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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② 부동주 개념을 통한 공존 -1

화장실 물사용 규칙 어긴 게
승단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

 

한 세상 살다보면 이리저리 부딪히는 일이 많다.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간에도, 동료 간에도, 여하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크고 작은 충돌이 있기 마련이다. 잠시 티격태격하다 웃으며 끝내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대단한 승리자로 빛나지도 않을 싸움에 얼굴 붉히고 심장까지 벌렁거리며 대립하다 마음 상하곤 한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리 화낼 일이었나 싶을 때가 많다. 그저 상대방이 자신의 판단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났을 뿐이다. 상대방의 입장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내 잣대를 벗어나 제 멋대로 행동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어떻게든 내 틀 속에 맞추어 내 입맛대로 요리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이기적인 태도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온갖 횡포를 일삼는 국가나 정치 집단, 종교 집단 등이 이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던가.

율장을 들여다보면, 부처님 당시의 승단 역시 스님들 간의 충돌, 스님과 재가신자들 간의 충돌로 인해 크고 작은 불화가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부처님의 판단과 가르침으로 인해 곧 해결되곤 했지만, 가끔 부처님의 중재조차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서로 격해질 대로 격해진 감정이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여유조차 앗아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율장 건도부「꼬삼비건도」에 전해진다.

이 건도에 전해지는 사건은 데와닷따의 파승사건과 더불어, 부처님 당시 승단에서 발생했던 가장 유명한 승단분열사건이다. 데와닷따의 파승이 부처님과 일부 스님들 간의 대립이었다면, 꼬삼비 사건은 스님들 간의 대립이다.

꼬삼비라는 곳에 절이 하나 있었다. 이 절에서는 화장실에서 일을 본 후 물통에 물을 채워두는 것이 암묵의 규칙이었는데, 어느 날 이 절에 머무르고 있던 한 스님이 깜빡하고 그냥 나왔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사소한 일이다. 나중에 들어간 사람이 대신 채워줄 수도 있고, 아니면 지적받은 상황에서 참회하며 물을 채워두면 좋을 일이다.

그런데 복잡하게 일이 꼬여버렸다. 물을 채워두지 않고 나온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경(經)을 주로 공부하는 송경자(誦經者)였고, 이 행동을 문제 삼은 스님은 율을 공부하는 지율자(持律者), 즉 율사였던 것이다. 경이든 율이든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이지만, 그 성향이 다른 탓일까 여하튼 양자는 팽팽하게 맞서게 된다. 사실 송경자의 입장에서 보면 화장실의 물정도 채우지 않은 일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하지만 율을 생명처럼 실천하는 율사의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잘못인 것이다.

결국 이런 저런 사정이 얽혀 율사스님들을 주축으로 한 승단에서는 그 문제의 스님에게 거죄갈마(擧罪磨), 즉 죄를 물어 처벌하는 승단회의를 실행했고, 그 스님은 승단의 처벌에 반발하며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런데 사태가 커졌다. 평소 말썽이나 부리고 수행도 게을리 하는 육군비구와 같은 스님이었다면 주변으로부터 별 호응이 없었겠지만, 이 스님은 훌륭한 언행과 학식으로 인해 모두로부터 존경받던 분이었다. 결국 이 스님의 무죄를 주장하는 그룹과 유죄를 주장하는 그룹으로 승단은 분열했고, 날이 갈수록 그 대립은 치열해졌다.

사태의 심각함을 아셨던 까닭인지, 부처님께서는 여느 때와는 달리 명확한 판단을 피한 채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한 그룹씩 따로 불러다가, 만약 어떤 자의 행동이 무죄인지 유죄인지 명확히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에는 서로 상대방 스님들의 판단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고 하시며, 이것이야말로 승단의 분열을 방지하고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길이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나 양쪽 스님들은 부처님의 말씀에도 아랑곳없이 서로 옳다 주장하며 싸움을 그칠 줄 몰랐다.
〈계속〉
도쿄대 박사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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