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서울역사박물관이 2005년 9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3개년에 걸쳐 발굴 조사한 고려시대 절터 삼천사지에 대해 4회에 걸쳐 살펴보았다. 그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고려시대 삼천사지와 대지국사 법경의 모습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유구와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매우 인상적인 발굴조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 발굴단에게는 찌는 무더위와 쉴 새 없이 퍼붓는 장대비 그리고 정말 매서운 혹한기 산바람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쳐질 정도로 극심한 체력과 정신력의 소모를 가져오기도 했다.
기계장비나 전기 등 문명의 이기를 일절 사용할 수 없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오직 인력에만 의존하여 바윗돌을 끌고 굴리면서 망연자실하기도 했지만 단 한건의 사고 없이 무사히 조사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과 대지국사 법경 스님의 돌보심 때문이 아닌지 되뇌어 보게 된다.
이처럼 고단하고 지리한 시간 속에 진행된 삼천사지 발굴조사는 고려시대 유구와 유물을 수습함과 동시에 답보상태로 남아 있었던 고려 전기 불교사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사진설명>청동합 등 청동유물 일괄. 청동대발, 구연둘레 124cm(구경 39.5cm), 굽 높이 2cm로 외부에 종이 흔이 남아 있다. 청동사리합, 청동제로 양식 및 연대로 보아 대지국사 것으로 추정되나 아쉽게도 내부 사리구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청동합, 원래 공반 출토된 철제발 안에 흙과 섞여 들어 있어 출토당시에는 존재여부를 알 수 없었으며 정리 작업 중 X-레이 투시로 찾은 유물이다.

베일을 벗고 환생한 삼천사

A지구의 탑비전과 부속 건물지는 유구의 구조와 출토 유물의 연대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전기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대지국사탑비와 연관된 시설물임이 확인되었다. B지구에서는 법당지로 추정되는 일련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불단이 있는 중앙 건물지는 고려시대에 속하며, 부속 건물지는 후대에 수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다량으로 수습된 명문비편은 대지국사 법경의 행적 및 나말여초 법상종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다.
문헌기록에 단편적으로 전해오는 역사적 사실을 대지국사 비문을 통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헌자료에 실려 있지 않은 새로운 자료도 다수 발견되어 사료가 부족한 고려시대사 연구에 있어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히 고려시대 유물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삼천사지 출토유물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채 숨어 왔던 고려시대 삼천사를 환생시키고 공백상태에 있는 남경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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