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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미얀마 불교아카데미 학장 우 냐니사라 사야도

기자명 법보신문

佛法 통해 하는 말이 가장 좋은 말

계율을 잘 지켜도
지혜가 부족하면
몸에 다리만 있고
눈 없는 사람과 같아

부처님 가르침 믿고
십이연기를 통해
원인과 결과 이해하면
인생 깊이가 달라져

올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좋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심한 말, 독한 말은 좋은 말이 아니며 뜻이 없는 말도 좋은 말이 아닙니다. 또 가십 역시 좋은 말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말, 서로 화합하는 말이 올바른 말입니다. 그리고 부드럽고 따뜻한 말, 본질이 있는 말, 이득이 있는 말이 좋은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불법을 통해 하는 말이 가장 좋은 말입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말은 4성제에 관한 말이고, 올바른 말은 8정도에 속해 있습니다. 어느 민족, 어느 나라에서든 좋은 일에 관한 말과 좋은 진리를 말하는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모든 축복하는 말은 좋지 않은 말을 삼가고 좋은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업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행위이며, 자기가 쌓은 선업과 불선업의 결과는 자기 스스로 받게 됩니다. 그래서 불선업의 결과는 자기 스스로 벌을 받게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선업의 결과도 스스로 받게 되므로 선업과 불선업의 결과를 깊이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업과 불선업의 뜻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완벽한 인간이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뜻은 아는 것, 즉 지혜와 수행을 통해 봐야 합니다. 인간은 알아야 하며 수행을 해야 하며 자기의 지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키고 행하는 것을 계율이라 부르고, 그렇게 아는 것을 지혜라고 부릅니다.

(수행을 하는)사람들 중에는 계율은 잘 지키면서도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율만 지키는 것은 다리만 있고 눈이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계율을 지키므로 다리가 있어서 어디든지 갈 수는 있지만, 눈이 없으므로 어디로 가야할 지는 모릅니다. 반대로 지혜의 눈은 있는데 계율을 지키지 못해 걷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율은 인간의 다리와 같고 지혜는 눈과 같습니다.

계율과 지혜는 서로 의지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좋지 않은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계율이므로, 불선업을 행하는 나쁜 원인과 그 결과를 찾아야만 합니다. 모든 선업과 불선업은 마음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불자들은 4성제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믿고, 12연기를 통해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게 되면 인생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불선업의 원인은 탐·진·치의 3가지입니다. 탐욕을 통해서 모든 일을 행하는 것, 증오를 통해서 모든 일을 행하는 것, 그리고 어리석음을 통해서 모든 일을 행하는 이 세 가지가 바로 불선업입니다. 이러한 탐·진·치는 모든 악과 불선업의 기초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피해를 주고 나쁜 일을 하는 것은 탐욕, 증오,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불선업은 마음을 통해서도 만들어집니다. 때문에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마음도 역시 불선업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감각과 쾌락을 생각하는 것도 불선업의 모습입니다.

반대로 좋은 생각, 좋은 일, 좋은 행동의 원인도 따로 있습니다. 좋은 생각, 좋은 일, 좋은 행동은 자비로운 마음과 연민 그리고 같이 기뻐하는 평등심에서 나옵니다.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통해 말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연민하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면 상대방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고, 지혜를 통해 생각하면 진리를 찾아가는 생각만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불선업의 원인을 깊게 이해하는 것이 진리를 찾아가는 첫 걸음입니다.

