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원유유출 사고와 낭만주의의 병
서해 원유유출 사고와 낭만주의의 병
  • 법보신문
  • 승인 2007.12.2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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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불감증은 주관적 낭만주의서 비롯

낭만적 감정서 벗어나 유비무환 새겨야

 

서해 태안반도 앞에서 대형 유조선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몇 년 전 여수 앞 바다의 원유 유출사고를 당하고도 예방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된 것은 거듭된 안전불감증의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업장을 짊어지고 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 수시로 안전불감증이라고 지적하지만, 실제로 그 숙업이 고쳐지려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서해안의 대형사고도 일상적으로 우리가 소소하게 겪는 안전불감증과 다른 것이 아니다.

시속 120킬로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차를 겨우 2~3미터의 차간거리만을 두고서 바짝 뒤에 붙어 따르는 다른 많은 차량행렬들의 작태가 저 사고의 원인과 다를까? 가득 넘치게 자갈과 바윗덩어리를 싣고 과속으로 달리는 트럭이 겨우 너풀거리는 낡고 얇은 비닐포장으로 덮은 듯이 눈가림하고 있는 작태가 저 사고의 원인과 다를까? 근무했던 직장이 판교에 있기에 거의 매일 판교 인터체인지를 돌면서 진입하곤 했었다. 맥주와 소주 그리고 콜라를 가득 실은 트럭이 회전하면서 원심분리를 이기지 못하여 결국 화물들을 쏟아버리고 다른 차들의 통행에 큰 방해를 일으킨 사고들을 일년에 4~5번 정도 목격했다. 설마 하는 감정에 짐들을 묶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이 서해의 저 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한국인들의 저러한 안전불감증의 윈인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낭만주의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고 여긴다. 한국인들은 낭만적 감정을 대개 좋은 의미로서만 생각한다. 물론 좋은 의미의 낭만이 있다. 그것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정감을 말한다. 한국가곡 일반적 서정성과 서정시의 감동이 좋은 낭만적 정서를 뜻한다. 그러나 실생활의 대부분 한국인들은 좋지 못한 낭만적 감정주의에 일반적으로 파묻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너무 주관적 감정의 격정에 사로잡혀 야기될 수 있는 객관적 위험에 대한 대비감정을 잊고 산다.

운전자가 빨리 가고싶은 주관적 심정으로 앞차를 압박하려는 감정에 사로잡혀 연쇄충돌의 위험을 잊고 있고, 돈을 조금 더 벌기 위해 빨리 한탕 뛰고 또 재탕하려는 욕심에 객관적으로 안전에 대비하는 생각을 트럭운전사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우리의 TV연속극에는 악쓰는 일이 너무 잦다. 악쓰는 까닭은 깊이 없는 낭만적 사랑감정에 빠진 연인이 하루아침에 상대방의 배신이나 제삼자의 방해로 꿈꾸는 정감이 분노의 감정인 격정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오직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만 서정적 정감의 미학으로 탈바꿈할 수 있지만, 인간사회의 현실에서는 자기의 주관적 감정에 취한 몽상이나 객관적 위험에 대비하는 용의주도함을 망각해버리는 어리석음의 대명사가 될 수 있다. 조선조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당한 까닭은 시국인식의 낭만주의에 기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명나라에 대해서 사대의 예(禮)를 다하면서 오랑캐인 청나라를 배척하고 싶으면, 전쟁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무비를 튼튼히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주전파들은 친명배청(親明排淸)의 외교를 취하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현실적 대비책은 없었다. 그들은 주관적 배청의식의 낭만주의적 감정에 오로지 쏠렸다.

불교적 의미에서 역사공부는 우리의 공동적 숙업을 인식하고 깨닫는데 있다. 무명(無明)이 가장 무서운 고통의 원인이다. 부처님이 무명의 죄업을 먼저 지적했는데 그 까닭이 있다. 우리는 아직도 안전불감증의 원인이 낭만적 감정의 심취에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주관적 낭만주의가 평화와 전쟁을 선악처럼 별개의 이원성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평화와 전쟁은 동전의 양면처럼 이중적으로 붙어 있을 뿐이다. 주관적으로 평화에 심취한 낭만적 감정이 전쟁을 역설적으로 유발한다. 전쟁도발만이 평화의 적이 아니다. 전쟁유발도 역시 평화의 적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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