종교를 갖는 것보다 선업과 불선업을 아는 것이 더 고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선업과 불선업에 대한 이해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교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정법이라 불러야 맞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즉 담마라는 정법은 3가지 무더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3가지 무더기는 바로 계·정·혜입니다. 계율이라는 것은 모든 불선업을 삼가는 것입니다. 또 모든 나쁜 일을 삼가는 것도 계율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말, 나쁜 행동, 나쁜 마음을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만 합니다. 불선업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면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선정이 필요합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생각이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면 똑같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기술이 좋은 의사와 같아서 부처님이 가르치는 삼장이나 팔만대장경은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삼장에 나오는 방식대로 우리가 계·정·혜를 통해서 인간의 병을 치료할 때 계·정·혜는 가장 좋은 치료약입니다. 계율이라는 약을 잘 먹으면 몸과 입과 마음에서 나오는 병이 낫습니다. 또 집중, 즉 사마디라는 약은 정신의 병을 낫게 합니다. 사마디는 사람이 원숭이처럼 되는 마음을 묶어주는 약과 같습니다. 모든 원숭이들은 조용히 살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은 원숭이와 같은 마음을 알아차림으로 묶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수·심·법의 4념처를 사용해 원숭이 같은 마음을 묶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수행은 지혜입니다. 반야(般若)라는 것은 반과 야로 나눌 수 있는데, 반(般)이라는 것은 자세하게 알아보는 것입니다. 반야는 ‘내가 누구인가’를 자세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담마를 세 부분으로 나누면 계·정·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몸과 입과 마음을 통한 불선업을 삼가라고 했는데, 나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 집중이며, 있는 그대로 알아보고 자세하게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 지혜를 실천해야 하고, 오온을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공부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보통 사람이 사는 곳을 집이라 부르고, 스님들이 사는 곳을 절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동물이 사는 곳은 동물원이고, 대·소변을 보는 곳은 화장실이라고 합니다. 또 부처님들이 모여 있는 곳은 법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법당이든 집이든 화장실이든 이름만 다를 뿐 그것을 구성하는 재료는 나무나 철 등 몇 가지밖에 없습니다.

엔지니어가 집을 여러 모양으로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다 혹은 싫다고 하는데, 보통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고 건축가가 건물을 만듭니다. 여기서 모양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갈애이고 건축가는 의지입니다. 갈애와 의지가 바로 좋고 싫음을 만드는 요인인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과 삶을 만드는 갈애와 의지는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여기서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 지혜입니다. 집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결국은 나무와 벽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떠나 자기의 몸과 마음만 있다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집을 유지하기 위해 청소하고 관리해야 하지만 집은 마지막에 결국 썩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오온도 생노병사로 인해 썩어버리고 죽어버립니다. 때문에 인간의 지혜는 한 단계씩 높아져야 하며, 가장 높은 지혜는 아는 지혜입니다. 자기의 인생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를 바란다면 지혜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돈을 많이 가진 것은 높은 인생이 아니며, 인생의 가치 있는 뜻은 정법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정법이 없으면 사람의 인생은 무의미합니다. 담마는 계·정·혜가 구체화된 것입니다.

또 계율은 몸과 입과 마음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계율은 몸과 입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이며 사마디는 마음을 위해서 실천해야 합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지키는 것은 집중이며, 진리를 찾는 것은 지혜의 수행입니다. 4성제의 진리를 알면 마음이 깨끗해지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고, 의지하고, 피난처가 되는 종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약을 안다고 해서 병이 낫지는 않습니다. 의사의 처방으로만 인간의 병이 낫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를 믿고 처방을 믿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부처님을 신심으로 믿고 가르침인 삼장을 읽고 실천해야 합니다.

불교는 사람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간을 깊게 생각해주고 마음속에 있는 지혜를 개발시킵니다. 인간에 관한 가르침이 있기에 인생의 수준을 높게 하는 정법인 것입니다.

사진·법문제공=미얀마 선원
정리=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11월 8일부터 일주일 동안 방한한 미얀마 시타구 국제불교아카데미 학장 우 냐니사라 사야도가 입국 첫날인 11월 8일 오후 5시 종로 ‘미얀마 선원’을 찾아 미얀마에서 온 수행자 및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법문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우 냐니사라 사야도는

미얀마 페지 지역의 테곤시에서 1937년 출생, 7세에 수도원에 들어가 불교경전 교육을 받았으며 20세에 테곤시에서 정식 수계를 받았다. 1956년부터 58년까지 차례로 팔리경전 초·중·고급 시험을 통과하였으며 만달레이에 있는 킨마간 팔리대학에서 불교교리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야도는 65년 레이메트나시에 BBM대학을 창설해 68년까지 교장 및 최고관리자로 일했다. 또 68년에 사가잉 힐스로 거처를 옮겨 승려와 비구니 그리고 초심자들에게 불경을 가르치지 시작했다. 75년부터 78년까지 몬주의 타바익 아잉 타우야 숲에서 수행했고, 79년 사가잉 힐스의 시타구 위하라에 수도원을 열어 그 지역 수행자들을 지도했다.

사야도는 81년 사가잉 힐스 지역 거주자를 위한 상수도 시설공사, 87년 수행자와 빈민을 위한 100병상 규모의 병원 건립 등 지역주민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으며 94년에 국제불교학술원을 건립해 불법홍포에 전념하고 있다. 전 세계 30개국 이상을 방문하며 해외포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야도는 38권의 책과 논문, 5권의 영어 책자를 발간하는 등 문서포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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